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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서 창업, 캐나다서 경찰…이 韓청년들에 '체류 공포'는 없었다 [이제는 이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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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독일 베를린에서 스마트팜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김희조(33)씨가 지난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독일 베를린에서 스마트팜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김희조(33)씨가 지난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저도 독일에 세금 내는데 외국인이라고 차별받으면 안 되잖아요?”

독일 생활 4년 차인 김희조(33) 씨는 “해외 이주 후 차별 당한 적 없었냐”는 취재진 물음에 오히려 되물었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는 아내도 곧 휴직 후 독일에 올 계획이다. 자녀 계획도 세웠다. 희조 씨는 “독일이 한국보다 아기 낳고 키우기 쉬운 것 같다”며 “보육교사 1명당 보통 3명의 아이를 맡는데 외국인도 전부 무료”라며 밝게 웃었다.

중앙일보는 다가올 이민시대를 준비하고자 각 나라의 이민 정책의 현실을 살펴 보도하고 있다. 이민은 ‘국제 인력 시장’에서 경쟁 결과이므로 국내 상황만 고려할 수 없다. 이민 경쟁국(일본)과 인력 송출국(베트남), 이민 선진국(독일·캐나다)을 두루 돌아본 이유다.

2016년 한국 대기업 입사해 개발자로 일했던 희조 씨는 3년 만에 사표를 썼다. “죽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 일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2017년부터 분 ‘AI 열풍’ 영향도 있었다. 더 공부하기 위해 세계 1위부터 100위까지 대학 줄을 세워봤다는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따져보니, 독일이었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스마트팜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김희조(33)씨가 지난달 자신의 사무실에서 함께 창업한 동료와 회의를 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독일 베를린에서 스마트팜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한 김희조(33)씨가 지난달 자신의 사무실에서 함께 창업한 동료와 회의를 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2년간 학업을 마치고 독일 정부 지원을 받아 창업도 했다. 지난해에는 12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베를린에 사무실을 얻었다. 그는 현재 3명의 동료와 함께 스마트농장에 공급하는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만난 최준성(34) 씨도 ‘캐나디안 드림’을 실현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05년 유학생 신분으로 캐나다에 처음 온 최 씨는 ‘한국보다 공권력이 강해 보이는 모습’에 경찰을 꿈꿨다. 다양한 기관이 있는 미국 연방경찰과 달리 캐나다는 연방경찰은 행정경찰 및 사법경찰 기능을 모두 왕립 기마경찰청(RCMP)이 담당한다.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지난해 1월, 타지 생활 17년 만에 RCMP에 임용된 준성 씨는 “저희 기수는 전국에서 32명뿐”이라고 말했다.

꿈을 찾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캐나다로 온 뒤로는 옷가게, 커피숍, 식당, 헬스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ABCD도 모르는 수준”이었던 영어 실력도 걸림돌이었다. 준성 씨는 “캐나다에서 살아남아 구성원이 되는 게 목표인 시간이었다”며 “꿈이 적힌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캐나다 왕립기마경찰청(RCMP)에 임용된 최준성(34)씨가 RCMP를 상징하는 빨간색 정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안상 이유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했다. 사진 본인 제공

지난해 1월 캐나다 왕립기마경찰청(RCMP)에 임용된 최준성(34)씨가 RCMP를 상징하는 빨간색 정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안상 이유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했다. 사진 본인 제공

이주 청년 불안감 지워 준 ‘촘촘한 제도’

각 나라에서 만난 ‘이주 노동자’ 청년의 이야기는 온도차가 컸다. 이민 선진국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은 ‘체류 연장이 안 돼 본국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없었다.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난 청년들이 늘 ‘체류 연장 거절’ 공포를 느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희조 씨는 “독일은 직업이 있고 정주할 의지만 있다면 제도적으로 막힐 일은 없다”고 말했다. 최 씨도 “캐나다는 노력만 하면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민자의 불안함을 지워준 건 ‘제도’였다. 캐나다는 저숙련 노동자와 고급 인력 모두를 위한 제도를 두루 갖췄다. 2015년부터 운영하는 ‘신속입국제도(Express Entry)’가 대표적이다. 일단 이 제도 풀(Pool)에 등록하면 나이, 학력, 경력, 영어 점수 등 포인트를 매겨 캐나다 이민(CRS) 점수를 낸 뒤 고득점자는 우선 선발하는 식이다. 선발 대상에겐 바로 영주권 취득 자격을 부여하는 초대장을 보낸다. 본국에서 캐나다로 오기 전 영주권부터 보장해주는 셈이다. 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최씨도 이 제도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했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특히 의료, 건설, 보육, 농업 등 캐나다에 부족한 노동자에게 열려있다. 캐나다 연방이민난민시민부(IRCC) 공인 이민 컨설턴트인 저스틴 심 둥지 이민 대표는 “캐나다는 선진국에서 고급 인력만 받는다는 오해가 있으나, ‘필요’ 인력을 받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저숙련 노동자도 이직이 가능하고 얼마든지 다른 경력을 쌓아 다양한 방법으로 영주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5년간 이민자의 약 62%는 아시아 출신이었다. 그 안에서 인도(18.6%)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필리핀(11.6%), 중국(8.9%)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엘살바도르, 아프리카 등 개도국 출신 이민자가 선진국 이민자보다 많았다. IT개발자 테자스 파텔(35)은 “인도 영화업계(발리우드)에서 일하다 2017년 캐나다로 유학을 왔다"며 "전공을 바꿔 애를 먹긴 했지만 지난해 영주권을 따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취미로 우버 운행을 한다는 인도 출신 개발자 테자스 파텔은 "내가 그저 우버 운전사였으면 테슬라를 사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취미로 우버 운행을 한다는 인도 출신 개발자 테자스 파텔은 "내가 그저 우버 운전사였으면 테슬라를 사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밴쿠버=이영근 기자

캐나다 유학생의 경우 졸업 후 1년 정도 직장에서 근무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숙련 노동자의 비자 연장은 더 쉽다. 이들이 근무하는 건설, 토목 분야는 인력난이 심각해 취직이 쉽고, 직장이 있다면 비자는 거의 자동 연장되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으로 이직도 가능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이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한국과 비교된다.

나아가 지난해 6월 캐나다는 특정 기술이나 교육·언어 등의 능력이 있는 이민자는 별도로 점수를 적용해 더 빠르게 이주할 수 있도록 돕는 신속이민제 개정안(C-19)도 의회 문턱을 넘었다. 보육 인력이 부족할 경우 영주권 신청자 안에서 보육 경력자만 따로 점수를 매겨 뽑는 식이다.

지역·업종별 이민자 미스매치를 줄이고자 ‘주정부지명제(Provincial Nominee Program)’도 실시한다. 이는 캐나다 안 주정부가 주체적으로 인력 수요 예측을 해 이민자 중 지역 내 필요한 인력을 직접 뽑는 제도다. 지명을 받으면 점수제에서 최대 600점의 가산점을 얻을 수 있어 사실상 영주권을 바로 얻을 수 있다.

독일 이민정책 망했다고?…법까지 고쳐 더 받는다 

독일은 법까지 고치며 외국인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독일 의회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아닌 나라 사람도 독일에 머무르며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인력 이주법(FEG)을 통과시켰다. 2020년 3월 처음 이 법을 도입한 후 3년 만에 더 개방적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전문인력은 대졸자나 전 교육 과정이 최소 2년인 직업 교육을 수료한 경우를 뜻한다. 독일 외에서 취득한 학위나 자격은 독일 관할 인정심사기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요하네스 포겔 독일 자민당 부대표는 “13년 전 ‘독일 다문화 정책은 실패했다’는 메르켈 발언 때문에 독일 이민 정책 전체가 실패했다는 오해가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독일은 꾸준히 이민 정책을 보완·확장했다”고 말했다.

독일 자유민주당의 요하네스 포겔(Johannes Vogel) 원내수석 부대표가 지난달 13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안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독일 자유민주당의 요하네스 포겔(Johannes Vogel) 원내수석 부대표가 지난달 13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안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 이태윤 기자

후베르투스 하일 독일 연방노동부 장관도 지난 5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독일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위협은 기술인력 부족으로 이는 베이비부머 은퇴와 겹쳐 더 악화할 것”이라며 “해결을 위해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이민제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독일의 베이비부머는 1955~1964년 태어난 세대다.

지난달 통과한 법안으로 원래 유럽연합(EU)이 아닌 국가 국민은 독일 고용주가 채용을 보증해야만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최대 1년간 일자리가 없어도 독일에 머무르며 구직할 수 있게 됐다. 독일 언론은 이 법으로 알바니아, 세르비아 등 6개 서부 발칸 국가에서 매년 최대 5만 명의 이주민이 더 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자리가 없어도 ‘잠재력’을 입증하면 독일 체류를 허가해 주는 기회 카드(Chancenkarte)도 도입한다. 이는 캐나다의 포인트 제도와 비슷한 것으로 ▶독일어 능력 ▶직업 훈련·경험 ▶나이(35세 미만) ▶독일 외 국가의 학위 등을 점수화해 총 10점 만점에 최소 6점 이상인 사람에게 비자를 준다. 기회 카드를 받으면 1년간 독일에서 구직 활동을 할 수 있고, 이후 취직하면 계속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

선진국의 이민 정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이민청]

선진국의 이민 정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각 이민청]

포겔 부대표는 “이주민은 일반적으로 영어권 국가를 선호하므로 독일은 더 선진화된 제도와 법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EU에서 시행하고 있는 ‘블루카드’의 자격 기준도 낮춘다. 블루카드는 대졸 이상 외국 전문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발급하는 특별 비자다. 이를 받기 위해선 일반직군의 경우 올해 기준 세전 연봉 5만8400유로(약8300만원)를 넘겨야 했으나, 4만3800유로(약 6200만원)로 25% 완화했다. 한국이 요구하는 일반 영주권(F-5-1) 소득 기준인 8440만원(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2배)보다도 낮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IT 분야 전문 경력자는 학위 인정 요건도 완화될 전망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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