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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난듯 흔들려" 고가 밑 놀고있는 112억짜리 부산 '비콘' [2023 세금낭비 STO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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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산 비콘 그라운드가 설치된 수영 고가도로 전경. 가운데 고가도로 뒤편으로 광안대교가 보인다. 뒤편 왼쪽이 해운대 신시가지 모습이다. 사진 부산시

부산 비콘 그라운드가 설치된 수영 고가도로 전경. 가운데 고가도로 뒤편으로 광안대교가 보인다. 뒤편 왼쪽이 해운대 신시가지 모습이다. 사진 부산시

수영고가도로 아래 조성된 복합생활문화시설인 부산 비콘 그라운드의 커뮤니티 공간. 침대나 의자 등 갖가지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위성욱 기자

수영고가도로 아래 조성된 복합생활문화시설인 부산 비콘 그라운드의 커뮤니티 공간. 침대나 의자 등 갖가지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위성욱 기자

지난 7일 오후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수영고가도로. 고가도로 밑으로 컨테이너를 쌓아둔 것 같은 형형색색의 철제 건물이 보였다. 부산시가 2020년 11월 도시재생 사업으로 지은 컨테이너형 복합 생활문화시설(비콘 그라운드)이다. 비콘 그라운드는 Busan의 B와 Contain의 Con을 붙인 말로 항구도시 부산의 감성과 문화를 담은 공간을 의미한다.

놀고있는 90억짜리 생활문화시설 
이곳은 고가도로 하부 쓸모없는 공간을 활용해 주민에게는 커뮤니티·문화 공간을, 국내외 관광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수영터널 입·출구부터 F1963(공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곳) 인근까지 1㎞구간에 지상 2층 규모(전체 면적 1979㎡)로 구성돼 있다. 블록 형태로 여섯 군데에 식당가·소매점·놀이 공간·청년벤처기업·웹툰창작공간 등이 있다. 이곳에는 국비와 시비 등 90억원과 운영비 22억원 등 총 112억원이 들었다. 올해도 운영비로 7억원이 편성돼 있다. 운영비는 부산시 예산이다.

하지만 방문객은 찾아보기 힘들고 입주업체도 개점휴업 상태여서 세금만 낭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년째 이곳에서 영업을 하는 문모(35)씨는 “건물 자체는 색다르긴 한데 주변에 볼거리도 없고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를 보고 들어온 입주 식당도 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찾은 비콘 그라운드는 사실상 관광객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부산시 측은 “6월 말 기준 51개 점포 중 16곳이 비어있다"라며 "관리위탁기관이 부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부산시설공단으로 바뀌면서 대부분 점포는 이곳에 알맞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비워놓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비콘 그라운드를 둘러본 결과 불이 켜져 있거나 문이 열린 점포는 10곳 중 2~3곳에 불과해 실제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부산 비콘 그라운드 커뮤니티 공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텅 빈 모습이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 커뮤니티 공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텅 빈 모습이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 식당가 입구. 1~2곳을 제외하곤 식당가는 거의 문이 닫혀 있거나 불이 꺼져 있었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 식당가 입구. 1~2곳을 제외하곤 식당가는 거의 문이 닫혀 있거나 불이 꺼져 있었다. 위성욱 기자

2021년부터 이곳 한 업체에 일하고 있는 직원 임모(24·여)씨는 “찾는 사람이 없으니 식당가와 입주업체가 빠져나가 불이 꺼지고, 이 바람에 낮에도 어둡고 휑한 느낌에 외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초창기에는 임시 장터가 열리고 행사도 있어 잠시 활성화되는 듯했는데 코로나19 이후로 지역 주민만 통로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진난 듯한 진동으로 고통 
게다가 입주 업체는 열악한 환경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비콘 그라운드가 고가도로 아래에 있어 지진이 난 것 같은 진동이 자주 발생하고, 자동차 등으로 인한 각종 소음도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 트럭 등 대형 차가 지나갈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고가도로 아래쪽에 유료주차장이 있지만, 공간이 부족해 주차난도 심하다고 한다.

한 입주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0·여)씨는 “건물이 오픈형으로 돼 있다 보니 아무나 사무실로 접근할 수 있어 보안과 안전이 늘 걱정이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고가도로에서 떨어진 빗물이 사무실 밖 복도에 그대로 떨어지는 등 환경도 열악하고 업무지원 시설도 사실상 없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비콘 그라운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하지만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업체나 식당도 많고, 불이 꺼진 곳도 많아 야간이면 여성 혼자 걸어 다니기에 위험해 보였다.

"문제점 정확히 진단하고 대책 마련해야" 
부산시 관계자는 “당초 비콘 그라운드를 지은 뒤 활성화할 계획 등도 마련했지만 예산확보 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행되지 않았다”라며 “포토존 조성이나 야간 경관·체험공간 등을 확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비콘 그라운드 소매점이 모여 있는 쇼핑 그라운드. 이곳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이 닫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 사람들로 쇼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갔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 소매점이 모여 있는 쇼핑 그라운드. 이곳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이 닫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 사람들로 쇼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갔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의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공간. 이곳도 1~2곳만 직원 1~2명이 나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위성욱 기자

부산 비콘 그라운드의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공간. 이곳도 1~2곳만 직원 1~2명이 나와 근무를 하고 있었다. 위성욱 기자

부산시 건축자산 연구원인 홍순연(건축학) 박사는 “비콘 그라운드는 조성 전에 공간특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입주업체를 선정하고 콘텐트를 개발했어야 했다"라며 “주민들이 ‘벽’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지역민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공간이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홍 박사는 "접근성 등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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