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와 밤하늘의 별, 그리고 바람이 나의 친구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장 허근(許根.58.인천해양수산청 팔미도 표지관리소장)씨가 말하는 등대지기의 삶이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16.7㎞ 거리에 있는 팔미도 등대는 전국 2천40여개 등대의 맏형이다. 1903년 6월 세운 이래 1백년째 인천항에 출입하는 선박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許씨는 등대 생활 33년째로 젊음을 팔미도 등 무인도에서 바쳤다. 새파란 청춘에 섬에 들어와 냉방에서 겨울밤을 지새웠던 초년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이제 심연처럼 깊은 등대지기의 고독감을 달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내년에 정년을 맞는 그의 옆에는 김기수.김학만 씨 등 2명의 젊은 등대지기가 일을 돕고 있다.
"외부인들은 등대지기를 너무 별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성실하게 기상관측을 하고 남보다 밖의 일에 신경을 덜 쓰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루 일과는 일반인들이 가요 '등대지기'를 떠올리며 막연히 생각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바쁜 일정 때문이다. 매일 등대의 불빛이 잘 보이도록 유리(등명기) 안쪽을 닦는다. 밤중에 가시거리 20마일 가량의 섬광을 10초에 한번씩 바다에 보낸다. 낮에도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리면 30초에 한번씩 '붕 붕' 무(霧)신호를 보낸다.
許씨는 82년 4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내려진 폭풍주의보 때문에 항로를 잃고 헤매는 어선 서너척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등불을 밝혀준 사건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은 선박들이 첨단화돼 등대에 크게 의존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야간이나 안개가 끼었을 때 오로지 등대 불빛에만 의지해 항해를 했습니다. 생명을 살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는 일이었지요."
또 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파 표지를 관리하고 팔미도가 거느리고 있는 9개의 등표와 등부표에 불이 켜져 있는지도 관찰한다.
일몰.일출 때 등명기를 켜고 끄는 일 말고도 태양열 발전시설 등을 관리하고 등대 주위에 떠있는 부표들의 점등 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이 밖에 온도.풍속.풍향.강수량 등 기상정보를 하루 다섯 차례씩 기상청에 통보한다. 한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다. 그래서 낭만을 좇아 등대원이 된 사람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許씨는 71년 11월 해양수산부의 전신인 교통부 해운국에 근무하던 친지의 소개로 등대원 시험에 합격한 뒤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의 부도에서 등대원 생활을 시작했다.
등대원이 되던 해 2월 결혼해 아내와 신혼방을 등대 기숙사에 차려 세 자녀 중 둘을 등대에서 얻었다. 부도에서 4년 근무하고 선미도 등대를 거쳐 74년 팔미도로 온 뒤 지금까지 이곳을 지켰다. 가족들은 현재 인천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인천 앞바다에 폭풍주의보와 태풍주의보가 잇따라 발효되면 한달 넘게 꼼짝없이 섬에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許씨 등 등대지기 3인은 등대 생활이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15평 남짓한 별도 숙소가 있으며 한달에 일주일 가량 육지에서 휴가를 보내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許씨는 팔미도 정상에 오는 12월 완공예정으로 새롭게 짓는 등대를 지켜보면서 "1백년 된 등대는 올 연말에 퇴역하고 이곳에서 30년을 보낸 저는 내년에 퇴직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 옛 등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팔미도=정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