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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 사러 왔어요" 파키스탄인이 동네약국 단골 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런던의 고급 식당 ‘아이비 아시아’에서 손님들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로 만든 메뉴를 즐기고 있다. 사진 CJ제일제당

영국 런던의 고급 식당 ‘아이비 아시아’에서 손님들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로 만든 메뉴를 즐기고 있다. 사진 CJ제일제당

#1. 파키스탄 북동부 라호르 지역에 사는 모하메드 나피즈 바리(44)는 CJ제일제당이 만든 ‘비비고 스낵김’을 사기 위해 가끔 약국을 찾는다. 그는 “이곳에서는 음식으로 요오드를 섭취하기 어려워 한국의 김을 ‘건강 간식’으로 먹는다. 그래서인지 약국에서도 김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스위스 발레의 알레치 빙하전망대에서 농심 ‘신라면’을 맛볼 수 있다. 융프라우·마테호른 등에서 큰 인기를 얻자 발레주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대방동에 있는 농심 본사를 찾아 신라면을 공급해 달라고 ‘구애’한 결과다.

#2. 영국 런던의 고급 식당 ‘아이비 아시아’는 최근 한국 만두 메뉴를 선보였다. 프랑스에선 삼겹살을 구워 먹는 한식당이 인기다. 파리에만 한식당이 200여 개로, 코로나19 전에 비교해 두 배가 됐다.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인 미쉐린가이드 스타를 받은 미국 뉴욕의 72개 식당 중 한식당이 9곳이었다.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한식당 수는 2010년 ‘0곳’에서 현재 27곳으로 늘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5.3% 늘어난 120억 달러(약 15조3000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 연속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5개월 넘게 무역 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K-푸드가 ‘버팀목’ 역할을 하는 셈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CJ제일제당‧대상‧롯데웰푸드‧오뚜기‧농심 등 연매출 3조원 이상을 올리는 ‘3조 클럽’ 식품 기업 8곳 중 5곳은 해외 매출 비중이 두 자릿수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식품 사업 매출 11조1042억원 중 절반 가까이(47%)를 해외에서 벌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른바 ‘K-푸드’의 세계화 3.0 시대다. 수출과 현지 매출 증가는 기본이고, 전 세계 곳곳의 동네 약국과 관광 명소는 물론 대기 리스트를 받아야 하는 파인 다이닝(고급 맛집)까지 스며들면서다. 주로 교민이나 현지인의 호기심에 기댄 해외 진출기(K-푸드 1.0), 식품 업체와 프랜차이즈 중심의 글로벌 영토 확대(K-푸드 2.0)에서 진화한 것이다.〈그래픽 참조〉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 같은 K-푸드의 성공은 지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투자, 시장 개척 의지로 이뤄졌다. 이들의 성공 공식은 ▶철저한 시장 조사 ▶한국적인 현지화 ▶브랜드파워 키우기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CJ제일제당은 닭고기를 선호하는 미국 현지인의 식성을 고려해 만두소로 돼지고기 대신 치킨과 실란트로(고수)를 넣은 제품을 출시해 미국 시장 1위에 올랐다. 롯데웰푸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본의 경쟁 업체가 오프라인 행사를 중단하는 상황에서도 필리핀에서 ‘빼빼로 데이’ 행사를 여는 등 현지 마케팅 비용을 두 배 이상 늘리는 적극적인 투자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했다. 오뚜기는 러시아 등에 치즈를 접목 시킨 라면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보들보들 치즈라면’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SPC의 파리바게뜨는 프랑스에 진출할 때 준비 기간만 10년 이상이 걸렸다. 현지인에게 친숙한 맛을 내기 위해 효모·온도·습도 등 발효 조건을 달리한 상태에서 하루에 수백 개의 빵을 구워 테스트했다. ‘회사 알리기’에도 공을 들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주재원과 가족이 외출할 때 파리바게뜨 로고가 새겨진 가방이나 쇼핑백을 들고 다닐 정도였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외식 기업의 활약도 눈에 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진출 외식 브랜드는 141개, 외식 점포수는 3833개에 이른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전 세계 57개국에서 700여 개 매장을,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는 10개국에서 47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는 등 한식 고급화에 성공한 글로벌 한식당들은 경기미나 완도산 전복 같은 국산 식재료를 사용하고, 한국 이름의 메뉴를 구성하는 등 한식 정체성을 뚜렷이 한 곳이 많다. 뉴욕 한식당 ‘주아’의 김호영 셰프는 김부각에 밥을 채우고, 캐비어를 올려 육회와 같이 먹는 요리 등 7코스 한식 테이스팅 메뉴를 내고 있다. 김 셰프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라며 “2011년 뉴욕에 왔을 때는 현지인들이 한식에 낯설 수 있어 모던한 다이닝에 한국적 요소를 넣는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식에 모던한 요소를 살짝 더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맞아 롯데웰푸드가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지역의 대형 쇼핑몰 글로리에따에 마련한 부스에서 현지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당시 이 행사장에는 3일간 1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렸다. 사진 롯데웰푸드

지난해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를 맞아 롯데웰푸드가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지역의 대형 쇼핑몰 글로리에따에 마련한 부스에서 현지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당시 이 행사장에는 3일간 1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렸다. 사진 롯데웰푸드

이 같은 K푸드의 세계화로 관련 업계에선 “전 세계인이 1주일에 1~2회 이상 한식을 즐기도록 하겠다”(이재현 CJ그룹 회장)는 구상의 현실화가 부쩍 가까워졌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 프라이빗 라벨(PL·자체 상표) 박람회’에서 만난 네덜란드 온라인몰 바이어 옐 드 브리스는 “유럽 주요 도시에 한식당이 크게 늘면서 유럽에서 한식은 주요 트렌드”라고 말했다.

뉴욕의 한식당 ‘주아’는 갈비와 함께 7가지 찬을 함께 낸다. 찬의 개념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 사진 JUA

뉴욕의 한식당 ‘주아’는 갈비와 함께 7가지 찬을 함께 낸다. 찬의 개념이 없는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는다 . 사진 JUA

정부도 K-푸드 세계화를 지원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한식 품질 상향을 위해 해외 우수 한식당 지정 사업을 시작했다. CJ제일제당이 시작한 한식 셰프 발굴‧육성 프로그램인 ‘퀴진(Cuisine) K’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하지만 현지 시장조사, 현지법인 설립 등 법률 문제, 식재료 통관 등 보다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의 K-푸드 열풍은 2030세대에 집중돼 있고, 최근 유럽에 많이 생긴 한식당도 전 연령층으로 확대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셰프의 현지 진출을 돕고 노하우, 레시피 메뉴얼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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