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관계 단절’ 겪는 치매 환자들, 약보다 사람을 만나라 [건강한 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전문의 칼럼 김어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6일(현지시간) 알츠하이머 치매 신약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을 승인했다. 마지막 FDA 승인 20년 만이다. 지금까지의 치료제는 인지장애를 경감시키는 효능이 있으나, 병의 원인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아니었다. 레카네맙은 치매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베타라는 독성 단백질을 뇌에서 제거한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의 환자에게서만 효능이 증명된 상태지만 의학적으로 커다란 도약인 것은 분명하다.

치매는 원인에 따라 알츠하이머병, 루이체 치매, 혈관성 치매 등으로 나뉜다. 고가인 ‘치매 검사’들은 실은 치매 진단보다 이런 ‘구분(감별진단)’을 위해 시행된다. 레카네맙은 이들 중 알츠하이머병만을 위한 것이다. 알츠하이머만을 단독으로 공략하는 신약이 나왔으니 의사든, 보호자든 자세한 ‘구분’을 위해 더욱 애쓸 것이고 의료비용은 그만큼 더 증가할 것이다.

신통한 치매 약물이 단 하나도 없던 수십 년 전에는 환자가 우리의 관심이었다. 우리의 스승들은 치매 환자를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쳤다. 오히려 증상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충고를 들었다. 하지만 특정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게 된 지금 우리는 개인의 고유한 증상보다 고차원적인 뇌 영상과 뇌 조직 내 단백질을 먼저 떠올리게 됐고, 한 사람의 모호한 이야기보다 데이터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면 알츠하이머 치매가 예방될까.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에서 회의적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의 관찰을 통해 치매 예방 효과가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근거가 있는 예방법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 사회적 모임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만난다고 해서 우리를 기억하기나 할까?’ 이런 핑계로 치매 환자들은 질병 초기부터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겪기 시작한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행복을 누린다. 설령 누군지 알아보지 못해도 안아주는 마음으로 함께 있는 시간은 그들의 뇌를 안정시키고 그날 밤 더 좋은 잠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다는 핑계로 관계라는 치료제를 손에서 놓지 않는 한 누구도 이 최상의 치료법에서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사람을 만나라! 그리고 나머지를 약이 하게 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