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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뛰쳐나와 카카오서 한᛫중 무협소설 세계에 알리는 中 유학생 [사공관숙의 한국 속 중국]

중앙일보

입력

"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한중이 또 다른 30년을 여는 첫해 2023년을 맞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잡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중국 충칭(重慶) 출신으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시아월드 팀 리더를 맡고 있는 선징(沈靖·심정)이 지난달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국 충칭(重慶) 출신으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시아월드 팀 리더를 맡고 있는 선징(沈靖·심정)이 지난달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른바 '신의 직장' 삼성전자를 박차고 나와 지금은 전 세계에 한᛫중 무협소설을 알리고 있는 이가 있다. 이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은 중국 유학생 출신 선징(沈靖᛫심정)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우시아월드 팀 리더다. 2006년 베이징사범대 교환학생 1기로 한국에 온 선징은 연세대 석사를 거쳐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4년 반 만에 창업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곧 사드(THAAD) 사태와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 등 예기치 못한 풍파를 겪었고, 여러 차례 이직 끝에 2019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자리 잡았다. 멘사 회원으로 활동할 만큼 비상한 머리와 과감한 도전 정신을 가진 선징을 지난 5월 직접 만나봤다. 선징은 인터뷰에서 한᛫중 한쪽에 속하기보단 한국을 기반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게 자기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당차게 밝혔다. 이날 영미권 무협소설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유일무이한 플랫폼으로 거듭난 '우시아월드(WuxiaWorld)'의 성장 비하인드와 웹툰᛫웹소설 등 콘텐트 현지화 전문가로서의 인사이트는 물론 한᛫중 관계에 대한 솔직한 견해와 시야를 넓히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북미를 기반으로 2014년 설립된 아시아 무협 판타지 웹소설 플랫폼 '우시아월드'는 2021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됐다. 사진 우시아월드 홈페이지 캡처

북미를 기반으로 2014년 설립된 아시아 무협 판타지 웹소설 플랫폼 '우시아월드'는 2021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됐다. 사진 우시아월드 홈페이지 캡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선징이고 중국 충칭(重慶) 사람이다. 현재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시아월드 팀 리더를 맡고 있다. 2006년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재학 시절 1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고, 졸업을 위해 중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2008년에 연세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산 건 햇수로 16년 됐다.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계기는?
재학 당시 베이징사범대에는 한국 유학생이 약 1500명 정도 있었다. 캠퍼스에서 한국 친구들과 언어 교환 등 종종 교류했고,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그러던 중 2005년 말 베이징사범대와 서울시립대가 자매결연을 통해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가 운 좋게도 1기 교환학생으로 뽑혔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에 관심이 있었는지?
사실 중국에서 특별히 한국어를 배운 적은 없다. 교환학생 시절이나 석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오히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어학당도 따로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순전히 직장에서 '생존' 한국어를 배웠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중국에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해서 나도 한국 TV᛫드라마᛫음악 등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기회가 생기기 전까지 한국에 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낀 점은?
대학 때 전공이 디지털 미디어라 한국에 와서는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다. 한번은 서울시립대 기말 전시회를 갔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학년 작품은 한국이나 중국 학생들 실력이 비슷했지만, 4학년 학생들의 전시작은 거의 예술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전문학교 학생들도 아닌데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상당히 놀랐고, 한국의 교육 수준에도 감탄했다. 이런 경험은 내가 나중에 연세대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22년 여름, 멘사 코리아 행사에 외국인 멤버로서 참석한 선징. 사진 본인 제공

2022년 여름, 멘사 코리아 행사에 외국인 멤버로서 참석한 선징. 사진 본인 제공

한국에서 일한 경력이 많은데.
석사과정이 끝날 때쯤, 떨어지면 중국에 돌아갈 각오로 삼성전자 딱 한 곳만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채용이 됐다. 4년 넘게 삼성에서 일하다 창업 열풍이 불던 2015년에 회사를 나왔다. 이직 후 외부 투자를 받아 '사내 창업' 식으로 한국 여행 앱(APP)을 개발했다. 그런데 2016년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서비스를 접었다. 그 후 한국 문화사업에 투자하는 중국 회사에서 잠깐 일했는데, 2017년부터 과학기술 분야 이외 대외 투자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또다시 회사를 옮겼다. 몇 번의 이직 끝에 2019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하게 됐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삼성을 나와 창업에 뛰어든 특별한 계기가 있나?
물론 당시 '창업 붐'의 영향도 받았지만, 인생은 고정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한 회사에서 50~60대까지 거의 정해진 진로대로 사는 것보다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안정을 추구하기보단 세상을 더 깊이 경험하고 싶었고, 이미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와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한᛫중 사이에서 나름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함께 창업했던 세 친구 모두 우리가 한국이나 중국 한쪽에만 소속되면 가치가 최소화되고, 한국을 기반으로 국제화했을 때 가장 가치가 커진다고 판단했다. 한국에는 최대한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려는 경향이 좀 있는데, 도전할 마음이 있다면 한국은 충분히 기회가 많은 나라다. 특히 한국 기업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가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해외 사업의 기회가 중국보다 더 많은 것 같다.  
2019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입사 초기 마카오 마조묘(馬祖廟)를 방문해 가족과 사업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는 선징. 사진 본인 제공

2019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입사 초기 마카오 마조묘(馬祖廟)를 방문해 가족과 사업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는 선징. 사진 본인 제공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2019년 입사 당시 회사는 아직 '카카오 페이지'였는데, 웹툰᛫웹소설 등 한국 콘텐트의 일본 수출을 넘어 글로벌화를 시도하던 참이었다. 카카오는 중국 텐센트(騰訊)와 합작해 '포도만화(PODO漫畫)'라는 플랫폼을 만들었고, 내 역할은 카카오 페이지 내 한국 콘텐트를 중국 시장에 맞게 현지화하는 일이었다. 중국은 광고에 의존한 무료 웹툰 플랫폼이 상당히 많은데, '포도만화'는 고품질 현지화가 요구되는 유료 서비스라 비즈니스적으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올해 초 나는 '우시아월드' 팀에 합류했고, 지금은 한국과 중국의 남성향 웹소설, 특히 판타지와 무협소설을 영미권 나라에 맞게 현지화하고 있다.  
'우시아월드'는 어떤 플랫폼인가
'우시아월드'는 북미를 기반으로 2014년 설립된 아시아 무협 판타지 웹소설 플랫폼이다. 2021년 카카오엔터에 인수됐다. 외교관이던 창립자가 유명한 중국 무협소설 '반룡(盤龍᛫Coiling Dragon)'을 직접 번역해 올리다 사정상 연재를 멈추자, 독자들이 자발적인 스폰서십을 지원하기 시작한 게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회사 구성원 대부분이 유저 출신이자 무협 마니아다. 유저들이 모여 만든 회사라 아주 필수적인 부서나 업무 프로세스만 있고 불필요한 광고나 마케팅이 없는 게 특징이다.  
중국과 한국 무협 소설 중 어떤 게 더 인기 있나?  
영미권 독자들은 한᛫중 구분 없이 다 좋아하는 것 같다. 인기 웹소설은 웹툰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사실 요즘은 무술이나 협객이 등장하는 전통 무협은 많지 않고, 판타지 무협(선협·仙俠)소설이 인기다. 한국 무협은 현실에 가까운 고대 또는 현대 사회가 배경인 경우가 많고, 중국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 편이다. 전 세계 공통으로 인기가 많은 건 평범한 사람이 일련의 수련이나 경험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성장물이나 일반인이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되는 판타지물이다. 전통무협의 대가 진융(金庸᛫김용)의 시대를 시작으로 무협소설은 계속해서 진화해왔다. 최근엔 독자가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나 줄거리가 대세다. 무협소설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되고 또 다양해지고 있다. 
선징은 이날 인터뷰에서 종종 중국어 성우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선징. 사진 본인 제공

선징은 이날 인터뷰에서 종종 중국어 성우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선징. 사진 본인 제공

웹툰과 웹소설 시장에서 한᛫중 양국의 서로 다른 특징이 있다면?
한국은 웹툰과 웹소설 두 분야에서 줄곧 강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국 웹소설은 오래전부터 인기가 많았고, 웹툰은 모바일 인터넷의 보급으로 스크롤 다운 형태의 열람이 가능해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웹툰보다 웹소설이 먼저 발전했다. 웹툰은 그림을 그리는데 기술이나 장비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글은 누구나 온라인에 바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중국 인기 무협소설 '투파창궁(斗破蒼穹)'의 작가는 고작 19살에 이 작품을 썼고, 지금은 1년에 180억 원 이상을 번다고 알려져 있다.  
한᛫중 콘텐트를 세계로 수출하는 전문가로서 조언이 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해외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트랜드를 파악해야 한다. 즉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콘텐트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인기 많은 한국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면 한국적인 문화 배경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더해 세계적인 명작으로 거듭난 경우가 많다. 요즘 독자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소설 속 주인공이 꿈을 실현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읽는 게 성공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은 한᛫중 관계 악화 등의 영향을 받는 편인가?
사실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시아월드'는 글로벌 시장 중에서도 영미권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이고, 한국과 중국의 좋은 작품을 세계에 소개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정말 크다. 한᛫중 시장만 있는 게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위기도 극복하고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중국 충칭(重慶) 출신으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시아월드 팀 리더를 맡고 있는 선징(沈靖·심정)이 지난달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국 충칭(重慶) 출신으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에서 우시아월드 팀 리더를 맡고 있는 선징(沈靖·심정)이 지난달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한᛫중 관계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기대가 있다면?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 봤을 때,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은 같은 문제를 두고도 완전히 다른 입장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위치한 사업자나 문화 교류인 등은 참 난처하고 또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곤 한다. 그래서 정치᛫외교적인 관계가 어떻든지 양국 국민 간의 신뢰가 중요한 것 같다. 무작정 싫다고 하기보단 직접 방문해 보고 친구도 사귀어 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단순히 경제적으로 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영원한 이웃으로서 서로 믿음을 쌓아야 한다. 나라 간 사이가 좋아야 불필요한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그게 결국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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