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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관계 개선 열쇠는 중동에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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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사우디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중국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려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돌연 방중을 취소했다. 중국 정찰풍선(중국 측은 민간 기상 관측용이란 입장)이 미국 상공으로 진입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대만 문제와 신장위구르·티베트·홍콩 인권 문제 등으로 날이 서 있던 두 나라가 정찰풍선 이슈로 폭발한 것이다. 5월 열린 G7 정상회의 참가국들은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회의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도 여기에 동참했다. 환구시보, 글로벌타임스 같은 중국의 국수주의 매체들은 이보다 높은 강도로 한국을 비난했다.

반목의 수위를 높여가던 한중관계에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국인들을 격앙시켰다. 비슷한 시기 자국 홍보 목적 행사에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만 초청하기도 했다.

6월 들어 미중 관계에 돌파구가 될 만한 계기가 마련됐다. 블링컨 장관이 19일 미국을 찾아 카운터파트인 친강(秦剛) 외교부장뿐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공산당 내 외교 총괄인 왕이(王毅) 정치국 위원을 잇따라 만난 것이다. 시 주석은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블링컨은 “‘하나의 중국’ 원칙이 미국의 기본 입장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최악으로 치닫던 미중 관계가 바닥을 친 것이란 분석들이 나왔다.

미국의 대중 전략이 변곡점을 지나 양국 관계 회복으로 방향을 튼다면 어떤 원인이 작용한 것일까. 국제정치적, 경제적으로 여러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중동으로의 회귀(return to Middle-east)’라는 것이다.

지난해 중동 지역 최대 이슈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곧이어 벌어진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탈환이었다. 중국을 긴장케 하는 뉴스였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접경 지역인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독립 세력과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미국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나면 어떡하냐’는 볼멘소리가 중국 외교 수뇌부로부터 터져 나왔다.

아프간 철수는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미국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내걸고 그간 중동에 둬온 전략적 무게중심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왔다. 한마디로 중국 봉쇄 전략이었다.

2023년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중동에서 적극적인 외교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3월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중국의 중재로 이뤄졌다. 원수처럼 대립해 왔던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맹주국을 중국이 손잡게 만든 건 미국에게 일대 충격이었다. 최근 중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국은 최근 사우디와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합의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대표적 친미 국가였지만 기자 암살 의혹에 대한 미국의 비난 등으로 관계가 틀어졌다. 미국 입장에선 사우디가 자국에 대해 일시적 몽니를 부리는 게 아니라 중국을 자신의 대체재로 인식하게 될까 두려워할 것이다.

중국은 중동의 고질병이었던 아랍-이스라엘 간 대립에도 손을 뻗쳤다. 아랍 국가들의 지지를 받는 팔레스타인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팔레스타인이 1967년 전쟁 이전의 국경을 근거로 국가를 수립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야 한다는 아랍 쪽의 주장을 지지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중재하고 있던 미국에 한 방 먹인 것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파기했던 이란과의 핵 합의 협상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친중 국가인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해 중동에서 확산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줄여보겠다는 포석이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미국이 중동에서 유지하던 압도적 세력을 잃지 않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확실히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대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동에서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했다가 다시 중동으로 무게중심을 회귀시키는 셈이다. 압도적인 세계 패권국도 두 지역 이상을 동시에 다스리기는 버거운 법이다. ‘해가 지지 않던’ 대영제국도 유럽 대륙에서 독일과 러시아가 팽창하자 이에 대적하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에, 동아시아를 일본에 맡기고 자신의 세력을 거둬들였다.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미국 외교 수장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앞서 말했듯 미국이 중동에 재집중하기 위해선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경쟁에서 안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해진다. 이번 베이징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정상회담을 포함한 추가적인 외교 교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안보 문제에서 한국과 일본, 특히 일본에 더 많은 역할을 맡길 것이고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각 공조가 더욱 중요해지게 된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관계에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질 수 있다.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 강도를 높여왔고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 강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대중 관계는 경직돼왔다. 급기야 싱하이밍 대사의 노골적 발언까지 나왔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25% 내외에서 20%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미중 관계가 데탕트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한중 양국도 서로 신뢰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커진다. 셔터스톡

미중 관계가 데탕트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한중 양국도 서로 신뢰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커진다. 셔터스톡

예전부터 중국은 한국을 미·일로부터 떨어져 자신 쪽으로 가까워지도록 당근과 채찍을 써왔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높은 전략적 가치를 지닌 셈이다. 미중 관계가 데탕트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한중 양국도 서로 신뢰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관계에서 두 나라가 대결 강도를 높여가는 경우는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의심이 커질 때다. 쌓여가는 불신을 허물고 신뢰를 쌓기 위해선 동아시아에서 ‘기회의 틈’이 벌어지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부와 민간 채널에서 외교적 소통을 확대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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