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젊은 디자이너 몰려 "새바람"|남대문의류도매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대문의류도매상가.
하루 거래규모가 1백억원에 이른다는 이 거대한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대학에서 정규과정으로 패션을 공부한 20∼30대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속속 남대문 시장으로 몰려들어 자신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어 시장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온「남의 디자인 베끼기」와 오랜 경험으로 버티는 기존 판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25일에는 젊은 디자이너 50여명이 모여 따로 패션타운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 쪽에 있는 삼익 패션타운 10층에 81개 점포로 형성된 MNC(magic needle club)상가가 그것인데 이곳에서 점포를 연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패션을 전공한 사람들로 기존의 남대문시장 점포나 일반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봤으며 그 중에는 해외유학파도 있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추구하고자하는 디자인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가 만든 옷을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많이 입히게 하는 곳도 바로 이 도매시장입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남대문시장에 진출하는 이유에 대해 전모씨(32)는 이렇게 말한다.
일반의류업체들이 1만∼2만원대의 중·저가제품까지 파고드는 실정에서 경쟁에 이기려면 시장패션에도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유행이나 디자인에서 뒤떨어지는 옷을 파는 점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때로는 문을 닫기도 한다.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려면 여성복은 기본적으로 계절에 따라 디자인을 바꿔야하고 캐주얼은 심하면 1주일 만에도 디자인이 바뀐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점포들 나름대로 얼마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느냐, 또 얼마만큼 유행의 첨단을 걷고 있느냐 하는 점이 성공의 열쇠이고 이를 위해 각 디자이너들과 점포주인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잠든 오전 3시부터 이들은 매일 시장에 나와 「자기제품」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고 있는 것이다.
남대문시장을 살펴보면 작은 기업들이 모인 거대한 기업군이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대부분 한평 남짓한 점포들은 겉보기에는 초라해 보이지만 제조공장도 따로 갖고 있고 자체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어엿한 기업들이다.
각 상가가 계절별로 발행하는 캐털로그는 이들 점포가 시장에서 흔히 보는 가게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점포마다 2∼3페이지씩에 걸쳐 자기 제품을 소개하는데 모델도 원미경·심혜진 등 일급수준에 제품자체도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옷」의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들이어서 웬만한 유명브랜드 제품이나 백화점 상품을 뺨칠 정도다.
백화점이나 다른 의류상가들과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 보니 「값이 싸다」는 것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졌고 따라서 독창적이고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 옷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기존의 점포주인들은 스스로 디자이너가 되어 고객들로부터의 반응을 수집해 디자인을 변형시키기도 하고 외국의 패션잡지를 보고 이를 본뜨기도 한다.
『여러 디자인의 옷 중에서 많이 팔리는 옷, 덜 팔리는 옷, 반품되는 옷을 분석하면 고객들의 취향을 알 수 있어요. 때로는 단골손님으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하고요.』
대도숙녀복상가에서 15년째 장사를 한다는 한 상인의 말이다.
그런가하면 아예 디자이너를 정식으로 채용해서 독창적인 디자인을 하는 점포도 꽤 된다.
남대문시장에 속한 전문디자이너만도 5백명에 이른다.
현재 남대문시장의 전체 점포 수는 1만6천여개. 이중 의류상가가 60%인 1만여개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시 여성의류가 대부분이다.
개장시간인 오전3시가 되면 전국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모여든 소매상들이 큼직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좀은 통로를 분주하게 왔다갔다한다. 3∼4일에 한번씩 들러 보통 l백만원 어치씩 사가는 이들 소매상들에 의해 이곳의 옷이 전국에 퍼지기 때문에 상인들은 이들의 취향을 파악하는데도 신경을 써야한다.
남대문시장의 패션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재래식 점포는 더욱 발붙일 곳이 없게 돼버렸다.
그나마 오랜 경험을 갖고있는 상인들은 손님을 끌어 모으는 수완으로 근근이 버텨나가지만 장사에 손 댄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번번이 짐을 싸기 일쑤다.
상인들은 불경기 탓인지 한달 전부터 매상이 절반이하로 줄어들었다고 울상이다.
옷 시장이 불경기에 빠지면 빠질수록 남대문의류시장의 패션은 더욱 수준이 높아질 것이며 상대적으로 점포들간의 부심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손장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