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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팔면 10만원 남는다" 운용사 '세계최저 수수료' 경쟁,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저 보수’까지 내건 자산운용사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우량 배당 성장주에 분산투자하는 이른바 ‘한국판 SCHD’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해당 ETF가 투자자의 인기를 끌자 대형 운용사가 최저 보수의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에 불을 댕겼고, 기존 경쟁사들도 보수 인하에 동참하며 맞대응에 나서며 전투는 과열 양상이다.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KRX ETF시장 순자산총액 100조원 돌파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서봉균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이병성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뒷줄 왼쪽부터 정지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김성훈 키움투자자산운용 대표이사, 홍융기 KB자산운용 전무. 연합뉴스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KRX ETF시장 순자산총액 100조원 돌파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서봉균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이병성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뒷줄 왼쪽부터 정지헌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김성훈 키움투자자산운용 대표이사, 홍융기 KB자산운용 전무. 연합뉴스

경쟁 불붙은 운용업계…“10억 팔아 10만원도 못 가져가”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달 초부터 ‘ACE 미국고배당S&P ETF’의 총 보수(기타 비용 등은 별도)를 기존 연간 0.06%에서 0.01%로 낮추기로 했다. 이 ETF와 같은 ‘다우존스 미국 배당 100 인덱스’를 기초 지수로 사용하는 전 세계 ETF 중에 보수가 가장 낮다는 게 한투운용의 설명이다.

총 보수 0.01%는 운용사가 ETF 10억원을 팔았을 때 그 운용 대가로 연간 10만원도 가져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업계에선 인건비와 고정비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투운용은 해당 ETF의 이름도 'ACE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로 바꾸고, 기존 분기 배당 방식도 월 배당으로 변경했다.

신한자산운용도 같은 전략의 경쟁 상품인 ‘SOL 미국배당다우존스 ETF’의 총 보수를 최근 0.05%에서 0.03%로 내렸다. 이 상품은 한투운용 상품보다 출시는 늦었지만, 분기 배당이 아닌 월 배당 전략을 앞세워 투자자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의 보수 인하 경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투운용이 해당 상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2021년 10월엔 총 보수가 0.5%였지만, 지난해 11월 신한운용의 상품이 나오자 보수를 0.06%로 내렸다. 이에 질세라 신한운용도 출시 당시 0.15%였던 총 보수를 0.05%로 낮췄다.

최근 이 상품을 둘러싼 보수 인하 경쟁에 불을 붙인 건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지난달 20일 총 보수 0.03%로 같은 전략의 상품(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 ETF)을 상장하면서다. 기존 상품과 기초 지수, 월 배당 방식 등이 동일한 상황에서 최저 수준의 보수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미래에셋은 ETF 순자산 규모도 국내 ETF 사상 최대 규모인 2800억원 규모로 상장했다. ETF는 규모가 크면 초기 비용 절감과 유동성 측면에서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국내 ETF는 80억~100억원으로 상장해 몸집을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업계에선  상장 당시 SOL미국배당다우존스(2300억원), ACE미국고배당S&P(740억원)의 규모를 앞지르기 위해 국내 ETF 시장에서 선두권에 있는 미래에셋자산이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국판 SCHD’가 뭐길래

이들 새 상품은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 ‘한국판 SCHD’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끈 배당 성장 ETF인 ‘슈와브 US 디비던드 에쿼티’를 한국 투자자의 입맛에 맞게 들여온 상품이라서다. 미국 증시에 등록된 ‘슈와브 US 디비던드 에쿼티 ETF’의 약어(티커)가 바로 ‘SCHD’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SCHD는 10년 이상 배당금을 지급한 이력이 있는 미국 기업 중 배당 성장률과 현금 흐름, 자기자본 이익률 등이 우수한 기업에 분산 투자한다. 브로드컴·머크앤컴퍼니·홈디포·버라이즌·펩시코 등 꾸준히 배당금을 늘리는 우량주들을 편입하고 있다.

SCHD의 지난해 배당 수익률은 3.63%로 고배당 ETF와 비교해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배당 성장률이 연평균 14%(최근 5년)에 육박해 연금 투자 목적 등 장기 투자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SCHD의 순 자산 규모만 478억달러(약 61조원)에 달한다. 국내 개인 투자자도 올해 들어서만 1억9000억달러(2500억원) 규모로 순매수했다. 이는 해외 주식 순매수 상위 5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 투자자는 연금 계좌를 통해 ‘한국판 SCHD’에 투자해 세액공제와 절세 혜택까지 챙기는 경우가 많다. 연금 계좌에서는 미국 시장에 상장된 ETF를 매수할 수 없어 그 대안으로 ‘한국판 SCHD’를 선택하는 것이다. 특히 신한의 ‘SOL 미국배당다우존스’은 개인 투자자가 연초 이후 1626억원을 순매수하며, 국내 ETF 순매수액 3위를 차지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금 투자자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판 SCHD’ 상품 규모는 현재 5000억원 수준에서 1조원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ETF 시장을 장악하려는 미래에셋자산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형사는 볼멘소리도…미래에셋 “고객 선택권 넓어져”

투자자는 자산운용사의 보수 인하 경쟁이 반갑다는 반응이다. 40대 직장인 이상원(가명)씨는 “연금 계좌로 ‘한국판 SCHD’ 상품을 꾸준히 매입하고 있었는데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됐다”며 “업계의 경쟁을 지켜보면서 더 유리한 상품을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선 지나친 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중소 운용사들은 대형 운용사가 중소형사의 인기 상품을 가로챈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중소형 운용사의 한 대표는 “국내 ETF의 4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 대형사가 막강한 자본으로 중소형사를 찍어 누르겠다고 덤벼들면 버텨내기 힘들다”며 “지수에 대한 독점권이나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 운용사의 한 임원은 “출혈이 심한 보수 경쟁으로 중소형사가 고사하면 장기적으로는 독과점 문제가 생겨 ETF 시장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엔 중소형사의 신상품 개발 유인도 줄어 투자자 선택의 폭도 축소될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생기는 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며 “특히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에 커버드콜 전략을 가미해 추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는 ‘TIGER 미국배당+3%프리미엄다우존스’ TIGER 미국배당+7%프리미엄다우존스’ 도 함께 출시해 투자자가 더 다양한 상품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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