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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영의 중국 프리즘]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가능할 것인가?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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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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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은 역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둘러싼 미국의 각종 제재와 반도체 강국 간의 이합집산이다. 우리는 두 나라가 취하는 각종 조치가 우리 기업의 현지생산이나 대중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움직임에 우리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중국 시장에서의 단기적인 유불리를 넘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지정학적 함의를 품고 있다.

미국‧서방에 필적하는 중국 반도체 생태계 발전 여부는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투사할 수 있는 중국의 힘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전망과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과정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설계-제조-패키징이라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중국 반도체 산업은 초기의 패키징 분야 진입에서 더 나아가 설계 단계에서도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AP칩이나 5G 통신 칩셋에서 적지 않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CPU 설계 업체 하이실리콘을 필두로, 지금까지 중국에는 2000개를 넘는 다수의 팹리스 스타트업이 등장하였다. 제조 단계에서도 SMIC와 같은 파운드리 기업, 양쯔메모리(YMTC)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도 급성장하였다. 특히 국유기업인 양쯔메모리는 3D 적층구조 구현 능력을 지속해서 발전시켜 2021년에는 128단 낸드 플래시 메모리 생산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장세가 지속한다면 중국 반도체 기업이 우리에게 위협이 됨은 물론이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연평균 10여 개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건설해 주요 해안 및 북동부, 서부 내륙에 각 분야 업체들이 서로 의존관계를 갖는 거대한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중국은 특히 10나노~100나노 사이의 성숙한 생산 공정 및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며 스마트폰, 태블릿 PC, 노트북, 통신용 셋톱박스 등 중국 제조업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다양한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개방적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의 참여를 통하여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의 참여는 필요한 기술‧인력‧장비의 원활한 유입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예를 들면 중국 설계업체들은 미국의 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인 EDA에 의존하며 하이실리콘이 디자인한 반도체는 TSMC에 의존해야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의 기술 인력, 특히 대만의 기술인력들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하지만 아직 중국의 기술 수준이 첨단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공급망의 주요 단계마다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단계에서 미국의 제재들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

미국은 초기부터 반도체 산업의 선두주자였다. 반도체 산업이 점차 세분화, 특화되면서 여러 국가,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형성되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설계에서 소재, 장비 등 반도체 산업 가치사슬의 사실상 전분야에 걸쳐 원천기술을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덜란드 ASML도 1000여 개에 달하는 EUV 노광장비 부품의 약 3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공급망 전반에 대한 기술 장악력은 미국의 각종 제재에 무소불위의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즉, 미국은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대한민국, 대만도 사실상 원천기술을 장악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될 수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

미국이 반도체산업 대중(對中) 제재에서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는 무엇일까? 반도체는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경제 및 군사‧안보에 걸친 이중용도 분야이고 생산성 향상을 통한 장기 성장률 제고에 중요하기 때문에 반도체에서 상대방을 제재‧ 봉쇄하는 일련의 정책들은 상대방의 경제성장 모델 자체에 대한 공격이다. 즉, 중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의 승부처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의 전략적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미국이 미국 기술을 사용한 제3국 제품의 특정국 반입을 금지하는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외국인 투자를 심사‧제한하는 위험심사현대화법(FIRRMA)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직접적인 대중 제재에 우방국들의 유사한 제재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일본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우방국들이 대중 제재에 동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뿐만 아니라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자국 반도체 산업에 중국이라는 경쟁자가 대두함은 물론이고 군사‧안보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의 의존도를 높이는 리스크를 초래한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네덜란드조차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agency)의 2023 연례보고서에서 자국 경제안보에 중국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적시하였다.

하지만 대중 제재에 우방국들이 호응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미국이 주도하는 미래 반도체 분야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특정 산업에 대한 원천 기술표준을 선점하고 해당 산업 가치사슬의 요소마다 필수불가결한 IP를 장악함으로써 산업 지배력을 추구해왔다.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다다른 현시점에서 반도체 산업은 소재 및 공정 기술 혁신을 동반한 초미세 공정 EUV 장비의 한계 돌파, 뉴로모픽 컴퓨팅, 양자 ICT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조차도 미래 반도체 산업의 전 가치사슬, 생태계를 독자적으로 건설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략적 동반자를 필요로하다. 미래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먼저 자리 잡는 국가는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반면, 반도체 산업 지평 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국가는 도태되거나 별개의 기술 생태계로 진화해 갈라파고스화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미래 반도체 생태계에서 중국을 고립시킬 동기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가장 강력한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 관련 수출통제(2022. 10. 7)로, 특정 기업이나 장비에 대한 규제를 넘어 산업 전반에 걸친 포괄적 제재이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에 활용되는 고성능 반도체 수출은 물론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비메모리 생산을 위한 첨단 제조 장비 판매를 YMTC 등 중국 기업에 사실상 금지하였다.

즉 미국은 중국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문턱 또는 한계를 명확히 제시한 것으로, 이제 중국의 빅테크들은 첨단 스마트폰이나 자율주행 인공지능 학습모델과 같은 전략 분야 반도체 수급에서 기약할 수 없는 먼 미래까지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최근 디커플링이라는 용어가 디리스킹(위험 경감)이라는 완화된 용어로 대체되고는 있지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수정될 가능성은 없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양안 관계가 전쟁으로 귀결된다면 미국이 사실상 반도체의 모든 가치사슬에 대한 전면 봉쇄도 불사할지 모른다.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들도 중국 반도체 시장을 전면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압력(세컨더리 보이콧)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이 당면한 엄중한 현실

중국도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고 대비해 왔음은 물론이다. 이미 2020년 9월에 중국과학원은 차보즈(卡脖子)라 불리는, 중국의 ‘목을 조르는’ 35개의 핵심 기술을 발표하였는데 이 가운데 7개가 반도체 가치사슬에 속한다. 그동안 중국은 반도체 자립‧자강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지방정부의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자국 산업 육성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칼럼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반도체와 같이 복잡한 산업에서 진정한 자강은 역설적이게도 고립 상황에서는 이루기 어렵다. 발전에 필요한 기술, 인력, 노하우를 얻기에 개방적 생태계에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설계에서 장비, 첨단 제조에서 모두 해외에 의존하는 단계에서 고립된 국가가 자강하려면 사실상 반도체 생태계 전반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함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이 7나노 미세공정에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경제성을 갖춘 양산 체제가 가능할까? ARM의 아키텍처 없이 독자적인 표준을 구현해 경쟁력 있는 모바일 칩을 제공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인가? 몇 가지 질문만 상상해 보아도 독자적 생태계 구축이 얼마나 어려우며, 그 과정에서 상대방도 혁신할 것이기에 독자적 생태계의 경쟁력도 높지 않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빅테크들이 요구하는 첨단 반도체는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었다 해도 팔기가 어려운 것이 중국이 처한 현실이다.

현재 중국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10나노 이하의 미세 패터닝 공정을 가능하게 해 주는 EUV 노광 장비 등 공정장비와 설계자산에서 서방과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10나노 이상의 성숙한 반도체 시장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최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자립과 풍부한 설계자산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대오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더욱 중대한 문제는 미국 주도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생태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예상되는 중국의 대응 전략과 미래 시나리오, 그리고 우리의 전략 방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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