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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신중론' 교수마저 "서울대도 밀린다…이민청 지금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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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 김경빈 기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 김경빈 기자

국내 인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영태 서울대학교 인구정책연구소장은 자타공인 ‘이민 신중론자’다. 지난해 12월 이민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법무부 용역보고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외국인력 유입체계 연구’도 그를 “대표적인 이민 신중론자”로 분류한다. 그는 수도권 쏠림, 인력 미스매칭 등 고질적 국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민만 확대할 경우, 이민이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달 6일 중앙일보와 만나 “이민청은 지금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인구 송출국인 베트남 ‘통(通)’으로도 알려진 조 소장에게 이민청 설립 시 고려해야할 점을 두루 물었다. 그는 2015년부터 베트남 정부의 인구정책자문으로 활동하며 ‘베트남의 정해진 미래(2020-2040)’도 집필했다. 조 소장은 “한국은 국제 이민 시장에서 메이저리그가 아니”라며 정부가 유학생 정책을 비롯해 보다 전향적인 이민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민 신중론자로 알려져 있다
맞다. 나는 이민에 신중하다. 그래서 이민청은 지금 설립해야 한다고 본다. 안 그러면 나중에 급하니까 마구잡이로 이민자를 들일 것 아닌가. 인구학자는 10년, 20년 뒤 미래를 예측해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정해진 미래’를 넋 놓고 기다리다가 문제가 코앞에 닥쳐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령 학령인구가 줄어 초등 교사 선발 인원도 축소해야 한다는 건 예견된 미래였다. 그런데 방관하다가 갑자기 정원을 줄여서 애꿎은 교대생만 희생자로 만들지 않았나. 이민은 그보다 파급력이 큰 문제다. 필요한 때가 반드시 온다. 봇물 터지듯 수용해서 발생하는 혼란을 막기 위해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왜 지금 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지금부터 준비해야 당장 2030년대 인구 구조에 필요한 외국 인력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이민청 설립을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이유다. 현재 한국에 있는 이주민도 고령화됐다. 중국 동포(조선족)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2030년만 돼도 제대로 된 경제 활동 거의 못할 것이다. 이들의 2세는 중국에서 기회를 찾으려 하는 상황이다. 고용 분야, 특히 제조업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건 이미 현실이고, 한국의 고령화가 진행할수록 돌봄 노동자 유입도 절실하다. 규모와 도입 방식을 어떻게 가져갈지 지금부터 논의해도 늦다.
이민청 설립이 꼭 필요할까?
현재 이민 정책은 법무부·고용부·교육부·여가부 등 부처별로 따로 놀고 있다. 외국인 정책의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민자 유입을 막기만 하는 철학을 그대로 가져간 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이름만 바꾸는 식으로 이민청을 설립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지금은 법무부가 주도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론 전 부처를 아우르는 역량을 가진 독립적인 기구가 돼야 한다. 
조영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 TF 공동자문위원장이 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인구와 미래전략 TF 활동 보고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조영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회 인구와 미래전략 TF 공동자문위원장이 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인구와 미래전략 TF 활동 보고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민 시장’에서 한국의 객관적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한마디로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싱글 에이’ 수준이다. 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도 좋은 대학이지만 전 세계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친분이 있는 베트남 고위 관계자가 자녀를 서울대로 유학 보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자녀가 ‘교수님,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영국 대학을 가고 싶어요’라는 문자를 아빠 몰래 나에게 보냈다. 그 친구한테 ‘안 돼, 너는 서울대 와야 해’라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서울대조차도 유학생 시장에서 애를 먹는단 소리다.
서울대마저 유학생 유치할 때 힘이 든다는 건 충격적이다.
서울대도 학부생은 많지만, 대학원생은 부족하다. 국가 미래를 생각할 때 정말 걱정되는 분야가 두 가지인데, 하나가 돌봄이고 다른 하나가 연구개발(R&D)이다. 인구는 양만큼이나 질이 중요하다. 연구·개발를 책임지는 대학원이 무너지면 인구의 질도 악화한다. 이민자 하면 고용 분야만 생각하기 쉽지만, 유학생도 중요한 축이다. 선진국은 우수 유학생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다.
동남아에 우수 인재가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지난해 미국 전체 유학생 중 베트남이 5위였다. 계속 증가 추세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베트남의 우수 인재가 전 세계 유수 대학,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대학과 서울대 중 어느 곳을 선택하겠나. 한국에 안 온다. 한국은 놀러 가기 좋은 국가일 뿐, 진지하게 미래를 맡길 나라로는 안 본단 소리다. 이민 시장에서 우리의 입지를 생각할 때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선 엉덩이가 무거우면 안 된다. 정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베트남 등 송출국에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꼭 착한 국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매력적인 국가가 되지 않으면 이민자는 한국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재 한국의 K-드라마, K-팝의 인기가 영원할까. 2030년 중반부터는 한국은 고령자 인구가 전체 인구의 삼 분의 일이 된다. ‘할아버지의 매력’을 발산할 순 없지 않나. 문화의 힘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힘으로 인구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집행할 이민청이 있어야 한다.  
‘축소 사회’를 꾸준히 주장해왔는데
인구는 이미 정해져 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미래를 구성한다. 사망률보다 출산율이 낮기 때문에 인구는 줄어드는 축소 사회를 피할 수 없다. 축소 사회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축소된 인구 구조에 맞게 각 세대가 잘살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미리 준비하자는 이야기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 김경빈 기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 김경빈 기자

이민 정책도 ‘축소 사회’ 구상에 포함돼 있나  
그렇다. 우리 인구 구조에서 제조업·돌봄·유학생 등 이민자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이를 위해 도입 규모, 비자 경로, 정주 지원 등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이민 정책을 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구 유입국의 ‘유입 압력’(pulling factor)와 송출국의 ‘배출 압력’(push factor)도 두루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금보다 예측할 수 있고 개방적인 비자 경로를 이민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똘똘한 유학생’이 경직된 비자 제도로 인해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미국 등 선진국으로 떠나면 안 된다. 한국에서 다 교육 해 키워 놓고, 노동 시장에서는 정작 선진국에 빼앗기면 무슨 소용인가. 선진국에서 연봉을 2~3배 준다고 하면 어쩔 수 없으나, 적어도 제도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기여할 수 있는 이민자를 눈 뜨고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실감 나는 이민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외국인과 접점이 많고 수용성이 높은 2030 세대가 주축이 돼야 한다. 나도 기성세대고, 기성세대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기성세대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이분법적이다. 백인과 비백인, 고급인력과 저숙련인력, 그리고 동남아 등 주요 송출국을 그저 ‘값싼 생산기지’로 바라보는 식이다. 이주민과 경쟁을 해야 하는 당사자도 청년이기 때문에 의사결정 구조에서 이들을 배제하면 안 된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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