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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플레이리스트도 미리 골라 놓았던 음악가[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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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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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지음
황국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지난 3월 71세로 세상을 떠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는 잡지 연재를 모아서 사후 나온 이 신간에 암 얘기부터 꺼낸다. 2014년 중인두암 진단을 받고 회복했던 그는 2020년 직장암 진단을 받는데, 이번에는 여러 장기에 전이된 상태였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내린 의사도 있었다. 20시간의 대수술 직후에는 예상 못 한 섬망 증세도 겪었다. 자신이 한국, 그것도 서울 아닌 지방의 병원에 있다고 여겼는데, 아마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본 영향인 듯싶었단다.

사카모토 류이치.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카모토 류이치. 201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투병기는 아니다. 이 책은 50대 초반 펴낸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이후 두 번째 자서전 성격이다. "암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전후로도 촘촘하게 펼쳐온 음악적, 예술적, 사회적 활동이 고루 드러난다. 자기 음악만 파고드는 대신 이우환 화백을 비롯한 예술가·사상가들과 지적으로, 또 실제로도 폭넓게 교류하며 자기 음악 역시 새롭게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가 모교인 도쿄예술대학의 객원 교수로 젊은 대학생들을 만났을 때 실망한 이유도 실은 이와 통한다.

대가인 척하진 않는다. 영화 '레버넌트' 음악 작업 때는 평생 처음 큰 좌절을 맛봤다고 고백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소신은 한결 뚜렷이 드러낸다. 흔히 '이름을 판다'고들 비판하는데, '내가 정말 유명해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런 생각을 처음 갖게 된 계기도 들려준다.

나이 먹고 병을 앓으며 달라진 모습도 있다. 어느 순간 산수화가 좋아져 스스로 '노인네스러움'에 놀랐다거나, 거들떠보지 않았던 포레나 슈베르트의 음악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도 전한다. 음악이라는 "시간의 예술"을 해온 그가 시간을 다르게 보게 됐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단선적이고, 일직선적으로만 시간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그가 책의 마지막에 남긴 문장은 'Ars longa, vita brevis(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책 말미에는 그가 미리 선곡한 장례식장 플레이리스트가 실려 있다. 포레의 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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