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 14.5%’.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 사무실에서 보관 중인 형량 예측 서비스에 가상으로 ‘특수재물손괴’ 사건을 입력하자 인공지능(AI)이 내놓은 대답이다. 인공지능이 47만 건의 판례를 분석하고, 빅데이터 기술로 구축한 통계를 바탕으로 형량 정보를 제공하는 이 서비스는 2020년 처음 출시됐다. 그러나 출시 10개월 만인 지난 2021년 9월 전격 중단됐다. 현재는 외부 접속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는 “로톡과 마찬가지로 ‘형량 예측’ 서비스도 불법이 아니라는 검찰의 판단을 받았다”며 “그러나 로톡의 변호사 검색을 두고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압박이 거셌던 터라, 인공지능 서비스까지 전선을 확대하기 어려워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회상했다.
로톡 가입 변호사 수 1년 새 반토막
로앤컴퍼니가 멈춰선 사이, 또 다른 리걸테크(legaltech·법률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 로앤굿은 지난달 30일 챗GPT를 활용한 AI 법률상담 서비스인 ‘로앤봇’을 내놨다. 이 서비스는 챗GPT처럼 인공지능이 대화 형식으로 답변을 내놓는 방식으로, 일단 이혼 소송에 한정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서비스 역시 지속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로앤봇이 출시된 날, 변협이 형사 고발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명기 로앤굿 대표는 “변협이 협회 규정을 통해 변호사들의 리걸테크 활용을 막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이미 유튜브에 광고를 올리고, 챗GPT에선 법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리걸테크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변협에선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리걸테크 스타트업을 압박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변호사 정보를 제공한 행위는 ‘알선’에 해당하고, AI 형량 예측 서비스는 변호사법 위반이란 것이다. 이를 들여다 본 경찰과 검찰, 법무부 등에선 연이어 ‘변호사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나왔지만, 변협은 협회 규정을 개정해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했다. 국내에서 변호사업을 시작하려면 변협에 변호사 등록과 개업 신고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협회 규정을 어기기 부담스러운 변호사들의 탈퇴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실제로 국내 리걸테크 스타트업 가운데 유일하게 예비 유니콘에 선정된 로앤컴퍼니의 로톡 가입 변호사 수는 2021년 3966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2000명 선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에 공정위에선 지난 2월 변호사들의 사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변협에 시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변협은 집행 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에서 인용되며 사태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갈등 속에 국내 리걸테크 업체들은 산업을 혁신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토로한다. 예컨대 미국 리걸테크 업체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계약서 검토, 법률 서류 작성 등 서비스를 이미 출시하고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법률 시장이 유사한 일본에서도 벤고시닷컴이 이달 중으로 대화형 AI 법률상담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리걸테크 시장은 2021년 276억 달러(약 35조원)에서 2027년 356억 달러(46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선진국에선 변호사 검색을 넘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한 셈이다.
라이센스가 필요한 전문 분야에서 신·구 산업 간 갈등은 법률 서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1379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세금 환급 서비스 ‘삼쩜삼’도 한국세무사회와 갈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무사회는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를 불법 세무대리 혐의로 고발했지만, 경찰은 지난해 무혐의로 판단하고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세무사회는 무혐의 결정 이후에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기로 한 상황이다.
혁신 무조건 막으면 관련 산업 낙후
부동산 중개 시장도 마찬가지다. 직방, 집토스 등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들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갈등이 벌어졌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등과 갈등을 벌이던 비대면 원격진료 플랫폼들 사이에선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업체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시범사업으로 전환된 뒤 줄줄이 사업을 중단하고 있다. 시범사업에선 초진을 엄격히 제한하고 약 배송도 대면을 중심으로 개편돼 비대면 원격진료 스타트업들은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유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플랫폼정책연구센터장은 “플랫폼 기업과 직역 단체 간 갈등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갈등 해소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장기화되는 건 후생(厚生)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혁신적인 서비스의 시장 진입은 촉진하되 사회적 역기능 우려가 있으면 해소 방안을 고민해야지 서비스 자체를 막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타트업 업계에선 ‘제2의 타다’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상황은 판박이란 것이다. 실제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에선 지난 2019년 타다에 가입한 택시기사들을 제명하는 식으로 타다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대응한 바 있다. 이어 타다가 불법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재판은 3년 7개월 만에 무죄로 마무리됐지만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종료됐고, 타다의 운영사 VCNC는 2021년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에 매각됐다. VCNC는 최근 경영난 속에 고강도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황이다. 재판에 이기고도 시장에선 밀려난 셈이다.
그러는 사이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에선 승차공유 서비스를 넘어 다음 단계를 실험하고 있다. 미국에선 승차 공유 유니콘인 우버가, 중국에선 인터넷 공룡 바이두가 무인택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선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차가 무인주행 관련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지만, 실제 주행 데이터를 다수 확보하기 위해선 승차공유 플랫폼이 유리하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구 산업의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대다수 산업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방관하면, 혁신 경쟁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 승패가 결정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G마켓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김영덕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대표는 “아마존을 비롯해 미국에서 온라인커머스가 성장하던 당시 소규모 유통업체가 문을 닫는다고 해도 막지 않은 건 산업의 발전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며 “국회나 정부 등에서 나서서 타협의 장을 만들고 기존 업계 종사자들의 손해를 막는 방안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산업에서도 혁신 기업을 경쟁상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처럼 반대만 하면 당장은 신규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글로벌 업체들까지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시장 경쟁을 통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다빈치가상대학장은 “전문직 서비스 분야에서도 글로벌 플랫폼 업체들의 국내 진입과 확산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막을 수 없다면 기존 사업자도 플랫폼을 만들어 다수의 플랫폼이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해 국내 업체만의 강점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