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여기 이사람] 팔미도 등대지기 허근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검푸른 바다와 밤하늘의 별, 그리고 바람이 나의 친구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장 허근(許根.58.인천해양수산청 팔미도 표지관리소장)씨가 말하는 등대지기의 삶이다.

인천에서 서쪽으로 16.7㎞ 거리에 있는 팔미도 등대는 전국 2천40여개 등대의 맏형이다. 1903년 6월 세운 이래 1백년째 인천항에 출입하는 선박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許씨는 등대 생활 33년째로 젊음을 팔미도 등 무인도에서 바쳤다. 새파란 청춘에 섬에 들어와 냉방에서 겨울밤을 지새웠던 초년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이제 심연처럼 깊은 등대지기의 고독감을 달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내년에 정년을 맞는 그의 옆에는 김기수.김학만 씨 등 2명의 젊은 등대지기가 일을 돕고 있다.

"외부인들은 등대지기를 너무 별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성실하게 기상관측을 하고 남보다 밖의 일에 신경을 덜 쓰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루 일과는 일반인들이 가요 '등대지기'를 떠올리며 막연히 생각하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바쁜 일정 때문이다. 매일 등대의 불빛이 잘 보이도록 유리(등명기) 안쪽을 닦는다. 밤중에 가시거리 20마일 가량의 섬광을 10초에 한번씩 바다에 보낸다. 낮에도 안개 때문에 시야가 흐리면 30초에 한번씩 '붕 붕' 무(霧)신호를 보낸다.

許씨는 82년 4월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내려진 폭풍주의보 때문에 항로를 잃고 헤매는 어선 서너척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등불을 밝혀준 사건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은 선박들이 첨단화돼 등대에 크게 의존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야간이나 안개가 끼었을 때 오로지 등대 불빛에만 의지해 항해를 했습니다. 생명을 살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는 일이었지요."

또 배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파 표지를 관리하고 팔미도가 거느리고 있는 9개의 등표와 등부표에 불이 켜져 있는지도 관찰한다.

일몰.일출 때 등명기를 켜고 끄는 일 말고도 태양열 발전시설 등을 관리하고 등대 주위에 떠있는 부표들의 점등 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이 밖에 온도.풍속.풍향.강수량 등 기상정보를 하루 다섯 차례씩 기상청에 통보한다. 한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다. 그래서 낭만을 좇아 등대원이 된 사람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許씨는 71년 11월 해양수산부의 전신인 교통부 해운국에 근무하던 친지의 소개로 등대원 시험에 합격한 뒤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의 부도에서 등대원 생활을 시작했다.

등대원이 되던 해 2월 결혼해 아내와 신혼방을 등대 기숙사에 차려 세 자녀 중 둘을 등대에서 얻었다. 부도에서 4년 근무하고 선미도 등대를 거쳐 74년 팔미도로 온 뒤 지금까지 이곳을 지켰다. 가족들은 현재 인천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인천 앞바다에 폭풍주의보와 태풍주의보가 잇따라 발효되면 한달 넘게 꼼짝없이 섬에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許씨 등 등대지기 3인은 등대 생활이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15평 남짓한 별도 숙소가 있으며 한달에 일주일 가량 육지에서 휴가를 보내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許씨는 팔미도 정상에 오는 12월 완공예정으로 새롭게 짓는 등대를 지켜보면서 "1백년 된 등대는 올 연말에 퇴역하고 이곳에서 30년을 보낸 저는 내년에 퇴직한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 옛 등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팔미도=정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