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앞세우는 과학기술 진흥|김영우<과기정책 평가센터 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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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 당국이나 전문가·기업인들이 과학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경제난국은 과학기술개발을 통해 극복돼야 하며 앞으로 산업구조 고도화의 견인차로 기술혁신이 부각될 것이고 기술 경쟁력이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다고 누구나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강조되고 주장되는 만큼 과학기술 혁신에 국가 자원을 얼마나 집중시키고 있으며 그 성과가 나라나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 경제정책 과제 중 중소기업의 육성, 농업의 획기적 개발, 부동산투기 억제처럼 자주 강조되고 수많은 정책 대안이 제시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계열화·체질개선·기술집약화는 지연되고 농업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여파로 극심한 자생력 상실을 경험하고 있으며 부동산투기 만연은 과소비·배금사상·한탕주의 등을 불러 자본주의 운영기조마저 흔들고 있다.
이에 따라 강조되어온 정책이 결국에는 잘 수행되지 않는 정책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 논리마저 성립되는 듯하다.
과학원리의 새로운 개발이나 기술혁신의 성과는 산업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국민생활의 질·복지 내용, 사회능률의 향상 등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데 우리 모두 동감하고 있다.
미래에 대비하고 한때의 경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발전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잘 안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안타깝다.
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산업구조 고도화·기술혁신이 중점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계획의 총량 모형설정에 과학기술 요인이 누락돼 있고 과학기술 혁신이 경제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부각될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고 있다.
매년 예산편성의 기본지침을 발표할 때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지만 실제 예산 편성 때는 기본 지침에서 강조되는 만큼 정부의 연구·개발예산이 배분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기술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교육의 질을 판가름하는 대학의 실효성 있는 연구기자재 확보계획은 찾아보기 어렵고, 개정된 병역특례 제도도 이공계 우수 연구인력의 계속적인 학업과 연구를 조장하는데 너무도 인색하다.
왜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앞다투어 말하면서 실천단계에 가면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것인가 우리 모두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 과학기술 혁신이 경제사회 발전의 핵심적 관건이 되는 것이라면 이에 걸맞은 정책이 실제로 구현되고 예산도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또 경제사회 발전정책을 수립하는데 과학기술 관련자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하며 과학기술이 여러 가지 정책 결정의 준거로 작용돼야한다. 말하자면 발상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약력=▲53세 ▲서울대 정치학과, 명지대 대학원졸(경제학박사) ▲전경련 상무,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현 과학기술정책 연구평가 센터 소장,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 사무국장, 중앙대·외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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