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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관계 굴곡 몸소 겪은 中 직장인, 메타버스 회사 CIO된 사연 [사공관숙의 한국 속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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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사귐은 국민 간의 친함에 있다(國之交在於民相親)". 한중이 또 다른 30년을 여는 첫해 2023년을 맞아, '이사 갈 수 없는 영원한 이웃'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잡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패션 메타버스 회사 알타바(ALTAVA)의 CIO 리훙저우(李紅宙)가 지난 5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패션 메타버스 회사 알타바(ALTAVA)의 CIO 리훙저우(李紅宙)가 지난 5월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2021년 전 세계를 강타한 '메타버스(Metaverse)'는 영역을 불문하고 여전히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수많은 메타버스 업체 중 유난히 명품 패션업계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는 회사가 있다. LVMH᛫프라다᛫펜디᛫발망᛫불가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 아바타 및 디지털 쇼룸 제작, 버추얼 패션 아이템 론칭, NFT(대체 불가능 토큰) 발행 등 협업을 진행한 '알타바(ALTAVA)'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월, 패션 메타버스 기업 '알타바'의 창립 멤버로서 회사의 글로벌 경영구조를 확립하는 데 일조한 리훙저우(李紅宙) CIO(최고혁신책임자)를 만나 창립 비하인드와 그간의 이력을 들어봤다. 리훙저우는 중국 옌지(延吉) 출신으로 2007년 한국 기업의 중국 내 공채를 통해 한국으로 왔다. 현재 알바타의 CIO 자리에 이르기까지 한국 회사와 중국 회사를 두루 거치며 프로그래밍᛫금융᛫법률᛫회계᛫엔터테인먼트᛫메타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얻은 모든 경험과 지식은 기회가 되고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리훙저우는 이날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의 정점에서 나락에 이르기까지 그 속의 굴곡을 고스란히 겪은 세대로서 갖게 된 독특한 인사이트와 개인사를 소개했다. 이날 중국 내 메타버스 시장 현황과 업계 속사정, 그리고 한᛫중 미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는 언제, 어떻게 오게 됐나?
2007년 SK C&C의 중국 현지 공채 프로그램에 합격해 중국 저장(浙江)대학 졸업과 동시에 연수차 한국으로 왔다.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은행᛫증권사 같은 금융회사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구축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2년 반 일하고 1년은 베이징 지사로 파견됐었다.  
리훙저우는 이날 인터뷰에서 첫 직장인 SK C&C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사진은 회사에서 당첨된 워커힐빌라에서 동료들과 주말 모임에 참석한 리훙저우(가운데). 사진 본인 제공

리훙저우는 이날 인터뷰에서 첫 직장인 SK C&C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사진은 회사에서 당첨된 워커힐빌라에서 동료들과 주말 모임에 참석한 리훙저우(가운데). 사진 본인 제공

당시 한국 기업의 채용 프로그램은 어땠나?  
15~16년 전 SK C&C는 중국 현지에서 채용한 인재를 한국 본사로 데려와 2~3년 정도 기업문화와 업무를 가르치고 다시 중국 현지 법인으로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한국어를 못하는 중국 직원은 한국에서 근무하며 어학당도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구글의 제안을 포기하고 온 동기도 있었다. 그땐 중국 시장에 대한 회사의 의지가 상당했다. 중국 직원들도 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런 프로그램이 대부분 없어지고 거의 모든 회사가 현지 채용만 하는 걸로 알고 있다. 2012년 전후로 한국 회사를 이탈한 중국 IT 인력이 꽤 많은데, 중국 내 모바일᛫ICT 업계 붐이 일어나면서 한᛫중 기업 간 임금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2016년쯤엔 한국 기업이 매력적이란 인식도 많이 줄어들었다.
2014년,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중국 A주 직접 투자를 허용하는 후강퉁(滬港通) 거래 개시에 앞서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증권사 임원들에게 설명회를 진행 중인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2014년,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중국 A주 직접 투자를 허용하는 후강퉁(滬港通) 거래 개시에 앞서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증권사 임원들에게 설명회를 진행 중인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ICT 회사에서 증권사로 이직한 배경은?
2010~2011년 중국 기업들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해외 진출 열기가 대단했다. 전 회사에서 증권사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며 금융과 관련된 실무를 익힌 게 이직의 계기가 됐다. 옮긴 회사에서 나는 중국 회사의 국내 상장 업무를 주관했는데, 이때 배운 금융᛫법률᛫회계 분야 지식은 훗날 '알타바'의 해외지사 설립과 투자 유치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직 초기 열렸던 호황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일부 중국 회사의 회계 부정 이슈로 IPO 시장에 혹한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예전엔 중국 기업이 직접 IPO를 많이 했다면, 지금은 한국 상장사를 인수᛫합병(M&A)하거나 지분 참여의 방식으로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2015년, 중국 자본시장 정보를 모니터링 중인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2015년, 중국 자본시장 정보를 모니터링 중인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의 이력도 이목을 끈다.
증권사에 다니면 여러 업종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2016년쯤 중국과 관련해 뜨는 업종은 여행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일 것이란 판단하에 '컬처몬스터'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콘서트 같은 공연에 투자하거나 티켓과 관광 상품을 결합해 중국 현지에 팔기도 했는데, 그해 사드(THAAD) 사태가 터지면서 수입이 뚝 끊겼다. 언제 상황이 좋아질지 기약도 없었다. 그러던 중 2017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열풍이 불었다. IT와 금융 업계에서의 내 모든 경력을 조합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8년 '알타바'에 합류했고, 지금은 CIO로 재임 중이다.   
리훙저우는 2016년 한류 콘텐트를 해외로 전파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컬처몬스터'를 창업했다. 사진은 더쇼(The Show) 진주 콘서트에서 현장을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본인 제공

리훙저우는 2016년 한류 콘텐트를 해외로 전파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컬처몬스터'를 창업했다. 사진은 더쇼(The Show) 진주 콘서트에서 현장을 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본인 제공

알타바(ALTAVA)는 어떤 회사인가?
2018년에 설립한 메타버스 회사다. 처음엔 게임업계 출신인 창업자의 게임과 패션 그리고 커머스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시작했는데,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정립되면서 자연스럽게 패션 메타버스 대표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즉 게임 아바타가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가상공간에서 활동하게 한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가상공간에서 명품을 구매하면 리워드를 받거나 레벨업 되고,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사면 가상 아바타도 똑같은 제품을 착용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식이었다. 2017년 기획 초기부터 여러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접촉해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디지털 사업권을 확보했다. 지금은 자체 B2C 서비스인 메타버스 플랫폼 '알타바(한국)', 'ADA(중국)'을 운영 중이며, B2B 비즈니스로는 브랜드의 맞춤형 '미니버스(Miniverse)' 같은 버추얼 플랫폼 제작이나 NFT 발행 등의 기획᛫개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리훙저우는 패션 메타버스 구축에 필요한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협력을 위해 패션업체 유럽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파트너사 직원과 프라다(PRADA) 밀라노 본사에서 미팅을 마친 리훙저우(왼쪽). 사진 본인 제공

2019년 리훙저우는 패션 메타버스 구축에 필요한 해외 명품 브랜드와의 협력을 위해 패션업체 유럽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파트너사 직원과 프라다(PRADA) 밀라노 본사에서 미팅을 마친 리훙저우(왼쪽). 사진 본인 제공

2021년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는데.
사실 우리 회사는 처음에 '게이미파이드 커머스(Gamified Commerce)' 즉 게임을 하면서 실물에 대한 구매동기를 일으키는 모델에 집중했었다. 그러다 나중에 활동무대를 게임에서 메타버스로 점차 옮긴 케이스다. 현실에서의 가치와 생활을 가상공간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알바타의 초창기 구상은 '메타버스'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했다. 우리의 개발 방향은 그대로인데, 무대만 바뀐 셈이다. 운 좋게도 2021년 메타버스가 흥행하면서 우리 회사도 덩달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40여 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버츄얼 패션을 체험할 수 있는 '알타바 월드 오브 유(Altava World of You)'의 APP 화면. 사진 알타바

40여 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버츄얼 패션을 체험할 수 있는 '알타바 월드 오브 유(Altava World of You)'의 APP 화면. 사진 알타바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의 한᛫중 버전이 다른 이유는?
초반에는 이름만 다르고 사실상 똑같은 포맷의 플랫폼이었다. 지난해부터 버전이 갈라져 조금 다른 형태로 성장 중이다. 당초 중국 플랫폼을 따로 만든 이유는 중국의 인터넷 규제 때문이다. 중국법상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려면 모든 데이터 서버를 중국 현지에 둬야 한다.'ICP 비안(Internet Content Provider備案)' 신청이 필수다. 우리는 중국회사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메타버스에 대한 중국 내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향후 운영 방향을 고민 중이다. 참고로 '알바타'의 중국 버전 'ADA'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이자 잉글랜드 출신 여성 수학자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의 이름에서 따왔다. 에이다의 미(美)적 감성과 프로그래밍을 결합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중국어로 ‘꾸미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아이다(愛搭)'인 점도 고려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중국 내 분위기는 어떤가?
사실 메타버스᛫NFT᛫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대한 중국 내 분위기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한국은 여전히 이런 기술들을 적극 활용해 보자는 분위기지만, 중국에선 화제도에 비해 실제 적용 사례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특히 블록체인이나 코인의 경우, 초반에는 중국의 발전이 앞서가는 듯했지만 투기나 사기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규제가 심해졌다. 지금 중국은 블록체인이나 그 파생 기술의 산업적 사용에 집중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경우도 중국 IT᛫모바일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분위기이다. 갑작스러운 규제에 대한 우려와 구체적인 사업모델 관련 고민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은 현재 인공지능(AI) 개발엔 적극적이지만 메타버스 개발엔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중국 IT기업의 특성상 성공사례들이 하나둘씩 생긴다면 공백을 채우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메타버스 분야에서 한᛫중이 협력할 공간은 없는지?
중국의 메타버스나 블록체인 등 분야가 완전히 개방되진 않았지만, 제도적인 정비가 끝나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다. 중국은 현재 다른 나라의 상황을 봐 가면서 제도적 틀을 잡아가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시장도 개방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제일 잘하는 분야는 바로 콘텐트다. 메타(META)나 애플(Apple) 같은 회사처럼 세계에서 제일 큰 메타버스를 만들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핵심 콘텐트는 한국이 제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화에서만 나오는 창의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는 미래에 매체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한 강점이다. 나중에 중국 시장이 열렸을 때, 한국이 앞서가는 분야에서 공격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블록체인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가상 세계 속 콘텐트의 핵심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싱가포르 블록체인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가상 세계 속 콘텐트의 핵심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리훙저우. 사진 본인 제공

한᛫중 관계에 대한 평소 생각이나 조언이 있다면?
나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중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의 혜택을 받은 세대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잘 살고 싶다'는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잘 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좋아져야 하는데, 양국이 갈등할 때 경제가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양국이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결국 개인과 국가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물론 사회 전체가 깨달음을 얻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달아 전 국민이 경각심을 느끼게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경제학에서 모든 거래는 서로의 장점을 교환해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A와 B가 거래할 때, A가 아무리 많은 분야에서 강점을 가졌다고 해도 완전무결할 순 없다. 부족한 부분은 B에게 맡기고 잘하는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결국 이익의 극대화를 이루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국과 중국의 상황이 딱 그러하다. '상호 보완'만이 서로가 잘살 수 있는 궁극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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