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코로나
50명 중 7명.
지하철 한 칸 승객 중 마스크를 쓴 사람 수다. 지난 25일 오후 퇴근 시간 서울 3호선 구파발역을 지날 때였다.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지난 3월 20일)가 4개월을 훌쩍 넘었다. 이젠 마스크를 쓰든 말든 누구도 상관치 않는다. 그런데….
4만7029명. 지난 19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다. 지난 1월 11일 5만4315명 이후 최다이자, 1월 17일 4만169명 이후 6개월여 만의 4만 명 돌파다. 최근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 흐름이 가파르다. 게다가 ….
10개월.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주의보가 한여름까지 장기화하고 있다. 역대 최장이다. 질병관리청은 “이례적인 여름철 유행이 지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 엔데믹과 독감 유행주의보가 공존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윈데믹(twin-demic)’이라고 부른다. 복수의 감염병 유행이라, ‘멀티데믹(multi-demic)’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다른 감염병도 덮치고 있다. 최근 콜레라·홍역·말라리아 등 해외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복수를 넘어 다수의 ‘멀티데믹’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중앙SUNDAY는 폭염의 한복판에서, 폭주 기미를 보이는 ‘멀티데믹’을 진단해 봤다.
자연면역·백신면역 모두 떨어져
“실제로 최근 바이러스 PCR 검사(종합효소 연쇄반응 검사)를 하면 박테리아 2종, 바이러스 2종 이상이 검출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와 통화를 한 건 지난 26일 오후, 버스 안이었다. 15명 중 2명. 그 771번 버스 안의 마스크 착용자들이었다. 지난 5월 중순만 해도 “병원·의원·약국 외 다른 실내 공간에서도 마스크를 쓰겠다”고 목소리를 낸 이들이 58%(한국리서치, 1000명 대상)였다. 버스 안이라는 특정 상황이고 조사 당시는 봄, 현재는 여름이라는 차이도 있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13%(15명 중 2명)와 58%는 차이가 너무 컸다. “여름이라 생물학적 특성상 바이러스도 활동이 약해지지만, 오히려 물리적 환경은 바이러스 유포의 최적기”라며 “노마스크와 꽁꽁 닫힌 실내에서의 에어컨 바람이 현재 코로나와 독감 바이러스가 활개치는 큰 이유”라고 천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자신도 ‘권고’라며 “밀폐 공간과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길 바란다”며 “그게 최선이자 최고의 방어막”이라고 당부했다.
“이미 자연 면역력, 백신 면역력이 모두 떨어졌어요. 직전 유행이 지난 2~3월이었는데, 3~4개월이 지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연구대로 지금 확진자가 늘고 있습니다. 행사와 여행도 대폭 늘어났고요.”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마스크의 부재’를 지적하며 “지역사회에서의 방역은 상반기에 죄다 사라졌기 때문에 바이러스로서는 유리해진 셈”이라고 밝혔다.
질병청이 밝힌 지난 7월 3주차(16~22일) 코로나의 감염재생산지수는 1.19다. 6월 4주차 1.03에 이어 1.12→1.16→1.19로 지난 4주 연속 증가했다. 6월 4주차 감염재생산지수 1.03은 당시 코로나에 걸린 마포구 상암동의 회사원 오모(28)씨가 평균 1.03명에게 감염시킨다는 말이다. 7월 3주차에 확진된 같은 사무실의 김모(35)씨는 1.19명에게 옮긴다는 것이다. 감염재생산지수 ‘1’ 이상은 감염병 유행 확산 국면이라는 뜻이다.
“감염재생산지수로 봤을 때 5만 명, 6만 명 확진은 시간문제입니다. 코로나 재유행이라고 봐야죠(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재유행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엔데믹 상황에서의 일시적 증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6주? 길면 12주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엄중식 교수).”
코로나의 재유행 판단 여부를 놓고 미묘한 발언의 차이가 있지만, 김 교수와 엄 교수의 공통점은 ‘증가세는 확실하고, 그것도 최소 가을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 더. “현재 드러나는 확진자 수는 실제의 절반도 안 될 것”이라는 판단도 공유한다. 지난주 하루 평균 확진자는 3만6261명인데, 실제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7만 명, 8만 명이 넘었다는 얘기다. 공식적인 하루 평균 확진자로는 한 주 전 2만6705명보다 35.8% 늘었다. 한 편의점 업체가 지난 18~24일 자가 진단키트 매출이 일주일 새 34.8% 늘었다고 밝혔는데, 확진자 증가율과 비슷한 수치다.
김우주 교수는 ‘숨은 확진자(미확진 감염자)’가 많은 이유로 “선별진료소가 대폭 줄어 검사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가, 6월부터 격리 의무도 사라져 굳이 검사를 받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상반기만 해도 ‘경제활동을 못 할까 봐’ 라는 생계적인 문제로 숨은 확진자가 많았다면 이제는 정책적, 구조적인 문제도 거들고 있다는 평이다. 앞서 언급한 오모씨도 “머리는 빙빙 돌고 목은 뜯겨나가듯 아픈데도 이비인후과에서 검사 비용으로 2만2000원을 내라니 검사를 안 받을까 싶기도 했다”며 “바로 집 앞 병원의 검사도 꺼리는데, 조금 더 품을 들여야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원 김종원(24)씨는 “어제 코로나에 걸렸다는 동료가 버젓이 나와 근무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흐르면서 확진 시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지난 6월. 방역 당국은 7일 격리 의무를 5일 격리 권고로, 의원·약국 마스크 착용 의무를 권고로 하향 조정했다. 아울러 매일 발표했던 확진자 통계도 주 단위로 변경했다. 그래서 통상 주중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수요일(지난 26일)에 이미 5만 명을 돌파했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있다. 질병청은 이날 코로나의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조정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부터는 코로나와 독감은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이다. 대형병원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도 사라질 전망이다.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로 감염자 집계를 하게 돼, 전체 확진자 수 발표도 중단된다. 코로나 대응이 ‘깜깜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국민의 경각심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죄다 풀어버리는 건 문제입니다. 코로나 변이인 XBB에는 기존 백신이 잘 듣지도 않아요. 당국에서는 치명률이 0.03%(7월 첫 주 기준)이라고 안심하라지만, 60~80대 고령자 치명률은 1%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김우주 교수는 “이제 칼자루는 바이러스가 쥐고 있다”며 “고위험군이 많은 대형병원과 요양병원에서는 마스크 착용은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엄중식 교수는 “개인적인 견해로는 2급으로 묶을 정도도, 4급으로 내릴 정도도 아니다”라며 “고령자 치명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천은미 교수는 “같은 4급이 된다고 해도 독감은 치료제 접근이 비교적 용이한 반면, 코로나는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6080 고령자 치명률 1%로 급증
“다른 호흡기 감염병은 그야말로 호흡기 위주로 피해를 주지만 독감은 코로나와 같이 전신에 영향을 줍니다. 아예 걷지를 못하기도 하죠. 후유증이 큽니다.”
천 교수는 말을 이었다. “지난 3년간 우리 국민이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 때문에 독감에 ‘너무 걸리지 않아서’ 오히려 지금 면역력이 떨어졌고, 접촉이 많은 8월 휴가철, 바이러스 활동이 왕성해지는 가을과 겨울에 유행은 이어지다가 내년 상반기에나 진정될 것”이라고 천 교수는 전망했다. 엄중식 교수도 “지난 2~3년간 (독감에) 너무 안 걸렸다”고 밝혔다.
독감에 걸렸다는 임현수(63)씨는 “지난달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코로나 재감염이겠구나 싶었는데, 독감이라고 연락이 왔더라”며 “1년 새 코로나에 독감, 그야말로 멀티 감염”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해 9월 발령된 유행주의보는 2개월만 지나면 한 절기(매년 36주차~이듬해 35주차)를 꽉 채운다. 엄 교수는 “의사 생활 20여 년 간 이렇게 긴 독감 유행주의보는 처음”이라고도 했다. 지난 9일에서 15일 사이 전국 196개 표본감시 의료기관을 찾은 외래환자 중 독감 증상을 보인 의사환자 수는 1000명당 16.9명이다. 한 주 전 16.3명에서 늘었다.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 4.9명의 3배를 훌쩍 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질병청은 지난 25일 해외 유입 감염병 발생이 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세균성 이질, 콜레라 등 수인성 식품 매개 감염병 2종 ▶호흡기 감염병 홍역 ▶뎅기열, 치쿤구니야열, 지카바이러스감염증,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감염병 4종 등 총 7종의 해외 유입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달 15일 기준 이 7종 감염병의 해외유입 사례는 145명인데, 지난해 같은 기간(27명)과 비교해 약 5배 수준이다. 그중 뎅기열 환자가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렇다고 권고 수준인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하는 등 방역지침을 되살리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교수들의 말이었다. 13명 중 1명. 2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 엘리베이터 안으로 쇄도한 이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