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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감소에 기댄 불황형 흑자…2분기 0.6%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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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동차·반도체 생산과 수출이 늘면서 한국 경제가 두 분기 연속 성장했다. 25일 한국은행은 올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속보치·전 분기 대비)이 0.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시장이 예상한 수치(0.5~0.6%)와 비슷했다. 상반기(1~6월) 성장률은 전년 대비 0.9%로 한국은행 전망치(0.8%)를 웃돌았다.

2분기 수출과 민간 소비, 정부 소비, 설비투자 등이 모두 마이너스(-)로 고꾸라졌지만 무역수지가 개선돼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수출 감소 폭(-1.8%)에 비해 수입이 더 크게(-4.2%) 줄면서 ‘불황형 성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치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긴 했지만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이 개선된 효과를 봤다는 해석이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늘었고, 원유와 천연가스는 재고 영향으로 수입이 줄었다. 수입 감소 폭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2020년 2분기(-5.8%) 이후 가장 크다.

한은은 “자동차 산업 호조가 지속하고 반도체 생산이 증가로 전환되면서 제조업 성장이 GDP 성장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순수출의 GDP 성장기여도는 1.3%포인트로 다섯 분기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1분기 성장을 이끌었던 민간 소비는 2분기 들어 0.1% 감소하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의류 등 준내구재와 음식·숙박 등 서비스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부터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1분기에 민간 소비가 많이 늘어났던 기저효과 영향으로 분석된다.

하반기엔 경제 먹구름 걷힐까? 중국·반도체·날씨에 달렸다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6%로 집계됐다. 이날 부산항 신선대부두의 모습. 송봉근 기자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6%로 집계됐다. 이날 부산항 신선대부두의 모습. 송봉근 기자

한은은 5월 연휴마다 비가 내리는 등 기상요건이 악화했던 것도 소비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정부 소비도 1.9% 줄어 1997년 1분기(-2.3%) 이후 약 26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을 나타냈다. 한은은 건강보험급여 등이 줄어든 일시적 영향으로 봤다. 코로나19 확진자나 독감 환자 수가 줄어들면서 건보 급여나 방역 관련 지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불황형 성장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은은 부진했던 경제가 회복하는 흐름으로 해석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기저효과 영향으로 내수가 일시 조정된 부분이 있지만 자동차나 반도체 수출이 늘어난 긍정적 효과가 있어 불황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소비자심리지수가 개선된 점 등을 고려하면 민간 소비는 향후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도 “100조원을 웃도는 가계 초과저축과 견조한 고용시장을 토대로 민간 소비가 내수의 급격한 둔화를 방어할 것”이라고 짚었다.

“2분기 GDP 성장 주도한 건 제조업”

한국은행 신승철 경제통계국장(왼쪽 둘째)이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 신승철 경제통계국장(왼쪽 둘째)이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수출 감소 폭이 줄었다는 점이다. 지난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했지만, 2분기에는 0.6% 줄면서 회복 기미를 보였다. 상반기 내내 한국 경제를 짓눌렀던 수출이 살아나는 모습이다. 자동차·반도체 수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전체 수출은 소폭 줄고,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량은 더 크게 줄어들면서 순수출이 증가한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성장 기조 탈피는 여전히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올해 정부가 목표한 GDP 성장률 1.4%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7% 더 성장해야 한다. 상반기 성장률의 약 2배에 달하는 경제 반등이 하반기에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상저하고(上低下高·경제가 상반기에 저조하고 하반기에 반등)’ 시나리오가 순탄치는 않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지난 1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상반기에는 수출 부진 완화로 성장세가 예상을 소폭 상회하겠지만 하반기는 중국의 더딘 회복세 등으로 성장 경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한은은 미국 경제 연착륙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까지 고려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5월과 같이 1.4%로 유지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중국 경기 침체다. 원래 정부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한국 경제가 하반기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면서, 관광객 비중도 높아 수출과 내수에 모두 큰 영향을 끼치는 국가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를 두고 ‘더블 딥’(경기가 회복하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5월 중국의 소매판매는 지난해 5월과 비교해 12.7% 늘어나는 데 그치며, 4월(18.4%)보다 오히려 둔화했다. 산업생산도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하며 4월(5.6%)과 견줘 큰 폭으로 내렸다.

“견조한 고용시장이 소비 둔화 방어”

반면에 16~24세 청년실업률은 20.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생산·고용 지표의 뚜렷한 둔화에 씨티그룹과 JP모건은 올해 중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5%에서 5%로 낮춰 잡았다. 시장이 우려하는 대로 중국 경제가 구조적 침체로 빠진다면 한국 정부가 목표한 성장률조차 달성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 업황 회복도 하반기 경제 반등의 중요한 열쇠다. 반도체 업황은 다소 개선의 조짐이 보인다. 실제 24일 시장조사기관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16Gb(기가비트)’의 현물가격은 2.95달러로 지난 6일(2.903달러)에 비해 소폭 올랐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이 열리면서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고 있는 점도 긍정 신호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황 개선이 3분기부터 본격 시작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변수는 있다. 반도체의 핵심 시장인 스마트폰과 PC 수요 감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인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해 8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최대 시장인 중국이 경기 둔화를 겪은 영향이다. 이 때문에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반도체 경기가 괜찮아진다고 했지만 장담은 못 한다”면서 “언제 회복될지, 중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강도가 셀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극한 날씨도 변수다. 여름철 폭우는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겨울철 혹한은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동절기 예상 밖 한파가 닥치면, 에너지 수입량이 크게 늘면서 한국 GDP 성장률을 제약할 가능성도 있다. 2분기 GDP 성장률 선방도 원유 수입 감소로 전체 순수출이 늘어난 덕을 봤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2분기 GDP 성장률이 예상보다는 좋았지만, 소비와 투자·수출 등 주요 경제 지표가 여전히 마이너스”라면서 “중국과 반도체 불확실성이 남은 가운데, 고금리 탓에 내수 회복도 어려워 정부 예상대로 경제가 상저하고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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