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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라진게 없나…오송참사, 지자체·경찰·소방 또 책임 미룬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해양경찰이 도보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해양경찰이 도보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9개월, 달라진 건 없었다

“미호강 범람 위기 신고를 청주시가 통보하지 않았다.” (충북도)
“해당 도로의 통제권은 충북도에 있다.” (청주시)
“도로 통제 1차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경찰)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에 뒤따르는 책임기관들의 공방이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직후 관계기관들의 책임 전가 경쟁과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시 용산구청에선 “경찰이 인파 관리를 할 줄 알았다”는 반응이, 경찰에선 “주최가 없는 인파 사건은 경찰 매뉴얼에 없다” 등의 말이 쏟아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허점도 곳곳이 닮아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① 묵살된 사전경고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쯤 폭우로 불어난 청주 미호강 물 6만t이 무너진 제방을 넘어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덮치기까진 여러 징후가 있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 발생 4시간 전 충북도·청주시·흥덕구 등 76개 기관에 ‘홍수경보’를 발령했다. 2시간 전에는 흥덕구청에 “주민대피와 교통통제가 필요하다”고 알렸지만 도로관리 주체인 충북도까진 닿지 않았다.

남화영 소방청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15일 충북 오송 침수현장을 찾아 상황판단 회의를 하고 있다. 뉴스1=소방청

남화영 소방청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15일 충북 오송 침수현장을 찾아 상황판단 회의를 하고 있다. 뉴스1=소방청

사고 1~2시간 전엔 112 신고도 있었다. 오전 7시 4분과 58분 각각 ‘오송읍 주민 긴급대피’ ‘궁평지하차도 긴급통제’를 요청하는 신고 2건이 경찰에 접수됐다. 소방당국도 사고 약 50분 전 “미호강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119 신고를 청주시 당직실에 전했지만 충북도는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태원 참사 때도 4시간 전부터 무려 11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지만 묵살됐다.

 “3~4분 만에 벌어진 일”(청주시 관계자)이라는 등 지자체의 반응은 이태원 참사 당시 “예측할 수 없었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반응과도 닮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측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쏟아지고 있다. 금강홍수통제소의 특보내역상 미호강은 2017년·2020년·2023년 7월마다 3년 주기로 홍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청주시는 국가수자원관리체계상 예산 문제 등으로 하천 퇴적물 준설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때도 3년 만의 거리두기 해제로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경찰 내부 보고가 있었다.

② 책임 떠넘기기

 오송 참사를 둘러싼 ‘핑퐁’은 흥덕구-청주시-충북도-경찰-소방 사이에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흥덕구는 청주시에 금강홍수통제소의 경고를 알렸다고 한다. 청주시는 “해당 도로는 충북도 관할이고, 주민대피령은 인근이 논밭이라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청주시 안에서는 재난관리팀·자연재해팀 사이에 주무팀 논란이 있다. 도로법상 지하차도 관리 주체인 충북도는 “청주시 당직실이 119 신고를 전달하지 않았다. 매뉴얼상 물이 50㎝ 차올라야 도로를 통제할 수 있는데 사고 직전까지 징후가 없었고, 강물이 2~3분 만에 유입돼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충북도 재난안전관리실·정책기획관실·도로과·도로시설팀·도로관리사업소는 각각 매뉴얼 공개를 거부했다. 도로교통법상 또다른 통행제한권자인 경찰은 “일차적 책임도 지자체에 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지자체·소방당국은 행복도시건설청이 쌓아둔 임시 모래제방을 사고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지난 15일 폭우로 인해 침수되는 충북 청주시 오송궁평지하차도 모습. 뉴스1=충북도

지난 15일 폭우로 인해 침수되는 충북 청주시 오송궁평지하차도 모습. 뉴스1=충북도

158명의 사망자를 두고 서울시·구청·경찰·소방·호텔이 서로 책임을 미루던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흐름이다. 당시 용산구청은 방역·소음·불법주차 등은 관리했으나 “인파 관리는 경찰이 할 줄 알았다”고 반응했다. 이에 경찰은 “주최 없는 행사는 매뉴얼상 인파관리 대상이 아니다.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건 구조책임기관인 소방이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방 측은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많지 않아 통제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맞받았다. 해밀턴호텔의 불법 증축은 행복청의 임시제방처럼 도마에 올랐었다.

불법증축 혐의를 받는 해밀턴호텔 주점 테라스(왼쪽)는 경찰 수사 결과 이태원 참사를 심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연합뉴스

불법증축 혐의를 받는 해밀턴호텔 주점 테라스(왼쪽)는 경찰 수사 결과 이태원 참사를 심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연합뉴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기관 간 책임 전가 경쟁이 재연되는 덴 법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 박성배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상 안전관리 책임은 지자체 몫이지만, 실제 시민들이 신고할 땐 흔히 경찰·소방을 찾다 보니 명확한 책임자 규명이 어려워진다”며 “이번 참사처럼 기초단체·광역단체로 분절화된 행정이 일사불란한 대응을 방해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나채준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 공무원은 전문성 면에서도, 인력·재정 면에서도 재난을 대비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현행법상 책임소재 기준을 재난 원인으로 할지, 재난 지역으로 할지 규정짓기도 굉장히 힘들다”고 지적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③ 불분명한 책임소재

 충북경찰청은 지난 17일 이번 참사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태원 참사는 물론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 침수·세월호·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인재(人災) 때마다 등장하는 혐의다. 경찰은 관련기관 등을 조사한 뒤 책임자를 규명할 계획이지만, 앞선 사건들에서처럼 각 기관들의 면피 경쟁을 뚫을 카드로 ‘각자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결과가 한데 모여 참사로 이어졌다’는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재해사건을 다수 맡은 한 변호사는 “지자체와 경찰 모두 주의의무가 있어 업무상과실치사 공동정범 논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한 논리지만 처벌 후에도 확실한 책임소재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재난에 대한 책임과 기능을 일치시키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고 때마다 경찰책임론이 이는데, 법적으로 경찰청은 자치경찰 사무를 지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관련 기관이 동시접속해 함께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라는 강력하고 값비싼 도구를 만들어놓고도 활용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하차도와 임시제방이라는 공공 시설물이 문제가 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책임이 거론된다는 점은 이태원 참사 때랑 다른 점이다. 중대시민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지자체장 등은 사망자 발생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손익찬 변호사는 “국가 하천의 경우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되기 때문에 제방 관리를 잘못해 사고가 났다면 해당 법이 적용될 수 있다”며 “적극적 재해예방 조치가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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