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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행운의 상징 토끼풀, 사실은 배려왕이래요

중앙일보

입력

6월이 되니 아침저녁으로는 그래도 선선한데, 한낮에는 여름 날씨처럼 후텁지근합니다. 이럴 때면 그늘만 찾게 되는데요. 길을 걷다가 울타리 밑이나 담장 밑을 보면 키 작은 풀들이 여럿 보입니다. 질경이·개망초·바랭이 등은 더워지는 날씨에도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죠. 이번 호에서는 이런 풀 중에서도 여러모로 고마운 토끼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토끼풀은 전국 어디서나 풀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이에요. 토끼풀은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영문명으로는 클로버(clover)라고 하죠. 흔히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온다고 알고 있을 텐데요. 보통 토끼풀은 세 잎이 나는데 어쩌다 돌연변이로 네 잎이 나기도 합니다. 네 잎뿐 아니라 일곱 잎까지 달리기도 해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토끼풀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토끼풀

세 잎 토끼풀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토끼풀 꽃말은 행운이라고 하며, 행운보다는 행복을 좇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죠. 또 세 잎 토끼풀은 믿음·소망·사랑을 뜻하고, 네 번째 잎은 ‘행복’을 뜻한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토끼풀이 가득 자란 곳에서 자세히 찾아보면 웬만한 곳에서 네 잎 클로버 하나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죠. 대신 멈추고 오래 자세히 봐야 합니다.

클로버의 우리나라 이름이 토끼풀이 된 것은 토끼가 잘 먹는 풀이라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토끼풀이 사료로 재배됐다는 것은 1921년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에 기록돼 있죠. 실제로 토끼는 칡 잎이나 왕고들빼기 잎 등을 더 잘 먹지만요.

토끼풀의 원산지는 유럽인데요. 일본에서는 1840년대 네덜란드에서 유리제품을 수입할 때 깨지지 않게 하는 충전재로 토끼풀 말린 게 쓰였는데, 그러면서 종자가 들어온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토끼풀이 1920년대에 등장하니 일본에서 전해졌을 거라고 보죠. 충전재로 사용해서 일본어로는 ‘쯔메쿠사(つめくさ·詰草)’, 혹은 흰 꽃이 피어서 ‘시로쯔메쿠사’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오란다겐게(オランダげんげ·네덜란드 자운영)’라고도 불러요.

길을 걷다가 만나는 토끼풀 무더기는 대개 하나의 개체일 확률이 높습니다. 넓게 퍼져 있어 여럿으로 보여도 줄기가 대나무나 잔디처럼 뻗어서 퍼져가기 때문입니다. 줄기가 끊어져도 살아남고 한 조각의 뿌리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조직을 복제해내는 능력이 탁월해 포기 채로 다 뽑아버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살아가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토끼풀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토끼풀

토끼풀은 하얗게(때로 붉은 것도 있지만) 피는 꽃 향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벌들이 많이 와요. 과수원에서 토끼풀을 바닥에 많이 심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벌들이 토끼풀 꽃의 향에 이끌려 왔다가 그 위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 배 등 과실의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토끼풀이 잔디처럼 심겨 있으면 다른 풀들이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잡초가 번성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는 셈이죠.

토끼풀은 ‘콩과’ 식물인데요. 콩과 식물의 특징 중 하나는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며 살고 있다는 거예요. 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소가 꼭 필요한데 대부분의 질소는 공기 중에 있어서 뿌리로 바로 질소를 섭취할 수가 없어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기 때문에 식물과 공생하며 공기 중 질소를 뿌리로 흡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그렇게 질소를 땅속에 계속 모아 고정해서 다른 식물이 자라는 데도 도움을 줘요.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고마운 풀입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토끼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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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꽃은 꽃가루받이가 되면 시듭니다. 이미 꽃가루받이가 된 것을 곤충에게 알려 아직 꽃가루받이가 안 된 다른 꽃으로 가게 하기 위함이죠. 벌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배려를 한 것이랄까요. 물론 그 배려의 의도는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려는 작전이고, 그 작전의 수혜자에는 토끼풀 자신이 포함되죠. 여러모로 다른 존재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낮은 자세로 넓게 퍼지며 살고 있는 토끼풀에게 삶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조금은 배울 수 있는 계절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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