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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서윤이 소리내다

9시간 혁신위원장 망신…잡스 같은 혁신? 野, 상식부터 찾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홍서윤 더불어민주당 전 청년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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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경(왼쪽) 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천안함 자폭 발언 등으로 9시간 만에 사퇴한 지 10일 만에 김은경 교수가 새 위원장으로 지명됐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이래경(왼쪽) 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천안함 자폭 발언 등으로 9시간 만에 사퇴한 지 10일 만에 김은경 교수가 새 위원장으로 지명됐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2주 전 민주당이 발표한 이래경 전 혁신위원장의 임기 기간은 고작 9시간에 불과했다. 그는 역대 정당 혁신위원장 중 가장 짧은 임기를 보낸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가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고 사회 공익 활동에 이바지한 이력과 별개로 천안함 침몰이 자폭이라는 등의 소위 ‘선 넘는 발언’과 그의 편향된 인식은 민주당 혁신에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벌써 몇 번째인가.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푸는 것이 급선무이다. 꼬인 실타래에는 ▶권력형 성범죄 ▶조국과 김남국의 강 ▶내로남불 ▶사법리스크 ▶돈봉투 사건 ▶극렬 팬덤으로 공고화된 비도덕과 위선이 뒤엉켜있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기구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기구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도덕성은 민주당의 존립 가치  

일각에서는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냐고 하지만 도덕성이 부재한 진보는 진보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혹자들은 “민주당이 무슨 진보정당이냐, 보수정당이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민주당의 태생은 진보의 가치에서 시작되었다. 민주당이 진보의 이념을 상실하게 된다면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는 뚜렷한 비전이 존재하는가. 준비도 대안도 없이 진보가 진보의 정체성을 버리고 보수의 편익에만 눈독 들인다면 이도저도 아닌 끔찍한 혼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난 2020년 총선 이후 거듭되는 악재에 민주당은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릴 뿐 제대로 된 변화와 쇄신을 하지 못했다. 1년 남짓 남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혁신위원회라는 칼을 빼 들어 궤도를 이탈한 민주당을 다시 정상 궤도로 돌려놓고자 했다. 당원과 국민은 민주당을 다시 정상화시킬 수 있는 추진력 있는 인물이 혁신위원장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 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큰 기대와 달리 9시간 만에 사퇴한 이래경 인사 참사는 혁신이 시작되기도 전 민주당에 또 한 번 큰 오점을 남겼다.

이 전 혁신위원장의 사퇴 후 당 안팎에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당연한 결과다. 9시간짜리 혁신위원장이라는 인사 참사에 당 대표의 책임 있는 자세와 사과가 뒤따라야 했지만 납득할만한 입장 표명은 부재했다. 무책임한 태도였다. 후임으로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새로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이미 김빠진 사이다 꼴이 된 민주당 혁신위에 대한 여론의 기대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냉철한 평가와 반성 선행돼야

정당의 혁신에는 일종의 프로토콜(규약)이 있다. 정당의 혁신은 악습과 구습을 버리고 조직이 새로이 태어나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고자 함이다. 따라서 혁신 프로토콜은 우선 정당이 왜 혁신해야 하는지 냉철한 평가와 통렬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탈바꿈할 것인지 혁신의 내용을 구성하고 시대를 좇지 못하는 구습의 인물들에게 은퇴와 안식을 제안하며 혁신의 대상을 규명하기도 해야 한다. 또 혁신의 과정을 추진할 실행력 있는 인물을 혁신위원장으로 내세워 변화의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

윤창현 의원 등 국민의힘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이 5일 오전 김남국 의원 수사촉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창현 의원 등 국민의힘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이 5일 오전 김남국 의원 수사촉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 난항 속에서 시작된 김은경 신임 혁신위원장의 활약이 기대되지만, 문제진단·혁신내용·혁신대상·혁신위원장(인물)이라는 혁신의 프로토콜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다시금 민주당의 혁신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 홍익표 의원도 지난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민주당은 혁신위원장 찾기에 꽂혀 혁신의 내용도 혁신의 대상도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고, 지난 12일 열린 의총에서는 조응천 의원도 혁신위가 무엇을 하는 기구인지 합의되지 않고 론칭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맛없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간판만 바꾼다고 맛집으로 탈바꿈하지 못하는 것처럼 혁신위원장 한 명 바뀐다고 정당이 환골탈태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청사진도 없는 정당의 혁신이 어떻게 진행될지 국민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고요한 민심의 결과는 선거를 통해 발현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따라서 민주당은 스스로 자문해보아야 한다. 민주당의 혁신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왜 이 시점에 정당 혁신을 하려는 지 진단하고, 어떻게 혁신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을 갖추어 국민께 보고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종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종호 기자

‘조국의 강’ 건너고 권력형 성범죄 단호한 조치 필요

민주당 혁신은 평가와 반성에서부터 시작이다. 짧게는 이재명 대표의 당 대표 선출부터 1년의 과정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멀게는 여전히 건너지 못한 ‘조국의 강’과 권력형 성범죄로부터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으로서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오명을 씻고 환골탈태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없다면 김은경 혁신위에 대한 긍정적인 후속 평가도 기대할 수 없다. 그만큼 민주당의 혁신은 절실하고 또 어렵다.

보통의 사람들은 기술의 혁신에 대한 무궁무진한 기대가 있지만 정치의 혁신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다. 만약 국민이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의 아이콘을 정치 영역에서 기대했다면, 그것은 그가 기술 혁신에서 보여주었던 구습으로부터의 완전한 탈피와 무모함에 대한 도전을 정치에서도 똑같이 보여줄 수 있는 인물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결국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 혁신은 상식적인 정치의 모습이다. 위선적이지 않은 투명한 정당 운영과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하는 정치인, 국민의 고충에 공감하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입법 활동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결코 거창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상식적인 요구다.

민주당은 이번 혁신위를 통해 상식적인 정치를 하는 상식적인 정당이 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현재 민주당의 위기를 정확히 분석ㆍ진단하고 민주당의 실책과 과오를 가감 없이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길 바란다. 그 다음에야 새로운 혁신 목표와 내용이 국민께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추진하기 위해선 이재명 대표의 지난 1년 평가와 돈봉투ㆍ코인투자 등 내로남불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홍서윤 더불어민주당 전 청년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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