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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여리 '백조의 호수' '지젤'은 잊어라, 발레도 강인한 여주가 대세[발터뷰]

중앙일보

입력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카산드라 트리너리(Cassandra Trenary)와 헤르만 코르네호(Herman Cornejo)가 '달콤쌉싸름한 초콜렛(Like Water for Chocolate)'에서 열연 중이다. 사진 ABT, 촬영 Marty Sohl.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카산드라 트리너리(Cassandra Trenary)와 헤르만 코르네호(Herman Cornejo)가 '달콤쌉싸름한 초콜렛(Like Water for Chocolate)'에서 열연 중이다. 사진 ABT, 촬영 Marty Sohl.

발레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작품, '백조의 호수'와 '지젤'의 여주인공은 청순가련의 전형이다. '지젤'은 약혼녀가 있는데도 자신과 사귄 남자 때문에 죽음에 이르지만, 죽어서도 그 남자를 지키기 위해 여명이 밝도록 밤새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백조의 호수'는 다양한 결말이 있지만 정통 버전에선 왕자가 백조인 오데트를 몰라보고 흑조인 오딜에게 마음을 빼앗겨 희망이 물거품이 돼버린다. 애절함의 드라마가 필수인 극적 요소이긴 하지만 21세기에는 다소 괴리가 있는 전개다. 해외 발레계에서 새로운 스토리 찾기에 골몰하는 까닭이다. 그런 맥락에서 화제를 모으는 작품이 있으니, 소설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을 발레로 옮긴 무대다.

원제를 영어로 옮긴 '라이크 워터 포 초콜렛(Like Water for Chocolate)'이 제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 "고전발레 작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도 '이 소설이 발레로 만들어졌다면 보러 가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현대적 무대"라고 전했다.

볼쇼이발레단 '백조의 호수' [사진 빈체로]

볼쇼이발레단 '백조의 호수' [사진 빈체로]

원작 소설은 멕시코 여성 작가인 라우라 에스퀴벨이 1989년 출판했고 1991년 영어로 번역됐다. 대가족의 막내딸 티타가 어머니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서 생기는 애증과 집념, 질투 등의 희로애락을 풀어냈다. 어머니가 반대하는 이유는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가 늙어 사망할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 티타는 어머니의 뜻을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요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고 사랑을 쟁취하려 한다. 티타도, 어머니도 모두 여리여리함과는 거리가 있는 여성인 셈. ABT의 신임 예술감독인 수전 재프는 NYT에 "이런 무대야말로 지금 우리가 관객에 선보여야 하는 시대적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렛' 포스터.

영화 '달콤쌉싸름한 초콜렛' 포스터.

무용수 겸 안무가 크리스토퍼 휠든이 만든 이 작품은 영국 로열발레단 초연 후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올해 여름 레퍼토리로 무대에 오른다. ABT의 서희 수석무용수, 박선미 솔로이스트, 한성우 솔로이스트 등 한국 출신 예술가들도 기용된다.

휠든은 이 작품을 발레로 제작하기 위해 원작자인 에스퀴벨과 직접 만나 상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댄스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90년대 초에 소설을 읽고 강렬한 감정선이 잊히지 않았다"며 "무용수들이 우리 시대의 스토리를 춤으로 풀어내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제의 뜻, '초콜렛을 위한 물'이라는 문구는 멕시코의 속담이다. 멕시코에선 핫 초콜렛을 만들 때 우유 대신 뜨거운 물을 넣는다고 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의 물처럼 감정이 요동치는 상태를 일컫는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죽어서도 희생하는 기존 고전 발레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여성 캐릭터들이 세계 무대를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일보의 ‘발(레인)터뷰’는 발레와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제언, 요청, 제보 등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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