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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피부색 달라" 4살 딸 말에, 엄만 한인 첫 加상원의원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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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인 최초로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에 지명된 연아 마틴 의원이 지난달 17일 개최된 '한인문화축제'에 참석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2009년 한인 최초로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에 지명된 연아 마틴 의원이 지난달 17일 개최된 '한인문화축제'에 참석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엄마, 난 왜 피부색이 달라? 엄마랑 아빠도 왜 서로 달라?”

백인 남편과 낳은 네 살배기 딸이 던진 질문은 한국인 엄마의 폐부를 찔렀다. 한인 최초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 연아 마틴(58)의 인생을 바꾼 물음이었다. 지난달 17일 이민자로 살며 이민 2세대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캐나다 밴쿠버에서 만났다.

마틴 의원은 7살 생일이었던 1972년 4월 12일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했다.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으나 이민 1.5세대라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정도였을 뿐 크게 힘들진 않았다고 한다. 이후 교사가 됐고, 중·고등학교에서 21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고 했다.

딸은 달랐다. 딸은 한국인과 있을 땐 백인처럼, 백인과 있을 땐 아시아인처럼 느꼈다.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어 보였다. 자신은 겪지 않았던 ‘정체성 혼란’이 걱정됐다.

딸이 100% 한국인이자 캐나다인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교사 엄마는 2003년 비영리단체 한인차세대그룹(C3)을 설립했다. 한국계 이민 2세대의 ‘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다. C3는 태극기를 주제로 한국 문화 연구도 하고 학부모와 함께 양궁 등 한국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캠프도 열었다. 딸을 위한 고민은 캐나다 전역에 있는 한국계 이민자를 위한 도움이 됐다.

연아 마틴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회장(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연아 마틴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 회장(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렇게 6년의 경력이 쌓인 뒤, 그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티븐 하퍼 당시 캐나다 총리였다. 하퍼 총리는 “당신을 상원의원에 지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캐나다 의회에 한국계 이민자가 없으니 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대변해달라고 했다. 캐나다 상원의원의 임기는 75세 생일까지다. 정권 눈치 볼 필요 없이 한 의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다. 2009년부터 15년을 일했으나, 아직 임기가 17년 남았다.

이후 그는 한국과 캐나다를 잇는 다리가 되려 노력했다. 마틴 의원은 “이민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며“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틴 의원이 속한 캐나다 보수당은 전문자격을 갖춘 이민자가 캐나다에서 자격을 더 빨리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 이민난민시민부(IRCC)와 같은 이민 콘트롤타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이민자와 그 집단은 저마다 복잡한 문제와 과제를 품고 있다”며 “이를 충실하게 이해한 공무원으로 구성된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협력해 이민자의 언어, 구직, 재교육 등을 돕는 정착 지원 비영리단체 역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0.78명에 불과한 한국의 합계 출산율 소식엔 “맙소사(oh, my goodness)”라고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마틴 의원은 “한국도 이민 확대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다만 이민은 저출산 해결책의 일부이므로 육아와 경력 단절 여성을 지원하고 다른 여러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틴 의원은 ‘정치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으로 2013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날’ 법안 통과를 꼽았다. 이 법에 따라 캐나다는 매년 7월 27일 캐나다 전역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린다. 현재 마틴 의원은 캐나다 학교에서 활용될 한국전쟁 교육 자료 제작 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다. 마틴 의원은 “이주민 당사자만이 제공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며 “이자스민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이후 한국에서 이주민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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