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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이 주소였던 소녀, 발레 무대에서 '최초'로 빛나기까지[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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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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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

미스티 코플랜드 지음
이현숙 옮김
동글디자인

모든 발레 무용수에겐 스토리가 있다. 중력을 거슬러 날아가는 아름다움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매일 훈련하며 기술·예술을 갖춰 무대에 서기 위해선 피·땀·눈물은 물론 시간과 비용, 주변의 희생도 불가결하다. 불평등이 디폴트인 인생과 세상에서, 그 연마와 쟁취의 기승전결은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길이와 굴곡이 다를 뿐, 모든 무용수의 스토리는 의미를 갖는다. 저자의 드라마가 더 주목받는 건, 사회적 편견을 깨고 "최초"라는 수식어까지 거머쥔 덕. 그는 미국 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최고 등급인 수석 무용수로 승급시킨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흑인이다.

미스티 코플랜드가 2022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가을 갈라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미스티 코플랜드가 2022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가을 갈라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이 책은 그의 드라마다. 발레를 업으로 삼기엔 늦은 13세에 발레를 처음 접한 소녀, 어머니의 잦은 이혼으로 주소에 모텔 이름을 적었던 10대의 이야기다. 발레를 배운 지 몇 달 만에 포앵트 슈즈(일명 토슈즈)를 신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은 지난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통일된 아름다움이 중요한 발레에서, 그의 피부색은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중시하기 시작한 시대적 변화는 그의 편이었다. 그 변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 결의와 끈기,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그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가 겪었다는 차별의 서사가 때론 피로감을 부르는 것도 사실. 뛰어난 무용수는 넘치고 무대는 한정된 세상에서 그는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기도 했으나, 덕분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슬럼프 때 하루에 도넛 24개를 먹어치웠다거나, 피로 골절에도 무대에 계속 섰다는 등의 이야기는 발레 서사에선 클리셰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스토리에는 한국 독자들이 놓쳐선 안 되는 의미가 있다. 그가 터득한 교훈, 즉 발레처럼 인생도 균형감이 중요하다는 등의 메시지도 의미가 크다. 더불어 중요한 건, 세계 무대에서 한국계 무용수들이 갖은 어려움을 뚫고 활약해왔다는 점. 코플랜드를 읽으며 ABT의 서희,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최영규 수석무용수의 드라마를 생각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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