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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대는 바닷길 따라, 1300쪽에 담은 해양판 실크로드 문명사[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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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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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 문명사 
주강현 지음
바다위의정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구상을 처음 제시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참여국이 150개를 넘었다. 옛날 동서양의 교통로인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현대판으로 다시 구축해 중국 주변국가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이 대담한 구상은 전 세계 인구의 75%, GDP의 50%를 넘는 규모로 불어났다.

 중국 대륙을 거쳐 가는 육로 실크로드야 어쩔 수 없겠지만 남중국해, 인도양, 아라비아해,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양 실크로드는 한국의 주요 무역항로이기도 해서 우리로서도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해양 실크로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잦은 충돌과 경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대 한국은 해운·조선·무역 강국으로 5대양과 크고 작은 바다들을 누비고 있다. 우리에게 바다와 항로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바닷길과 바닷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해양실크로드 문명사』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매우 유익한 책이 될 수 있다. 대작으로 일단 분량이 방대하다. 원고지 6000장을 넘는다. 1328쪽에 달하는 수제본 ‘벽돌책’이다. 오랫동안 해양을 탐구하며 이븐 바투타의 후예임을 자청해 온 지은이가 직접 전 세계 바다와 항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발품을 팔아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본지 중앙SUNDAY 2016년 1월 3일자~12월 18일자에 걸쳐 연중기획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탐사’에 게재된 내용을 토대로 자료를 보완하고 다듬어 완성했다. ‘21세기 해양 한국’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필독서로 읽을 만하다고 하겠다.

기원전 138~126년 장건의 서역행을 묘사한 둔황석굴 벽화. [사진 바다위의정원]

기원전 138~126년 장건의 서역행을 묘사한 둔황석굴 벽화. [사진 바다위의정원]

이 책은 극동의 베링해와 오호츠크, 캄차카반도로부터 동남아시아 말루쿠제도와 술라웨시, 말레이반도와 미얀마, 방글라데시, 벵골만과 스리랑카, 코로만델과 말라바르, 구자라트와 파키스탄,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오만과 홍해 그리고 에티오피아, 케냐와 탄자니아와 모잠비크, 이집트와 튀니지, 레반트와 베네치아, 제노바 같은 지중해 해역까지 다룬다. ‘대항해시대’를 주도한 유럽이 해양을 지배하기 이전의 바닷길을 탐구해 촘촘하게 그물로 엮었다.

고대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밸리 두 문명은 바닷길로 연결돼 있었다. 당시에는 비단무역이 없어서 실크로드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이 바닷길이 먼 후대에 이루어질 해양 실크로드의 모태적 기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세계의 무역력이 동방까지 확산된 데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 원정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가 세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역할을 했는데 오랫동안 동방과의 교역 전초기지를 담당했다.

모로코에서 중국까지 간 이븐바투타(왼쪽)와 교역왕이었던 말리의 왕(오른쪽)이 그려진 세계지도.[사진 바다위의정원]

모로코에서 중국까지 간 이븐바투타(왼쪽)와 교역왕이었던 말리의 왕(오른쪽)이 그려진 세계지도.[사진 바다위의정원]

본격적인 해양 실크로드 역사를 논할 때 이슬람제국의 등장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7세기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한 이슬람제국은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유럽의 이베리아반도까지 통합하며 대서양에서 인더스강 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이슬람의 바다’를 구축했다. 상업을 중시했던 이슬람제국은 옛 국경과 장벽을 없앤 거대 자유무역지대로 기능했다.

 이슬람세계에서 글로벌 물류체계가 통합됐고 칼리프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세력은 누구나 이 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무슬림 상선은 지중해 입구 지브롤터에서 인도양 스리랑카와 중국 심지어 고려의 벽란도에 이르는 항로를 누볐다. 사실상의 해양 실크로드 전부를 관통했다고 봐야 한다. 카벨(케이블), 아르제날(병기창), 마가진(창고), 리스코(위험), 셰크(수표), 타리프(관세), 트라픽(상점) 등 항해와 상업과 관련된 아랍어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된다. 무슬림의 의무인 메카 순례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활성화하고 상품교역을 촉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홍해 연안의 아프리카 기독교왕국인 악숨 제국의 최대 항구는 아둘리스였다. 상아, 노예, 향신료 등의 집산지로 홍해와 인도양 바닷길의 주요 기착지였다. 아라비아 반도 예멘 서남부에 위치한 아덴은 천년항구로 불린다. 오만은 신드바드의 나라다. 신드바드는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인도양을 가로질러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오가던 뱃사람이었다. 신드바드의 이야기는 이슬람 상인이 아프로-유라시아 교역 네트워크에 전면으로 침투하여 거대 상업권을 창출해낸 배경에서 출발한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성화. 에티오피아 국립대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바다위의정원]

아프리카의 기독교 성화. 에티오피아 국립대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바다위의정원]

사산조 페르시아는 홍해, 지중해로 향하는 무역루트의 주요 항로를 장악했으며 스리랑카까지 나아가는 등 중국으로 가는 남쪽 무역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소말리아에서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까지 이어지는 동아프리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스와힐리 문명권이다. 인도양을 건너온 해양 문명이 착지하는 종점이자 아프리카에서 동쪽의 인도와 북쪽의 아라비아반도로 향하는 출발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까운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인이 아니라 말레이-인도네시아계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인도양을 가로질러 건너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 설화를 그린 그림. 스시랑카 갈 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사진 바다위의정원]

부처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 설화를 그린 그림. 스시랑카 갈 해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사진 바다위의정원]

 면화의 본향인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해역권은 기원전부터 페르시아만과 빈번하게 소통했다. 후추의 본산지 말라르바는 방대한 양의 향료를 유럽으로까지 수출했다. 벵골만 미얀마는 중국에서 인도로 가는 남방실크로드 촉신독로의 거점이었다.

 석유 등 주요 원자재와 상품의 통과하는 핵심 항로인 동남아 믈라카해협과 남중국해는 지금 ‘뜨거운 바다’다. 특히 남중국해에선 미·중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판 일대일로 해양 실크로드의 주요 통과 지역인 이곳에서도 과거 많은 해양 강국들이 명멸했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까지만 해도 해양교통이 활발했지만 조선시대 들어 해금정책으로 바다를 통한 교역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바다를 경시한 결과는 너무나 자명했다.

 항로가 불분명하고 다양했던 과거의 해양 실크로드 연구에 대한 진수, 정본,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책들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해양실크로드 문명사』는 바닷길과 그 주변의 세계 문명을 탐구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항해술, 조선사, 무역사 등을 포함한 해양사에 관한 융복합 연구와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 이슬람·불교 등 각종 종교사, 중국과 인도의 정사,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사료들 그리고 금석문, 구전신화, 고고학적 발굴 성과 등을 총망라해 재구성했다. 인류의 해양문명사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다리로서 매우 유용하다.

 지금은 다시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의 시대다. 파란만장한 해양 실크로드 문명사는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고쳐 써 내려 가야 할 것이다. 탄자니아 킬와섬의 다우선 선장, 벵골만 치타공의 어부, 술라웨시의 원해항해자 부기스족, 말루쿠제도 암본에서 육두구를 말리던 농부 등 많은 원주민의 목소리를 우리는 조용히 다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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