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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전환하고 핀테크 손잡고…지방은행 혁신 바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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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14면

활로 찾는 지방은행

황병우(左), 고병일(右)

황병우(左), 고병일(右)

국내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행장 황병우)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내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되면 1992년 이후 31년 만에 새로운 시중은행이 탄생한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 전환을 통해 은행권 경쟁 촉진의 마중물 역할을 할 계획”이라며 “은행명에 지역 명칭이 들어가 있어 수도권에서의 영업에 불리하다는 점을 고려해 사명 변경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광주은행(행장 고병일)은 전통 은행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토스뱅크)과 공동대출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상품은 대(對)고객업무는 토스뱅크가, 대출심사와 자금 조달은 두 은행이 일정 비율로 부담하는 구조다. 광주은행 관계자는 “자금조달능력이 탄탄한 기존 은행과 신규 고객 유입에 유리한 인터넷은행이 협업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전북·광주은행을 보유한 JB금융그룹은 지난 26일 대출 중개·관리 핀테크 기업인 핀다와 상호 지분 인수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핀다의 2대 주주에 오르게 됐다. 핀다 관계자는 “상호 지분투자로 ‘핀테크-금융그룹’ 동맹을 결성해 ‘금융 메기’가 되겠다”며 “경쟁력 있는 비대면 상품과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해 제휴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때 ‘알짜’로 불렸던 지방은행이 앞다퉈 혁신에 나서고 있다. 지역을 거점으로 탄탄한 내실을 쌓아오면서 업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시중은행·인터넷전문은행에 치이면서 지역에서조차 발붙일 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5대 지방은행의 각 거점지역 대출 점유율은 부산은행이 27.6%, 대구은행이 24.6%, 경남은행은 24.7%, 광주은행은 18.9%, 전북은행은 18.5%로 일제히 30%를 넘지 못했다. 지역 대출금의 70%는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곳간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1분기 국내 은행의 전체 대출금 중 5대 은행의 점유율은 62.4%로 지방은행(7.7%)의 8배가 넘는다. 이처럼 지역에서조차 외면 받다 보니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8년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순이익은 각각 8조6000억원과 1조원을 기록하며 7조6000억원가량 차이가 났다. 2020년 코로나19 여파 속에 격차가 6조7000억원까지 줄어들었지만, 지난해에는 시중은행이 11조6000억원을 벌어들인 반면 지방은행은 1조6000억원에 그쳤다. 5년여 만에 3조원가량 더 벌어진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이 쇠퇴하고 경기가 침체하면서 건전성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경남·광주·대구·부산·전북·제주은행 등 지방은행 6곳의 1분기 연체율은 5대 시중은행 평균 연체율(0.27%)보다 두 배 이상 높은 0.57%를 기록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시장금리까지 치솟자 지방 중소기업이 주 고객인 지방은행이 직격타를 맞은 것”이라며 “경영환경도 좋지 않은데 연체율까지 높아져 리스크 관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악화일로를 걷던 지방은행에 활로가 열린 건 지난 2월 정부가 은행권의 과점 체제를 손보겠다고 나선 후부터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당국에 “은행 산업 과점의 폐해가 크다”며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출범시켜 경쟁 촉진을 위한 신규 은행 추가 인가, 금융권-핀테크 기업 간 협업 등을 지속해서 논의해왔다.

이달 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TF의 결과물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30년 만의 시중은행 출현으로 기존의 경쟁 구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충분한 자금력과 실현 가능한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신규 인가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시중은행 전환을 타진한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시중은행 전환 인가의 법적 요건을 확인해 본 결과 즉시 신청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될 경우 기존 특별시와 광역시, 수도권 내로 한정돼 있던 영업가능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돼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 격차가 이미 상당 수준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뒤늦은 혁신이 효과적일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2017년 시중은행의 독과점을 해소하기 위해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마저 은행권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내진 못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예금과 대출 점유율은 2%대에 불과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규모 확장을 위해선 자본 여력이 필요한데, 시장 규모가 한정된 금융권 특성상 큰 금액을 투자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시중은행 전환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차별화된 비대면상품 등을 개발해 적은 비용으로 거점지역 외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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