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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고액 연봉에 中 넘어간 서방 조종사들, 美 ‘공중우위’가 흔들린다(下)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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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중국이 기종을 가리지 않고 서방 공군 출신 조종사들을 스카우트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사시 싸워야 하는 적의 전술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낙후된 공군 운용 전술과 교리를 갈아엎기 위해서다.

중국공군은 소련의 지원으로 탄생했고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군대다. 중국공군은 중·소 결렬 이후 기술적으로는 자립을 추구했지만 소련의 공군력 운용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육군이 가장 중요한 군종으로 대접받았고 공군은 육군을 보조하는 부수적인 군종 정도로 인식됐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이른바 ‘걸프전 쇼크’로 상당 부분 옅어졌지만 반세기 넘게 이어진 교리와 전술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못했다. 실제로 지금도 중국이 공개하는 공군 훈련을 보면 ‘서방식’보다는 ‘소련식’에 가까운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전투기들은 근접항공지원(CAS : Close Air Support) 훈련을 할 때 여전히 무유도 폭탄과 로켓을 사용하고 있고 공중전 훈련 때는 냉전 때나 썼을 법한 구식 기동과 편대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중국이 태국과 실시한 연합훈련에서 태국 공군에 참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이른바 ‘난파톈(南覇天)’으로 불렸던 최정예 부대를 투입해 가상 공중전을 실시했지만 태국공군의 F-16과 JAS-39C/D 그리펜(Gripen) 전투기에 완패했다. 4:0 완패의 원인을 분석한 중국 측 전문가는 기체의 성능 차이도 문제였지만, 조종사들의 낡은 교리와 전문성 부족이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중국 최정예라던 전투조종사 가운데는 태국공군 전투기가 발사한 ‘사이드와인더’ 적외선 추적 공대공 미사일이 날아오자 태양을 향해 수직 상승한 뒤 엔진 추력을 급격히 줄이는 회피 기동을 한 조종사도 있었다. 이런 방식의 회피 기동은 적외선 추적 방식의 공대공 미사일이 막 배치되던 1950년대 후반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시커(Seeker) 성능이 크게 향상된 오늘날에는 전혀 안 통하는 낡은 방법이다. 중국의 전투기 조종사 역량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2015년 중국이 태국과 실시한 Falcon Strike 연합훈련. Royal Thai Air Force

2015년 중국이 태국과 실시한 Falcon Strike 연합훈련. Royal Thai Air Force

중국이 서방 국가들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대거 스카우트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다.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한 직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 특히 연합훈련 경험이 풍부하고 실전 경험이 있는 조종사는 그 가치를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하다. 전투기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유사시 베테랑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 1대는 총을 들고 육지를 뛰어다니는 수백 명의 보병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각국 공군이 괜히 조종사 구출을 전담하는 별도의 특수부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투기의 기술적 발전은 바로 이런 조종사들의 개선 요구에서부터 시작되며, 훈련과 실전에서 이들이 얻은 교훈은 새로운 전술과 교리가 되어 동료들은 물론 후배들에게도 전수된다.

지금까지 중국의 전투조종사 스카우트 공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국가는 미국·호주·영국·프랑스·독일 등 서방 국가들이다. 놀랍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일본 전투조종사들의 스카우트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내 8대 항공사에서 중국으로 이직한 조종사는 367명이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공군 출신이었다. 이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중국 항공사에 취업하기는 했지만 이들 가운데 중국공군의 교관 역할로 스카우트된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반면 앞서 언급한 서방 국가들에서는 갓 전역한 조종사는 물론 전역한 지 오래된 50대 조종사들도 스카우트 대상이 됐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국가들 조종사들의 기량과 역량이 한국공군 조종사들보다 월등하고 각종 훈련과 실전 투입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이고, 미국의 전쟁 선봉에는 언제나 공군력이 있었다. 미국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실전을 통해 계속해서 전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고, 자체 훈련은 물론 다국적 연합훈련도 수도 없이 실시하며 타국의 신형 전술과 교리를 적극적으로 ‘염탐’하기도 한다.

세계 최강의 항공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그야말로 ‘훈련에 미친 나라’다. 알래스카에서 매년 4회, 네바다에서 매년 3~6회 ‘레드 플래그(Red flag)’ 훈련을 한다. 편을 갈라 실전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 훈련은 미 육·해·공·해병대 항공 전력이 모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동맹과 우방국도 많이 참여한다. 여기에는 영국·프랑스·호주·독일 등 이번에 중국의 조종사 스카우트 공작이 보고된 나라들은 물론, 벨기에, 캐나다, 인도, 이탈리아,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 수십 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Electronic Attack Squadron 132의 미 해군 공군이 2020년 7월 31일 Red Flag 20-3 훈련 전 이륙할 EA-18G Growler를 준비하고 있다. US air force

Electronic Attack Squadron 132의 미 해군 공군이 2020년 7월 31일 Red Flag 20-3 훈련 전 이륙할 EA-18G Growler를 준비하고 있다. US air force

이와 별개로 유럽·아시아·인도·중동 등 권역별 연합훈련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각국 공군과 모의 공중전을 벌이기도 하고 아예 미국 내 민간군사기업(PMC)의 전투기들까지 가세해 실전과 같은 고강도 훈련을 벌이기도 한다.

미국에는 다양한 PMC가 있고, 이 가운데 절대다수는 ‘군사자문기업(MCF : Military Consultant Firms)’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MCF 가운데는 어지간한 중소 국가의 공군력을 능가하는 전투기 전력을 보유한 회사도 많다.

ATAC(Airborne Tactical Advantage Company)이라는 업체는 미라지 F1 전투기 63대와 호커 헌터(Hawker Hunter) 전투기 20대, 크피르(Kfir) 전투기 6대 등을 보유하고 있고, Air USA라는 업체는 F/A-18 전투기 46대와 MIG-29 전투기 4대, F-5E 전투기 10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조종사는 미 공군과 해군, 해병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고, 이들은 ‘민간 교관 조종사’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전투기 조종술을 가르치며 공중전 훈련의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 주기도 한다.

민간 교관 조종사로 활동하는 베테랑들은 여전히 군인정신과 애국심을 가진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이는 곧 그들의 기술과 지식이 사익(私益)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바로 여기에 착안했고 이런 사람들을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해 각 부대에 배치했다.

이번에 적발된 독일 조종사들은 물론, 미국에서 기소된 퇴역 해병대 조종사들은 중국공군의 교리 개발을 담당하는 부대나 조직이 아닌 일선 비행여단에 배치돼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과 밀착하며 활동했다. 이들은 J-11 또는 J-16과 같은 중국제 전투기 조종이 가능하도록 기종 전환 교육을 받고 미국·유럽제 전투기들의 공중전 기술과 부대 교리·전술을 중국제 전투기와 조종사에게 전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과거 J-11과 J-16이 러시아의 Su-27과 Su-30 같은 형태로 운용됐다면 서방 조종사들에게 교육을 받은 J-11과 J-16은 이제 F-15C나 F-15E와 같은 교리와 전술을 구사하는 제대로 된 4.5세대 전투기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민해방군 서부전구사령부 공군 항공여단 소속 중국 J-16 전투기가 2021년 10월 10일 비행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China Ministry of Defense

인민해방군 서부전구사령부 공군 항공여단 소속 중국 J-16 전투기가 2021년 10월 10일 비행훈련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China Ministry of Defense

중국에 고용된 서방 출신 전투 조종사들은 자신들이 몰던 F-15나 F-16, F/A-18, 유로파이터 등의 전투기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고, 공중전 상황에서 어떤 기동과 전술을 사용하는지를 중국에 노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향후 서방측 공군 전투기들과 중국 전투기들이 맞붙게 되면 중국이 서방측 전투기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공중전 기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최근 노후 전투기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전투기 전력을 4.5세대 이상 기종으로 정비하며 미국·유럽과의 전투기 기술 격차를 빠른 속도로 좁혀온 바 있다. 일부 전투기는 레이더와 미사일 성능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기술적 진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조종사 기량 문제였는데, 이 문제도 미국·유럽 출신 전투조종사들을 스카우트해서 대단히 빠르게 해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베테랑 전투 조종사들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고급 자원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고작 수억 원에 데려와 그들이 가진 기술과 지식을 흡수했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아직 미국과 유럽 각국은 중국에 넘어가 중국공군의 교관 역할을 해 주는 서방 출신 베테랑들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될지 추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서방 세계가 힘을 합쳐 베테랑 조종사 중국 유출을 막기 위한 적극적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차후 미·중 충돌이나 대만 유사시 서방 각국은 서방식 전투기 조종술과 공중 전술을 구사하는 중국공군과의 힘겨운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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