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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가능할 것인가? (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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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미국과 우방국들의 반도체 분야 대중(對中) 봉쇄 극복은 수많은 난관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이다. 봉쇄가 장기화할수록 반도체 가치사슬의 대부분을 스스로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서 중국이 추구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향후 10년간 중국의 대응방향 전망과 한계

중국에 이상적인 전략적 환경은 반도체 대외의존도는 낮추고, 추가적인 서방의 압력을 억제(deter)하고 내수 충족에 중국기업의 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다. 즉,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유리한 비대칭적 디커플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로는 새로운 제재를 피하거나 우회하고, 우방국과 미국 간의 관계 교란, 산업 스파이 활동 강화 및 인재 영입, 중국이 레버리지를 갖는 수단을 통한 보복 등을 들 수 있겠다.

주요국과의 관계를 관리해 더 이상의 제재가 취해지지 않도록 하거나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 자체 클라우드 인프라를 강화할 수 없는 중국의 빅테크들이 봉쇄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의 클라우드 인프라를 이용해 제재를 우회하는 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EU와 투자협정(CAI)을 다시 추진하거나 중국 시장에 이해관계가 큰 국가와 미국과의 관계를 교란하려는 시도도 예상된다.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로 우리 기업이 대미(對美)관계에서 곤란한 입장에 빠지도록 하는 것도 이런 전술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점차 어려워지겠지만 반도체 기술 선진국 기업들에 대한 산업 스파이 활동이나 기술인력 유입 노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될 것이다. 희토류와 같이 중국이 레버리지를 가진 희귀광물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도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이 될 수 있다. 단, 희귀광물은 호주와 같은 자원 부국이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 효과를 노리다 장기적으로 레버리지를 상실할 수 있는 가능성도 고려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고립되면 자강도 어렵다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미세 페터닝 기술 등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난니완(南泥灣) 프로젝트는 그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구에서 수많은 파트너 기업들 간의 상호의존 관계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기술적 생태계를 중국이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향후 10년간 미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가 극초미세 수준으로 계속 발전할 때 SMIC 등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10나노의 벽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 미세 공정뿐만 아니라 첨단 반도체 설계, 기초 재료나 소자 등 기술적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 분야는 많다. 앞으로 10년간 중국이 독자적으로 이런 난관들을 돌파하지 못하면 중국의 전략적 입지는 크게 손상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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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 자본주의의 한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기술 유입의 봉쇄뿐만 아니라 보조금에 크게 의존하는 정실 자본주의(情實資本主義), 즉 중국 반도체 산업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HSMC 사건은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중국식 정실 자본주의의 비효율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2017년 설립 당시부터 14나노급 양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방정부 및 투자회사로부터 1280억 위안을 투자받아 굴지의 파운드리 기업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던 HSMC는 결국 보조금을 노린 사기극의 주인공으로 드러났다. 별다른 특허도 없는 기업이 실사도 받지 않고 거액을 유치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 시스템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설립에 관여한 주요 인사들의 행방조차 묘연한 HSMC 사건은 정실 자본주의의 비효율성을 웅변한다. 사실 수많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시장 원리를 통해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정부의 지원에 의존해왔다. 이런 식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결국 전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지만 반도체 굴기의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중국 정부는 지금도 거대한 지금을 반도체 산업 지원에 투입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한 정책 기조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래 반도체 생태계의 분리

장기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는 초미세 공정이나 소자 성능 한계 등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기술적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주도하에 새로운 아키텍처, 소재, 장비, 컴퓨팅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우방국으로 구성되는 일종의 기술 독과점 클럽이 기술 로드맵과 표준을 주도하게 될 것인데, 지정학적 경쟁의 시대에 중국이 여기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비록 현재의 반도체 기술 패러다임에서 핵심기술의 자립에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독자적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중국의 기초과학 연구 수준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데 특히 화학과 재료과학, 공학 전반에서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양자 ICT와 같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 관련 투자도 경제규획의 핵심 육성 영역에 포함되어 있어 중국의 독자적 기술 생태계 구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반도체 생태계가 병존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단순히 R&D 규모 경쟁이나 엔지니어 수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 혁신, 인터넷 거버넌스 규범을 포괄하는 국가혁신체제간의 우월성 경쟁에서 그 성패가 좌우될 것이다. 시장 기구에 주로 의존하는 미국‧서구의 혁신 모델과 달리, 중국 모델은 국가가 기술의 표준이나 범위와 같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자원을 선별적으로 투입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기초연구의 성과를 전략적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로 이어지게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외부와의 교류‧ 상호의존이 제한된 환경에서 국가가 일종의 벤처캐피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기술 리더십을 달성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기 어렵다. 만약 성공한다면 모방이 아닌 진정한 혁신과 정치‧경제‧사회개방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동안의 상식을 뒤집는 것이 될 것이다.

즉, 독자적 생태계를 만들었다 해도 경쟁력 열위의 갈라파고스화된 중국 반도체 생태계는 4차 산업혁명의 지체, 첨단 군사기술 열위 및 경제 성장세의 둔화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중국이 열세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의 대차대조표와 미래 전략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우리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계산법이 아닐 수 없다. 제재 동참국의 장비 반입 제한으로 중국 내(內) 우리 기업의 생산, 매출이 영향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조치로 인해 잠재적 중국 경쟁자들이 입는 타격이다.

낸드 시장에서 양쯔메모리(YMTC), DRAM 시장에서 창신메모리(CXMT)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우리를 추격하기가 사실상 난망해진 것이다. 반면에, 만약 제재가 없었다면 결국에는 중국 시장, 더 나아가 제3국 시장에서 우리의 입지가 약화했을 것이다. 이는 과거에 스마트폰 세계시장 판매 1위로 올라섰던 화웨이를 미국이 제재함으로써 우리 스마트폰이 여전히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어쩌면 중국으로 향할 수도 있었던 해외설비 투자가 미국으로 전환됨으로써 중국으로의 기술‧인재 유출보다는 미국 주도 반도체 생태계의 기술과 인재를 활용할 기회가 커지는 것도 보이지 않는 이익이다.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 우방국들로 구성된 기술 독과점 클럽이 주도할 미래 반도체 산업 지평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클럽 참여국과의 전략적 제휴, 기술협력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대내적으로도 차세대 반도체 관련 기초연구 및 인력양성에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당한 클럽 회원으로서 전략적 협력을 요구하려면 그에 걸맞은 레버리지를 갖추고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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