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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든 '햇병아리 가수',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던 뜻밖의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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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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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어
양희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데뷔 53년 차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낯익은 저자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일상을 소재로 삶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담은 글들도 좋지만, 아무래도 가수로서의 얘기에 눈이 간다. 스무살 전후에 통기타를 들고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기성 문화에 반기를 든 청년 문화의 아이콘 같았다.

한데 청바지가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단다. "가난한 햇병아리 가수"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일을 하러 가야 했던 터. 책가방에 기타까지 들고 만원 버스를 타려니, 그 무렵 유행하던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는 언감생심. 작업복 같은 옷을 입은 그와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고 했던 원로 가수들도 있었단다. 저자는 그 완고함을 탓하는 대신 "드레스를 갖춰 입는 게 무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며 "무대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짚어낸다.

가수 양희은. 2018년 인터뷰 때 모습이다. 권혁재 기자

가수 양희은. 2018년 인터뷰 때 모습이다. 권혁재 기자

책에는 패티김, 이미자, 윤복희는 물론이고 전후 미8군 무대에서 일했던 여러 여성 가수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뚜렷이 담았다. 물자가 넉넉지 않던 시절 드레스며 장갑까지 직접 만들었던, "바느질을 못 하면 가수를 할 수도 없었던 시절"을 겪은 선배들이다. 선배들에게 예쁨 받은 기억도 들려준다. "지금도 그분들 앞에서 노래하라면 떨려서 못 할 것 같다"면서다.

책 제목처럼 '그럴 수 있어' 라는 태도는 자신의 노래, 정확히 말하면 그 반향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이슬'이 거리 시위에서 불려지는 걸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렇게 썼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게 노래의 사회성이구나' 깨달아졌다. 노래는 되불러주는 이의 것이구나. 노래를 만든 사람, 처음 부른 가수의 것이 아니구나." 어쩌면 이 노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장사 안될 노래란 타박을 들었다는 '한계령'이,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지내며 답답함에 목 놓아 울다 만들었다는 앨범 '1991, 양희은'이 불러낸 반향은 익히 아는 대로다.

현재형 이야기에 70여년 인생에서, 음악 안팎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가 담담하게 전해지는 게 인상적이다. 자녀들을 두고 이혼한 뒤 서른아홉에 세상 떠난 아버지를 뒤늦게 현충원에 모신 얘기도 그렇다. 그렇다고 저자를 만사 달관한 사람으로 여기면 착각이자 실례일 듯싶다. 그는 지금도, 아니 놀랍게도 예나 지금이나 "무대 공포"가 심한 가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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