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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나 나나 똑같다"...'언제든 콜' 폰번호 환자 주는 망막 명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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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 

닥터 후(Dr.Who)

한국 인구의 90%는 근시입니다. 고도근시에선 망막이 늘어나고 얇아져 찢어지는 망막박리가 잘 생깁니다. 눈앞에 까만 커튼이 쳐지는 느낌이 듭니다. 2주 안에 수술하면 되지만, 그간 환자가 느낄 실명의 공포는 방치되는 셈이죠.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수술실로 뛰어드는 안과 의사가 있습니다. ‘망막 명의’ 이성진 교수의 밝은 세상을 보시죠.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 교수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같은 급성 질환은 분초를 다퉈 수술해야 생명을 살린다. 그런데 눈 질환을 응급수술하며 실명과 싸우는 의사가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안과 이성진(56) 교수. 그는 응급수술을 하는 안과 의사, 휴대전화 번호를 환자에게 알려주는 의사, 인터넷 카페에서 환자 질문에 댓글을 다는 의사로 통한다.

이 교수는 3대 망막 질환, 즉 황반변성·망막박리·당뇨병성망막병이 주특기다. 고령화와 밀접한 노인성 눈병이자 자칫 실명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병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황반변성 환자는 42만8404명으로 5년 새 57% 늘었다. 망막박리 환자(11만6951명)와 당뇨병성망막병증 환자(37만5555명)는 같은 기간 각각 49%, 6.3% 증가했다. 이 교수에게 원인과 대책을 물었다.

망막 질환의 원인이 뭔가.
“노화다. 우리 눈은 40대부터 늙기 시작한다. 고령일수록 망막 질환이 많긴 하지만 50대도 적지 않다. 예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가 매우 중요하다. 망막박리는 고도근시에서 잘 생긴다. 최신 네이처 의학 학술지에 한국·중국·싱가포르 등에서 성장기 학생들이 야외활동을 덜 하고 책만 너무 가까이하기 때문에 고도근시가 생긴다는 논문이 실렸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근시의 원인 중 하나인 셈이다.”
40대로 발병 연령이 낮아진다는데.
“젊은 연령에게 많이 생긴다기보다 검진이 늘면서 발견을 많이 한 것이다. 보통 45세에 노안이 시작된다. 노화 전 단계에 검사하는 게 좋은데, 그게 40세라고 본다.”
스마트폰이 망막 질환을 촉진하나.
“스마트폰과 망막 질환의 연관성을 다룬 논문은 없다. 다만 스마트폰을 오래 쓰면 눈이 쉬지 못하게 되니 노화 속도가 빨라질 수는 있다.”
눈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가장 나쁜 것은 눈 세포를 손상케 하는 자외선이다.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안경을 착용하는 게 좋다. 술과 담배, 기름진 육류도 눈 혈관을 상하게 한다.”

이 교수는 22년간 응급수술을 해왔다. 병원에선 생명이 위험한 환자에게 수술방이 우선 배정되기 때문에 이 교수는 낮엔 외래진료를 하고 주로 밤 9시 넘어 응급수술을 한다. 그동안 망막박리만 1500건 넘게 수술했다. 개인병원에서 수술하다 문제가 생긴 백내장 환자 등도 수술한다. 그는 언제 응급수술을 할지 몰라 저녁 자리에서 술을 먹지 않고, 병원에서 20~30분 넘게 걸리는 곳에서 산 적도 없다. 항시 ‘수술 대기 모드’이면서 ‘황반변성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전문의 상담코너까지 운영한다.

왜 응급수술을 하나.
“망막박리 진단 후 2주 안에 수술하면 결과가 비슷하다고 한다. 하지만 환자는 두려움에 떤다. 이걸 놔둘 수 없다. 재빨리 망막을 붙이면 시각세포가 좋아지고 회복률이 올라갈 것이다. 외래진료에서 망막박리 진단이 나온 환자는 당일 수술한다.”
무슨 재미로 사나.
“수술하는 재미다. BTS가 노래하는 걸 좋아하니까 몰입하지 않느냐. 나도 좋아하는 것(수술을 지칭)에 몰입하는 거다. 조교수 시절 신경외과 스승이 ‘취미가 뭐냐’고 묻자 ‘망막수술’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는 이유는.
“환자의 병이 재발할 수도 있어서 언제든지 눈이 이상하면 전화하라고 말한다. 하루에 5~6통 온다. 문제가 있으면 병원으로 오라고 한다. 진료 예약 순서를 무시하고 가장 빨리 외래진료실로 오라고 날을 잡아 준다.”

“나는 망막을 사랑하고, 망막 환자를 사랑하며, 망막 환자들의 아픔을 사랑합니다. 모든 망막 환자는 제 친구입니다. 나를 찾는 망막 환자 모두가 나를 믿고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실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에게 ‘실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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