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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보니 이민 받지 말자? 그건 오답"…전문가들이 본 이민시대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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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30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제공 AP

지난달 30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위대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제공 AP

“이민으로 인한 부작용은 프랑스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나타난 문제다.”

중앙일보는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예견된 ‘이민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고자 이민 정책 전문가 6인(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장·윤인진 고려대 아시아 이주연구센터장·이인실 한반도 미래인구연구원장·정기선 법무부 이민정책이민정책위원회 위원·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한건수 한국이민학회장/이상 가나다순)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자 시위를 보며 “이민을 먼저 받은 나라에서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문병기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보다 앞서 이민을 받아들인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자국민과의 일자리 충돌, 복지 비용 증가, 슬럼화로 인한 범죄 등 부작용이 전 유럽에서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다른 인종에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한국은 이민으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교통 검문에 걸렸던 17세 소년 나엘메르즈쿠가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뒤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소년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었다. 이를 이민자 차별로 받아들인 시위대에 의해 건물 약 1000채와 자동차 5600여 대가 불에 탔고, 경찰서 250곳도 공격을 당했다.

프랑스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열린 시위 도중 불이 난 자동차. AFP=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외곽 낭테르에서 열린 시위 도중 불이 난 자동차. AFP=연합뉴스

다만 전문가는 이러한 부작용을 이유로 이민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인실 연구원장은 “인구 절벽 끝에 몰려 떨어질 위기인 한국에서 이민 없이는 국가 경쟁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이민 선진국에서 겪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와 기술 발전만으로는 인구 감소가 가져올 파괴적 상황을 막을 순 없다”고 덧붙였다. 문 학회장도 “이민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해 꼼꼼히 준비하자며 논의를 미루는 건 일종의 꼼수”라고 선을 그었다.

이민자 시위 프랑스 15회, 독일 4회…이유는? 

비슷해 보이는 이민 갈등 사이 차이점을 파악해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인진 고려대 아시아 이주연구센터장은“유럽이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던 1970년대 이후 프랑스는 외신에 보도될 정도의 큰 폭동이 15회 발생했지만 독일은 4회 정도였다”며 “그마저 독일에서 일어난 4번의 폭동 가운데 3번은 이민자가 주체가 아닌 반이민 정서를 지닌 국민이 벌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윤 센터장은 이와 같은 차이가 정책적, 문화·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했다. 프랑스 문화인 ‘라이시떼 (세속주의·인종과 종교를 떠난 평등)’로 인한 기계적 평등은 프랑스 정부가 이민자 권리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약하게 했다. 이는 인종에 따른 차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져 이민자 불만을 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이민자의 구성도 서로 달랐다. 독일은 튀르키예나 폴란드 등 동부 유럽에서 ‘이주 노동자’ 형태로 건너온 이주민이 대다수인 반면, 프랑스 이민자는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출신이 많다. 알제리, 모로코 등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로 구식민지의 피지배자가 들어온 셈이다.

윤 센터장은 “프랑스는 갈등이 쉽게 폭발할 수 있게 여러 요소가 섞여 있는 ‘폭동의 칵테일’ 같은 상황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부분을 살펴 이후 한국의 이민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교육실장은 프랑스 사건은 한국 사회에 다섯 가지 고민거리를 던졌다고 말했다. ▶이민 대상과 선별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민의 적정규모 ▶이민의 속도와 완급 조절 ▶향후 이민자의 거주 할당 여부 ▶이민자 권리와 의무 허용 수준 등이 그것이다. 조 교육실장은 “앞서 이민을 받은 나라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보고, 이런 부분 다 고려하며 이민 정책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며 “부작용보단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적 위기가 더 위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자 ‘수단’으로 보지 말고, ‘통합’ 추구해야 

이민자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통합’을 위한 준비가 시급하단 주장도 있었다. 윤인진 센터장은 “이민은 결국 체계 통합과 심리 통합을 병행해야 한다”며 “특히 심리 통합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부심, 일체감 등을 심어줘야 하므로 세대에 걸쳐 장시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건수 한국이민학회장은 “이민자를 한국 경제력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고 포용할 결심을 해야 한다”며 “외국 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동의한다면 그들을 위해 어떻게 주거, 복지 등을 지원해줄 지 같은 무게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냥 인력 필요하니까 수단으로 써먹을 생각만 한다면 사회적 갈등이 생겨 더 큰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한 순서”라고 강조했다.

정기선 법무부 이민정책이민정책위원회 위원도 “단순 인력을 데려와 단기간 채용한 뒤 돌려보내는 과거 이민 정책은 ‘인력 활용’에만 집중했다”며 “이젠 이민 정책 방향을 바꿔 숙련, 고급 인력이 정착해 살 수 있도록 이민 정책 방향이 바뀌었으니 이를 위해 어떤 인프라를 제공해야 할지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챙겨야”…이민 전담기구 필요

전문가들은 국민적 논의를 위해서라도 이민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건수 학회장은 “이민 전담 기구도 없이 사회적 합의부터 하려고 하면 5년, 10년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영희 실장도 “현재 이민청 설립 목소리가 있는데 이는 외국인을 막 받자는 얘기가 아니”라며 “인구 위기로 인한 파생 문제가 시급하고 한국은 주변국과 경쟁에서 이미 뒤처졌으니 이제라도 시작하잔 의미다”고 말했다.

문병기 학회장은 “이민 정책은 여러 부처에서 복합적으로 펼쳐야 하는 만큼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실 연구원장은 “각 부처의 논리가 부딪혀 어설픈 이민 정책을 세운다면 프랑스같이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이민청을 넘어 인구부 설립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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