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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순간에 전쟁 흐름 바꾼 장군 리지웨이의 6·25 '징비록'[BOOK]

중앙일보

입력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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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웨이의 한국전쟁
매슈 B 리지웨이 지음

박권영 옮김

플래닛미디어

기적처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은 6·25전쟁이 낳은 가장 걸출한 영웅이다. 하지만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월턴 해리스 워커(1889~1950) 미8군 사령관과 3년의 전쟁 중 2년가량을 책임졌던 매슈 벙커 리지웨이(1895~1993) 유엔군 사령관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리지웨이가 1967년에 출간한 자서전이자 6·25전쟁 징비록(懲毖錄)이다. 출간 56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6·25 발발 73주년이자 1953년 7월 27일 정전 체제 수립 70주년의 해에 나온 점도 의미가 각별하다.

리지웨이는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쟁 중에 사망하자 후임으로 미8군 지휘봉을 잡았다. 1951년 4월 맥아더 사령관이 해임되자 유엔군 사령관도 맡았다. 그가 부임한 시점에 전쟁 상황은 암담했다. 1951년 1·4후퇴 이후 중공군의 대공세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수세에 몰렸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군대 철수를 검토하고 있을 때 리지웨이의 공세 의지와 탁월한 전쟁 수행 능력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없었을지 모른다.

1951년 1ㆍ4 후퇴 직후 한강 부교에서 전황을 살펴보는 리지웨이(앞줄 왼쪽 첫번째) [사진 미 육군]

1951년 1ㆍ4 후퇴 직후 한강 부교에서 전황을 살펴보는 리지웨이(앞줄 왼쪽 첫번째) [사진 미 육군]

그는 "이 전쟁은 한국의 자유와 국가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자유와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한국전쟁의 본질은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중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이냐이며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서 싸워야 하는 이유"라며 장병들을 독려했다. 그의 리더십과 헌신 덕분에 결국 현재의 휴전선까지 전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리지웨이는 미8군 사령관 부임 직후 패배주의가 만연했던 미군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맥아더 장군 해임 이후 어떻게 유엔군을 지휘했는지, 전쟁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생생하게 서술했다. 또 책에서는 2차 대전 승리 이후 전비 태세가 부족했던 당시 미군 상황, 맥아더 해임을 둘러싼 민·군 관계 논란, 신생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 등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주요 작전과 전투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6·25전쟁 전반을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기록물이다.

리지웨이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역사상 처음 '제한전'이란 개념에 익숙하게 됐다"고 썼다. 제한전은 국익과 군사력을 고려해 목표를 분명하게 제한하는 전쟁이다. 다수 국가가 핵무기 제조 기술을 가진 상황에서 상호 공멸을 초래할 무제한전은 이제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승리나 무조건 항복이 이제는 어렵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 한국전쟁의 교훈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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