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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관리 부처·기관별로 분산돼 위기 대응 어려워, 컨트롤타워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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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04면

이상기후 어떻게 대비할까, 전문가 진단

장석환 대진대 교수는 “ 인명 피해를 막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장석환 대진대 교수는 “ 인명 피해를 막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농경 사회가 시작된 이래 홍수나 가뭄이 발생하면 우두머리가 책임지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 한명이 책임질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위기 대응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장석환 대진대 스마트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최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두고 “사회적으로 대응해야 할 부분과 민간 차원에서 맡아야 할 방안이 촘촘하게 짜여진 선진국형 재난 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 재해에 관한 대응 방안을 꼼꼼하게 관리할 선진국형 재난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단 것이다. 40년 가까이 물 환경 및 수자원에 대해 연구한 장 교수는 수자원 방재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20일 중앙SUNDAY와 만난 그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어이없게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건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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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차도 통제 골든타임 놓쳐 참사

청주시 흥덕구 도종환 국회의원 청주사무소에서 공개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 직전 임시제방 보강공사 모습. [뉴시스]

청주시 흥덕구 도종환 국회의원 청주사무소에서 공개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 직전 임시제방 보강공사 모습. [뉴시스]

궁평2지하차도 참사의 원인은.
“직접적인 원인은 제방에 있다. 충북 청주시에 쏟아진 폭우로 미호강 물이 빠르게 불어나고 제방이 붕괴해서 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 넘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제방 높이가 기존 제방보다 1.5m 정도 낮았고, 낮아진 제방으로 물이 넘치고 궁평2지하차도 인근의 철골 가교 공사 현장에서 제방이 무너지면서 피해를 키웠다.”
다른 문제는 없었나.
“재해 관리 통제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제방 붕괴로 6만t가량의 물이 쏟아지면서 2~3분 만에 지하차도가 잠겼다. 이렇게 빠르게 침수될 것이라곤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미호강 수위가 경계 단계를 넘어선 건 오전 4시 10분이다. 홍수통제소에선 이런 사실을 유관 기관에 전파했다. 정작 도로 통제 권한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4시간 넘도록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모든 지자체는 홍수나 태풍 같은 재난이 닥쳐오면 재난 종합 상황실을 두게 돼 있다. 홍수 통제소에서 홍수 경보를 내렸으면 재난 종합 상황실에서 빠르게 상응 조치에 나서야 한다. 궁평2지하차도만 보더라도 근처에 이미 산사태가 나서 버스가 노선을 변경했다. 위험을 감지했다면 지하차도 역시 통제해야 하는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지자체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의미인가.
“제방이 무너지는 상황을 가정한 구체적인 시스템을 사전에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지자체만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매뉴얼에 없는 위급한 상황에선 권한을 가진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령 도로 통제만 하더라도 책임 소재는 지자체에 있지만, 실행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찰서에도 예·경보가 들어온다. 소방서에도 신고가 들어왔다. 지자체나 경찰, 소방서 등 어느 한 기관이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런 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해결책은 없나.
“각 기관별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궁평2지하차도 참사 피해가 심각해서 그렇지 책임 주체가 분산돼 곤란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가령 지난 15일 월류한 괴산댐을 담당하는 기관은 수자원공사가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이다. 팔당댐, 청평댐 등 발전용댐은 모두 마찬가지다. 다목적댐인지 발전용댐인지에 따라 수자원공사와 한수원으로 책임 기관이 나뉜다. 산사태도 마찬가지다. 산사태 경계 발령은 산림청에서 담당하지만, 산이 끝나는 지점 밑으론 지자체 책임이다. 이렇게 조각난 상태에서는 즉각 대응이 어렵다. 강력하게 통합 조정이 돼야 한다. 각 정부 부처와 기관 별로 나뉜 책임 소재를 넘어선 최상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과거엔 대통령실에 재난관리 비서관이 있었는데 다시 고려해볼 일이다.”
사고 예방도 중요한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간단치 않다. 예컨대 홍수 피해는 하천 범람과 도시 내부 침수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천은 국가 하천, 지방 하천, 소하천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국가하천은 80% 정도 정비돼 있다. 반면 지방하천과 소하천은 50%에 불과하다. 하천 정비에 충분한 예산을 투자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정비 책임을 지고 있는 지자체 예산에 한계가 있다.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니 경보시스템을 세분화하고 강화해야 한다. 현재는 경계경보 한번만 내리는데 하천 수위마다 경보를 발령해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소규모 분산형 홍수조절 시스템 필요

중복인 21일 무더위 속에서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중복인 21일 무더위 속에서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도시 침수 문제는 예산 확보가 수월할 것 같은데.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국내 지자체 중에 재정자립도에서 둘째 가면 서러울 서울시 강남구에서도 지난해 강남역 침수 사태가 벌어졌다. 100년에 한번 발생할 만한 호우가 쏟아진 탓이다. 국내 하수관로 설계 기준은 최근에 신설된 게 30년 빈도 수준이고 10년 전엔 20년간 최대 호우를 기준으로 했다. 100년에 한번 올만한 침수 피해를 막자고 하수관로 설계 기준을 모두 상향하려면 수십조원의 비용이 든다. 그나마 강남역과 광화문, 신도림 등 침수 피해를 겪은 지역을 중심으로 대심도 터널을 만들기로 했는데, 여기에만 1조5000억원가량이 들어갈 정도다. 대규모 공사보다 소규모 분산형 홍수조절 시스템을 여러 개 만드는 게 낫다. 단기적으론 주요 건물에 차수막을 만들고, 지하차도에 자동차단 시설 등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추가로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가.
“도시 침수는 예·경보 발령 기준이 없다.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모든 지역에 계측기를 설치해야 한다. 언젠가 완비해야 할 것이지만,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도시 침수 위험 지도는 만들고 있는데, 이마저도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9개만 공개돼 있다. 침수 지역이라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주민들의 우려도 있고, 아직 구축이 안된 곳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것을 예방하긴 어렵다.”
정부와 민간이 어떤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까.
“재해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재산권과 인권 중에 무엇을 중시하는 지에서 구분된다. 재산 피해는 많이 나더라도 인명피해는 줄여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인명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를 만한 상황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민간에선 홍수 보험 등으로 재해로부터 재산권을 지키고 관리하는데 집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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