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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사색]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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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30면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면우

깊은 밤 남자 우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 복도, 계단에 서서 에이 울음소리 아니잖아 그렇게 가다 서다 놀이터까지 갔다 거기, 한 사내 모래바닥에 머리 처박고 엄니, 엄니, 가로등 없는 데서 제 속에 성냥불 켜대듯 깜박깜박 운다 한참 묵묵히 섰다 돌아와 뒤척대다 잠들었다.

아침 상머리 아이도 엄마도 웬 울음소리냐는 거다 말 꺼낸 나마저 문득 그게 그럼 꿈이었나 했다 그러나 손 내밀까 말까 망설이며 끝내 깍지 못 푼 팔뚝에 오소소 돋던 소름 안 지워져 아침길에 슬쩍 보니 바로 거기, 한 사내 머리로 땅을 뚫고 나가려던 흔적, 동그마니 패었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 2001)

정말 별수 없을 때에는 수를 내지 않는 것이 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만 알고 있는 사실은 아닐 것입니다. 단단한 벽 앞에서 고개만 젖혀야 했다면, 걸을수록 좁아지는 길을 걸어왔다면, 사위가 점점 어두워지는 놀이터 같은 곳에 혼자 주저앉아야 했다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절로 치밀어 오르는 ‘엄마’라는 말. 세상에 태어난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웠고, 가장 많이 불렀으며, 또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자주 속으로 속으로 삼켜야 하는 말. ‘엄마’라는 말.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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