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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안나가 소리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강력한 힘이다

중앙일보

입력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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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주한국일보에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라는 광고가 등장하자 반박 여론이 일고 있다. 그래픽 김경진 기자

최근 미주한국일보에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라는 광고가 등장하자 반박 여론이 일고 있다. 그래픽 김경진 기자

살다 살다 이렇게 당연한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아들 타령하는 시대에 딸만 셋 낳아 키우신 내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며 출산 휴가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일하면서 두 딸을 낳아 잘 키웠노라 자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도 지금은 아이 낳을 생각 없다는 딸과 앞으로도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딸이 있어 임신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4일자 미주한국일보 5면에 실린 전면광고에 등장한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광고글. 사진 SNS 캡처

지난 14일자 미주한국일보 5면에 실린 전면광고에 등장한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광고글. 사진 SNS 캡처

지난 14일 미주한국일보에 실린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기를 낳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전면광고는 아이를 낳은 여성은 물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까지 모두 모독하는 주장이다. 누가 힘자랑을 위해 임신 여부를 결정하는가. 만약 그런 여성이 있다면 이는 누구에게 힘을 쓰기 위함이란 말인가. 아이를 낳는 것이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되는 사회가 과연 여성들을 이롭게 한다는 것인가. 이는 인류 역사 전체를 부정하고 모든 어머니를 모욕하는 주장이다. 내 어머니가 나를 낳지 않았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성만의 특별한 능력 빛나야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진 않지만 모든 어머니는 여성이다. 여성만이 임신과 출산을 하고 젖을 물린다. 이는 여성들만 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능력으로 함께 임신하고 양육하는 남성과 이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사회에서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여성을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회의 문제이지 임신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여성의 형편에 따라 임신을 차별하는 우리 사회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전 세계 유례 없는 저출산 사회가 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대대적인 이민정책이 아니면 소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라가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계속 성관계를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기쁘게 누리는 자연의 섭리다. 성관계를 할 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누구에게나 임신은 자식과의 만남이다.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술적 행위가 아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성들이 가임력 좋은 20대에는 아이를 낳는 것이 고민이 되고 난임과 고위험 임신 가능성이 높아지는 35세 이후에야 임신을 바라게 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이 비극은 국가적 차원을 넘어 여성 개인의 일생에 돌이킬 수 없는 억압이다. 이 비정상적인 억압을 풀어야지 더욱 공고히 하자는 것은 우리 여성들을 더욱 가혹하게 옥죄자는 주장이다.

아이 중심의 출산과 양육 지원  

여성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임이 분명하다. 그 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사회는 여성들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사회다. 언제 어떠한 환경에서 누가 임신했어도 그 아이를 중심으로 임신한 여성을 차별하지 말고 출산과 양육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줄줄이 연결된 난제인 낙태, 난임, 고위험 임신, 저출생 문제가 해결된다.

건강하게 임신한 20세 전후 엄마들은 준비 안 된 임신이라고 외면받고, 난임 시술을 계속해도 임신이 안 되는 40세 이상 여성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난임 시술받으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 여성을 이중으로 짓누르고 있다.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도 축복받는 준비된 사회를 이제 제발 만들자.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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