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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10년뒤 설계하는 곳…그곳엔 '자동차'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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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차 선행기술원

현대차 연구

차가 대중적이지 않았을 땐 차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멀미약을 붙이고 여행길에 나섰지요. 그런데 차멀미를 덜어 주는 것이 꼭 제약사의 일일까요? 원인 제공(?)한 자동차 회사가 멀미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뒷좌석 멀미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아예 차가 없는 연구소까지 둔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점쳐 보시죠.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격한 안무에도 화사하게 흩날리는 머릿결, 가사대로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입 모양. 지난 1월 인공지능(AI) 기술로 탄생한 4인조 버추얼 아이돌 ‘메이브’의 모습이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메이브는 수십만 장의 이미지를 학습해 수정을 거듭하면서 800개가 넘는 풍성한 ‘표정’을 구현해 기존 가상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술에 20억원을 투자한 기업은 바로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얼굴의 질감과 미묘한 표정 변화, 눈의 깜빡임, 찡그리는 콧잔등 주름까지 인식하는 최첨단 스캐닝 기술을 가진 AI가 꽉 막힌 도로에서 지친 운전자 표정을 알아채곤 ‘신나는 노래 틀어드릴까요’ 하고 말을 걸어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800개에 달하는 다양한 표정을 구현한 4인조 가상 아이돌 걸그룹 메이브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사진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현대차는 800개에 달하는 다양한 표정을 구현한 4인조 가상 아이돌 걸그룹 메이브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사진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

현대차그룹이 무한 확장하고 있다. 핵심은 ‘열린 혁신’이다. 자동차와 가상세계라는 다소 생경한 조합은 현대차가 1년6개월 전 ‘소비자가전쇼(CES) 2022’에서 ‘메타모빌리티’라는 밑그림으로 처음 공개했다. 그룹 내 신기술 연구개발(R&D) 조직인 ‘선행기술원(IATD)’이 10년·20년 뒤 미래 모빌리티 연구를 주도한다. 선행기술원은 김용화 CTO(최고기술책임자·사장) 산하인 남양연구소·의왕연구소와 달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직속이다.

현대차 선행기술원(IATD)은 가상현실이 접목된 ‘메타모빌리티’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현대차 선행기술원(IATD)은 가상현실이 접목된 ‘메타모빌리티’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경기도 성남시 그레이츠판교 12층에 자리 잡은 선행기술원에는 아예 ‘자동차’가 없었다. 대신 사무실 곳곳에서 ‘어바웃 타임’ ‘미드나잇 인 파리’ 같은 영화 포스터와 배트맨과 베어브릭 등 아기자기한 피규어가 눈에 띄었다. 2021년 출범 이후 불과 2년 만에 직원 수가 50명에서 150명으로 늘었다. 대부분이 책임연구원(과장급 이상)인 이들은 현재 ‘임베디드 AI(내장형 인공지능)’와 ‘양자 컴퓨터’ ‘셀프 힐링(self heeling)’ ‘태양전지’ 등 13개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있다.

2021년 시작된 임베디드 AI 프로젝트는 현재 20여 명에 추가 인원을 선발하고 있을 정도로 가장 규모가 크다. 특히 사람처럼 묻고 답하는 생성형 AI인 챗GPT가 메가 히트하면서 연구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임베디드 AI는 자율주행 때 자동차 모든 기기의 AI가 카메라 영상 등 데이터를 통해 악천후 등 환경 변화에도 매끄럽게 구동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자율주행 성능을 효율화하고 전력 소모는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것도 과제다. 지난달 말 AI 알고리즘 등 소프트웨어 개발을 마쳤고, 올 연말 아이오닉5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전기차 뒷좌석의 차멀미를 완화하는 기술도 올해 3월부터 프로젝트 대상으로 꼽혔다.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따라 멀미 정도를 측정한 데이터가 모이면 가속·감속 패턴을 최적화하거나, 시청각은 물론 촉각 등 감각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주행 환경을 예측하는 식으로 멀미를 줄이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현대차는 미생물·버섯균도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 현대차 사내벤처 출신인 엠바이옴은 중고차 에어컨 증발기들을 수거해 4000여 종의 미생물을 분석한 끝에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지 않는 미생물 조합을 개발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사내벤처 출신 스타트업 마이셀은 버섯균으로 ‘지속 가능한 가죽’을 생산한다. 버려지는 버섯균의 사체를 매트 형태로 부풀어 오르도록 배양해 내는 방식이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벤틀리 등도 대체 가죽을 이미 도입했거나 개발에 적극적이다.

현대차 ‘혁신’의 뚝심은 1998년 수소차 개발부터 역사가 깊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2006년 경기도 용인시 현대자동차 마북연구소를 찾아 “수소차 100대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보라. 쓰고 싶은 기술 다 적용해서”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현대차 넥쏘는 올해 4월까지 세계 수소차 시장의 51.2%(SNE리서치) 점유율을 차지했다. 정의선 회장에게 이런 뚝심은 대물림됐다. 정 회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전기차와 함께 수소 부문에서도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도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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