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두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쓴 인생 마지막 소설집[BOOK]

중앙일보

입력

굿

굿

굿

전상국 지음
문학과지성사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소설가 전상국씨가 12년 만에 소설집 『굿』을 펴냈다.

책을 열면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단편소설 '동백꽃' '봄·봄' '소나기'를 각각 이어 쓴 오마주 단편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춘천 아리랑'에선 동백꽃의 ‘점순’이 춘배와 흐드러진 동백꽃밭 위로 스러진 다음의 이야기를 점순의 시점에서 써 내려 갔다. '봄·봄'에선 ‘점순’네 데릴사위 ‘칠보’가 여전히 점순과 성례를 하지 못했고, 점순은 야학당 선생님에게 “나 시집 안 갈 테야유!”라고 소리친다. '가을하다'에선 소녀를 잃은 뒤 중학교 2학년이 된 소년 ‘현수’가 여전히 소녀를 그리워하면서도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며 성장하는 과정을 전한다.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맨 마지막에 배치된 중편소설인 '굿'에서 저자는 그의 등단작 '동행'(1963), 그리고 '아베의 가족'(1979), '우상의 눈물'(1980) 등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비극의 그림자를 그려냈다.

70여 년 마을 사람들의 쇠스랑에 찔려 죽은 ‘최용호’가 살아 돌아왔다. ‘최용호’는 창을 하듯 과거의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낸다. 그를 보자 밤마다 인민군에게 잡혀가는 악몽에 시달리는 ‘나’ 또한 수십 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미스터리 인물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이 긴장한다. 한국전쟁의 아픔은 총성이 멈춘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저자는 이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통해 분단이라는 비극 속에서 죽어갔던 평범한 이들을 위로한다.

소설가 전상국씨. 12년만에 중단편 9편을 묶어 소설집을 냈다. 중앙포토

소설가 전상국씨. 12년만에 중단편 9편을 묶어 소설집을 냈다. 중앙포토

함께 수록된 '어디에도 없고 어딘가에 있는'과 '저녁노을' 역시 분단이란 현실에 내던져진 개인의 삶을 다뤘다. '오래된 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집을 떠나 집에 가다'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의 부재를 통해 그 의미를 탐구한다. '조롱골 우리 집 여인들'은 강원도 산골에 모여 사는 성 노동자 출신 일곱 여인의 이야기를 글로 쓴 자칭 ‘팩션 작가’ 유선달을 통해 사회가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작가 스스로 “모두를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잔불 살리듯 공을 들인 아홉 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아 생애 마지막 소설집을 묶는다”고 말한 것처럼, 애정이 깃든 소설 한 편 한 편마다 읽는 맛이 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