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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한국에 이빨 드러내는 中…한국 눈귀 막는 보이지 않는 손(上)

중앙일보

입력

지난 수천 년간 역사를 통해 여러 차례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주변의 다른 나라와 융화되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진나라 이후 들어선 그 어떤 왕조에서도 주변 세력이나 국가를 자신들과 동등한 대상으로 인식한 적이 없는 대단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나라였고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들의 배타성은 국호에 ‘중화(中華)’라는 말을 쓰는 것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천자국(天子國)으로 부르며 주변 국가나 세력을 ‘오랑캐’로 인식해왔다. 오랑캐라는 말은 중세 몽골어로 산에 사는 야만족을 뜻하는 우량카이(烏梁海)가 어원인데, 명나라 때부터 한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을 야만족으로 비하해 부르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세상의 중심인 중원(中原)에 중화민족이 있고, 주변에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이라는 오랑캐들이 살고 있다는 세계관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왔다.

이런 오만하고도 배타적인 세계관은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계속된 ‘주권국가’ 개념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현대 국제사회에서 모든 나라는 국력의 강약을 막론하고 고유한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 주권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타국이 침해하거나 개입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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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국인들의 천하사상(天下思想)에서 보면 이러한 주권국가는 중원의 천자국인 중국 단 하나이다. 나머지 국가는 천자국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공물을 바치며 복종해야 하는 제후국(諸侯國) 또는 정벌의 대상인 오랑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미국 주도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 하에서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규칙’이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다자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늘날 중국이라는 전체주의·공산 독재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중국은 지난 3월, 중·러 정상회담을 통해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거부한다고 천명하고 이에 반대되는 개념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신형대국관계의 개념에 대해 ‘상호 존중하고 서로 이익과 협력을 추구하는 새로운 관계’라는 뜬구름 잡는 설명만 해왔다.

그런 중국이 이 ‘신형대국관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지난 6월 8일,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를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싱 대사는 “현재 중·한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면서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심화의 원인을 ‘탈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대중국 협력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중국 시장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순응하며, 대중 투자 전략을 시기적절하게 조정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중국 경제 성장의 보너스를 지속해서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한·중 관계를 경제적 종속(從屬) 관계로 정의했다.

그는 또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의 방해에서 벗어나면 대단히 고맙겠다”면서 한국 정부의 대중국 관계에서 미국이라는 고려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개 국장급 외교관이 대한민국 의전서열 8위의 제1야당 대표를 앉혀놓고 자신이 마치 구한말 위안스카이(袁世凱)라도 된 양 한국을 꾸짖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싱 대사는 “중국 인민들은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중국몽이라는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위협도 잊지 않았다.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질서 계획에 협조하지 않으면 ‘재미없을 것’이라는 사실상 협박이다. 여기서 ‘중국몽(中國夢)‘은 시 주석 본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중화민족의 위대했던 시기를 복원하는 것’, 즉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유일한 패권국이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각국이 고유하고 불가침한 주권을 가진다는 현대적 국제관계를 엎어버리겠다는 이 도발적 망상(妄想)은 그저 구호에서 끝나지 않고 철학적 담론으로 활발히 연구되며 체계화·구체화하고 있다. 중국 인민대 겸임교수이자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인 자오팅양(趙汀陽) 박사가 2005년 공개적으로 ‘천하론’을 꺼냈고, 저장대(浙江大學)에서 ‘관변학자’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요수쥔(尤淑君) 교수는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천하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규정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기존 국제질서를 완전히 갈아엎으려는 새로운 세력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충돌로 이어진다. 제1·2차 세계대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베이징 거리에 설치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진과 ‘중국몽, 인민몽’(중국의 꿈, 인민의 꿈)이란 슬로건이 설치된 대형 홍보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베이징 거리에 설치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진과 ‘중국몽, 인민몽’(중국의 꿈, 인민의 꿈)이란 슬로건이 설치된 대형 홍보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반도는 이러한 충돌의 최전선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의 심장부인 베이징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대중국 최전선 군사기지가 있는 한반도를 반드시 자신들의 통제 속에 두어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도 도전자인 중국을 제압하기 위해 반드시 그들의 심장부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전진기지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이미 입장 정리를 끝내고 중국의 전위(前衛)를 자처하고 있지만,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서 최대 수혜를 입으며 중견국가로 성장한 나라이고 미국과 군사동맹관계에 있다. 중국이 미국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중국은 한국을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로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대놓고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해도 한국으로부터 그 어떤 실질적 항의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싱하이밍의 도발적 언사가 있기 전, 중국은 한반도 인근에서 대대적인 무력 도발을 자행했다. 6월 6일과 6월 7일 이틀에 걸쳐 한반도의 남쪽과 동쪽을 크게 휘젓고 다니며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유린하는 이른바 ‘합동공중전략순찰’을 실시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6월 6일, 각각 국방부 보도자료를 내고 “6차 합동공중전략순찰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2018년부터 시작된 ‘연례행사’인 이 전략순찰은 중국 연안에서 시작해 한국 남해와 대한해협, 독도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임의의 경계선을 중국과 러시아 전략폭격기들이 합동으로 ’순찰‘하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순찰(巡察)’이란 돌아다니며 사정을 살핀다는 의미로 통상 해당 지역에 대한 권리가 있는 사람 또는 조직이 실시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순찰’했다는 곳은 대한민국 영토인 마라도 외곽 영공 경계선 일대와 일본 영토인 대마도 외곽 영공 경계선을 지나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와 울릉도 외곽의 영공 외곽선이 이어지는 가상의 선이다. 즉, 관할권도 없는 자들이 남의 땅 근처에 와서 순찰하고 갔다는 것이다. 명백한 도발이자 위협 행위다.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왼쪽)와 중국 H-6 폭격기. A-50 조기경보통제기, Tu-95폭격기 등 러시아 군용기 15대와 H-6로 추정되는 중국 군용기 4대가 2020년 12월 22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진입했다가 이탈했다.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왼쪽)와 중국 H-6 폭격기. A-50 조기경보통제기, Tu-95폭격기 등 러시아 군용기 15대와 H-6로 추정되는 중국 군용기 4대가 2020년 12월 22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진입했다가 이탈했다. 러시아 국방부 영문 홈페이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 제공자료 캡처

중국과 러시아는 도발 직후 공개한 영상과 사진에서 기체 번호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지만, 일본 항공자위대 F-2A 전투기가 대마도 인근 공역에서 촬영한 사진을 통해 어떤 기체들이 이번 도발에 동원됐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도발을 통해 서방 세계에 보낸 메시지는 ‘중·러의 역할 분담과 팀워크 과시’였다. 러시아 딴에는 ‘협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중국인들은 속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금 중국과 대등한 협력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심화하고 있고, 이번 폭격기 도발도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보다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크다.

중국군 폭격기는 동부전구 산하 제10폭격기사단(第10轟炸機師) 제28연대 소속 H-6K로 안후이성(安徽省) 안칭(安慶)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부대에서 차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YJ-12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 투발 전문 부대로 동중국해와 일본 오키나와 군도의 미야코해협(宮古海峡)에서 수시로 미 항모 타격 훈련을 하는 일명 ‘항모 킬러’부대다. 일본 항공자위대와 수시로 조우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중국 폭격기는 이번 도발 때 별도의 무장을 탑재하지는 않았지만, 대함 타격 임무를 수행할 때 미군 방공 시스템에 전자전을 거는 광역 전자 교란용 전자전 포드를 탑재하고 비행했다.

러시아측 폭격기는 러시아 항공우주군 제326중폭격기사단 예하 제182근위중폭격기연대 소속의 Tu-95MS 전략폭격기로 확인됐다. 이들은 아무르주(Amur oblast) 우크라인카(Ukrainka)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부대다. 이 부대의 임무는 ‘전략폭격(Strategic bombing)’, 즉 핵 공격이다.

과거에는 Kh-22 초음속 대함 미사일 투발 임무도 수행했지만, 현재는 같은 사단 예하 제200·444중폭격기연대에 대함 타격 임무를 인계하고 Kh-55와 Kh-101/102 미사일을 이용한 전략 타격 임무만 수행하는 전력이다. 요컨대 이번 도발은 중국이 미 항모전단에 대한 차단 임무를, 러시아가 미국·일본의 군사기지에 대한 전략 타격 임무를 분담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폭격기가 울릉도와 독도 일대를 휘젓고 다니던 그 시점에 중국은 북해함대 소속 055형 구축함 ‘안산(鞍山)’과 054A형 호위함 ‘린이(临沂)’도 동해로 보냈다. 동부전구는 폭격기를, 동부전구는 전투함과 전투기를 보내 러시아와 협동으로 한반도를 에워싸는 군사 도발을 벌인 것이다.

국방부는 7일 전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과 관련 엄중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지난해 5월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들이 KADIZ를 진입했을 당시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중국 H-6 폭격기를 호위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는 7일 전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과 관련 엄중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지난해 5월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들이 KADIZ를 진입했을 당시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가 중국 H-6 폭격기를 호위하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가 그들에게 관할권이 없는 타국 인근의 하늘에 핵무장이 가능한 전략폭격기를 띄워 순찰을 하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고 위협이다. 일본은 6월 7일, 마쓰로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안을 일본에 대한 무력시위이자 위협으로 규정했다. 일본 외무성 역시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에 항의했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조치지만 사실 일본보다 더 심한 피해국인 대한민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일언반구의 항의조차 없었다.

내일 (下)편에서 계속됩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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