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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한국에 이빨 드러내는 中…한국 눈귀 막는 보이지 않는 손(下)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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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한국의 합동참모본부는 6월 6일,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공중전략순찰이 이뤄진 직후, 중국과 러시아의 군용기 각각 4대가 남해와 동해의 KADIZ에 순차적으로 진입 후 이탈했다고 밝혔다. 합참은 “영공 침범은 없었으며, 군은 중국 및 러시아의 군용기가 KADIZ에 진입하기 이전부터 식별해 전투기를 투입하는 등 전술 조처를 했다”고 주장했다.

군용기(軍用機)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항공기를 통칭하는 것으로 한국군에서는 이 단어를 중국의 공중 무력 도발을 순화할 때 주로 쓴다. 모든 유형의 중국 군용기나 선박이 방공식별구역 또는 영해 인근에 나타날 때마다 항공기와 군함을 보내 감시·추적하고 해당 사안을 즉각 공개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군은 중국의 군사적 도발에 대단히 관대하다. 언론이 먼저 보도하기 전에는 어떻게든 축소·은폐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 때 드러난 것처럼 한국군은 중국 군용기의 연간 KADIZ 침입 횟수를 100회 이상 줄여 국회에 허위 보고했다가 들통나 질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서해와 남해에서는 2~3일에 한 번꼴로 중국 군용기의 KADIZ 침범이 이루어지지만, 이번과 같이 일본 측의 발표가 먼저 나오지 않는 이상 한국군은 대부분 중국군의 이러한 군사적 도발을 먼저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할 경우 한국 내에서 반중 정서가 심화할 것이기 때문에 알아서 축소·은폐하는 것이다.

22일 러시아 국방부가 유튜브에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실시한 중·러 연합훈련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훈련에 참가한 Tu-95MS 전략폭격기가 비행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22일 러시아 국방부가 유튜브에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실시한 중·러 연합훈련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훈련에 참가한 Tu-95MS 전략폭격기가 비행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사실 중국·러시아 전투기·폭격기·조기경보기 동원 무력시위는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보다 KADIZ 공역에서 더 오래 실시됐다. 중·러 군용기들은 일본을 상대로는 기껏해야 대마도 인근 공역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한국의 KADIZ에서는 그야말로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그들은 마라도-이어도 사이의 공역, 한국 남해·동해 영공선 외곽과 독도·울릉도 인근을 비행했다. 이런 도발을 당하고도 한국군은 “영공 침범은 없었다”는 말부터 꺼내고 본다. 아직 군사·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항의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한국군의 이러한 ‘중국 눈치 보기’는 정권의 성향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인보다 더욱 안보에 집중해야 하는 군인들이 정치인보다 더 중국의 안보 위협을 축소·은폐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손목과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여러 차례 한국에 대한 고압적이고 적대적인 의지를 드러낸 바 있고 실질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명백한 적국(敵國)이다. 한국은 북한과 휴전 상태이고, 법적으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그런 북한과 조·중 우호 및 상호원조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條約)을 체결한 동맹국으로 명백한 한국의 적국이다.

중국은 휴전 이후 군사적으로 한국에 대한 적대적 의지와 능력을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지금도 로켓군 산하 3개 여단이 최소 600발, 최대 800발의 탄도미사일을 한국에 겨누고 있다. 명백히 존재하는 이러한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한국군은 중국의 적대적 의지와 능력을 애써 외면하고 있고 국민이 그러한 위협을 인지하지 못하게끔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풍 41호(DF-41). 지상발사형 이동식 핵미사일이다. AFP=연합뉴스

중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동풍 41호(DF-41). 지상발사형 이동식 핵미사일이다. AFP=연합뉴스

필자는 과거 국방부·각 군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여러 정권에서 국방부·국회 의뢰로 수많은 연구 과제를 진행할 때도 군은 항상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중국과의 불필요한 군비 경쟁과 갈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든 무기도입 사업은 안보환경 평가와 적 위협 분석에서 시작된다. 신냉전 체제가 심화하고 중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 적대 의지와 능력을 분명하게 가진 상황에서 그것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째서인지 한국군 내에서 금기시되고 있다.

중국군 군용기와 군함들이 거의 매일 동경 124도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을 순찰하고 있다. 최근 6년 사이에는 아예 동해까지 들어와 울릉도·독도 인근을 휘젓고 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이 관련 내용을 발표하거나 국정감사 과정에서 탄로 나기 전까진 절대로 한국군에 의해 선제적으로 공표되지 않는다.

한국군의 무기체계 소요 제기 과정에서도 ‘중국 위협’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애초에 SM-3급 장거리 탄도탄 요격체계 탑재를 위해 추진되던 이지스 구축함 배치 2 사업도 사업 진행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고고도·장거리 요격용 SM-3가 저고도·중거리 요격용인 SM-6로 바뀌는 상황도 벌어졌을 정도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며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적대적 의지를 점점 더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에서 한국은 더 이상 중국의 실체적 위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녹을 받으며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번 중·러 연합 해·공군 입체 무력시위가 경각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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