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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할 필요 없다”는데…막걸리·제로콜라 들었다 내려놓는 사람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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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05면

아스파탐 ‘발암 가능물질’ 지정 파문

지난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 750㎖ 용량의 막걸리에는 약 72.7㎖의 아스파탐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뉴시스]

지난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막걸리. 750㎖ 용량의 막걸리에는 약 72.7㎖의 아스파탐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뉴시스]

“아차!”

지난 3일 서울 성북구의 한 사립대학. 제로 콜라를 시원하게 들이켠 뒤 김규림(22)씨는 뉴스 검색을 해보다가 어쩔 줄 몰라 했다. 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이승희(43)씨가 진열된 막걸리를 일일이 들어보며 성분 표시를 살펴봤다. 다른 마트에서는 이모(60)씨가 주머니에서 꺼낸 노란 메모지에 적힌 ‘막걸리 리스트’ 중 해당된 제품만 쇼핑 카트에 실었다. 전에 없던 행동을 한 이들. “아스파탐 때문”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인체 무해론과 유해론을 지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사이, 아스파탐 논란이 불거졌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 달면서도 칼로리는 거의 없는 인공 감미료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제로’ 음료에 들어가고, 막걸리 등의 발효주, 과자류 등에 들어간다. 지난 2일 로이터통신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 그룹2B로 지정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김씨와 이씨, 그리고 또 다른 이씨처럼 국민 일부는 “걱정스럽다”고 한다. 1965년 미국 화학자 제임스 슐레터가 발견한 지 58년, 1985년 한국에서 식품첨가물로 지정된 지 38년, 2023년 여름의 한가운데 아스파탐 논란이 뜨겁다.

막걸리 33병 먹어야 1일 허용량 초과

“전혀 공포에 빠질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아스파탐이 ‘발암 가능 물질’ 그룹2B로 지정된다고 해도 혼란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흔히 ‘발암물질’이라 부르는  네 가지 구분 ‘그룹1, 그룹2A, 그룹2B, 그룹3’은 위험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이 확인된 여부를 중심으로 나눈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전문가와 정부기관이 향후 연구나 정책 방향을 수립할 때 참고하기 위한 분류이지, 소비자가 조심하라는 건 아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또 “지레 전문가나 언론이 공포를 조장하거나, 소비자가 공포에 떨어서 혼란을 일으키는 게 더 유해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IARC은 왜 아스파탐을 건드렸을까. 아스파탐은 체내에서 소화 과정을 거치며 페닐알라닌·아스파트산·메탄올로 분해된다. 모두 체내에 축적되지 않지만, 이 중 10% 가량 되는 메탄올이 문제다. 메탄올이 그룹1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로 분해될 수 있다.

“(그룹2B에 포함될 예정이라는) 아스파탐은 김치와 같은 등급입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한 의학자가 “걱정하지 말라”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인체·동물 실험으로 입증된 ‘발암 확인 물질’ 그룹1에는 술·담배가 들어있다. 이 여름의 뜨거운 햇볕도 그룹1이다. 사례가 적으면  ‘발암 추정 물질’ 그룹2A에 포함된다. 기자가 지금 마시고 있는 카페라테의 ‘65도 이상 뜨거운 물’, 붉은 고기, 조리 시 연기 등도  해당된다. 동물실험을 통해 일부 발암성이 확인되면 ‘발암 가능 물질’ 그룹2B에 속하는데, 김치 같은 절인 채소와 스마트폰 전자파, 알로에 베라 등이 있다. 권오란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어떤 물질을 섭취하거나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발암 가능성이라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게 아니라, 결국은 얼마나 들어있고 얼마나 섭취(행동)하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막걸리를 하루 33병 이상은 마셔야 아스파탐이 (몸에) 위험해진다는구먼.” 비가 내린 지난 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순댓국집에서 막걸리를 곁들이던 남성들이 이런 얘기를 나눈 건 권 교수의 말과 맥락이 닿는다. 우리나라의 아스파탐 하루 허용 섭취량(ADI)은 체중 1㎏당 40㎎. 60㎏의 성인이라면 하루에 2400㎎까지 섭취 가능하다는 것. 식약처에 따르면 보통 750㎖용량의 막걸리에는 아스파탐이 72.7㎖가 들어있는데, 하루 막걸리 33병은 마셔야(33병×병당 아스파탐 72.7㎖=2399㎖) ADI에 이른다. 한국막걸리협회 관계자는 “막걸리(750ml)에는 보통 ADI의 0.003% 이하인 아스파탐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식약처가 밝힌 그 정도의 아스파탐 양이면 사람이 못 먹을 정도의 이상한 맛이 난다”며 “막걸리에는 극소량의 아스파탐을 쓴다“고 말했다. ADI의 0.003%는 7.2mg이다.250㎖용량의 다이어트 콜라에는 약 43㎎의 아스파탐이 함유돼 있다. 35㎏ 아동의 경우 하루 33캔을 마셔야 ADI 근처에 도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단순 계산이지, 실제로 이렇게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순댓국집의 남성들은 “그렇게 마시기도 전에 아스파탐보다 알코올(아세트알데하이드, 그룹1 발암물질)로 큰일을 치를 것”이라며 다시 막걸릿잔을 기울였다.

“매출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비는 하고 있습니다.”

순댓국집의 남성들이 마시는 막걸리도, 김규림씨가 마시고 “아차!” 했던 제로 음료도, 아스파탐 논란이 불거진 이번 달 첫 주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 롯데칠성음료와 오리온 관계자는 “유해성과 관련한 보도가 많이 나오다보니 소비자의 공포심이 유발된 부분이 있는 듯하다”면서 “아직 매출에 대한 큰 변동은 없지만, IARC의 발표를 지켜보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BGF리테일의 관계자는 “제로 탄산음료의 경우 되레 3% 정도 소비가 늘었고, 막걸리군은 잘 팔리는 비 오는 날보다 덜 팔리는 햇볕 쨍쨍한 날이 많으면서 2% 정도 매출이 줄었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식약처, 아스파탐 위해성 평가 추진

설탕보다 200배 달지만 저칼로리인 아스파탐은 다이어트 콜라 등에 주로 함유돼 있다. [연합뉴스]

설탕보다 200배 달지만 저칼로리인 아스파탐은 다이어트 콜라 등에 주로 함유돼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아스파탐을 배제하려는 식·음료 업체들의 움직임은 빨라질 전망이다. WHO의 분류나 국내 식약처 후속 조치 등이 이어질 경우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식·음료 업계 전반에선 대체 감미료를 적용한 레시피 변경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막걸리 업계에선 아스파탐 등 인공 감미료가 개발되기 전부터 전통적인 제조 방법이 확립돼 있어 원재료를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는 입장이다.

탄산음료인 펩시 제로 3종(라임·망고·블랙)에 아스파탐을 소량 사용 중인 롯데칠성음료는 아스파탐 대체재 사용 여부와 관련해 펩시코 글로벌 본사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제과업체들도 원료 대체 작업에 착수했다. 아스파탐 등 인공 감미료는 시즈닝(양념)에만 일부 들어가기 때문에 대체하기 어렵지 않다는 설명이다. 과거 비슷한 사례를 비춰볼 때, 소비자를 설득하는 것보다는 아스파탐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을 내놓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음식 첨가물과 재료에 관한 ‘과거 사례’는 꾸준히, 그리고 회복하기 힘든 흐름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1989년 검찰이 삼양식품 등 일부 식품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쇠기름)를 이용해 라면을 만들었다는 ‘우지파동’도 그중 하나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유해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우지파동은 라면 산업 전체에 극심한 타격을 입혔다.

글루탐산나트륨(MSG)도 인체 무해성이 입증됐는데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68년 미국에서 MSG가 함유된 중국 음식을 먹고 메스꺼움과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오해가 시작됐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게다가 1995년 미국식품의약처(FDA)와 WHO에서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부 업체들은 여전히 ‘MSG 무첨가’를 강조하면서 이 첨가제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사카린 파동도 마찬가지다. 당도가 설탕의 300배나 되는 사카린은 칼로리가 없어 다이어트나 당뇨 식품 등에 널리 사용됐다. 1977년 사카린 시험에 사용된 쥐가 방광암에 걸렸다는 캐나다 연구진의 발표 직후 FDA는 사카린을 식품첨가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식품에서 사용하는 걸 막았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2000년, 잇따른 연구에서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미국은 사카린을 발암물질 명단에서 삭제했다. IARC와 미 독성물질프로그램(NPT)은 사카린을 발암물질에서 제외했다. 현재 사카린은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사카린 관련 제조업체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여전히 ‘공포의 백색 가루’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이덕환 교수는 “현재까지의 아스파탐 논란 진행 상황을 보면, 사카린과 비슷한 길로 가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불필요한 혼란에 빠지면서 관련 산업은 침체하고, 결국 국력 낭비로 이어졌는데, 그 밑바닥에는 ‘가짜 과학’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가 발 빠르게 아스파탐 위해성 평가에 나서려는 것도 ‘과거 사례’와 달리 조기에 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권오란 교수는 “김치가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됐다고 해서 안 먹는 사람들은 없지 않나”라며 “아스파탐도 그 위험성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IARC의 아스파탐 관련 발표 시각은 14일 오전 7시 30분(한국시간). 국제학술지 더 랜싯 온콜로지(The Lancet Oncology) 에 온라인으로 게재될 예정이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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