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미동맹 강화 비판…‘전랑 외교’ 발톱 드러낸 중국대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3호 04면

외교부, 싱하이밍 중국대사 조치해 엄중 경고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말 폭탄’이 한·중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등 외교 결례 및 내정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외교부가 9일 고강도 대응에 나서면서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전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싱 대사의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장 차관은 이 자리에서 싱 대사가 다수의 언론 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 차관은 이어 싱 대사의 이번 언행은 상호 존중에 입각해 한·중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양국 정부와 국민의 바람에 심각하게 배치되는 것으로, 오히려 한·중 우호의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싱 대사가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주한 중국대사 관저에서 이 대표와 만찬 회동을 하는 자리에서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다”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자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싱 대사는 더 나아가 “한·중 관계가 어려움에 부딪힌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싱 대사가 이 대표와의 만남에서 한 모두 발언은 민주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싱 대사의 발 한국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정면으로 비판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한·중 우호 관계 강화에 앞장서야 할 외교사절이 오히려 상대국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경우 외교부가 해당국의 대사를 초치하는 건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이날 외교부가 야당 대표와의 대화와 관련해 싱 대사를 초치한 건 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었다. 싱 대사 초치 후 외교부가 공개한 장 차관의 발언 수위도 유례없이 높았다. 비상식적, 도발적, 무책임, 불신 조장 등은 물론 내정간섭,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엄중 경고 등 주재국 대사에겐 거의 쓰지 않는 직설적이고도 날 선 표현이 두루 담겼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싱 대사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외교부는 이를 ‘도를 넘은 외교 결례’로 받아들였고 대통령실 역시 강도 높은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특히 정부는 최근 싱 대사가 각종 언론 인터뷰와 공식 석상 발언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 대표와의 면담 발언이 나오자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한국의 ‘가치 외교’ 기조를 지켜보던 중국은 최근 탐색기를 끝내고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색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문제가 된 싱 대사의 발언 역시 ‘한·미동맹 강화→한·일 관계 개선→한·미·일 공조 본격화→국제사회 역할 확대’로 이어지는 한국의 외교 노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전날 이 대표와 싱 대사의 면담 직후 싱 대사의 발언 내용을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대사관이 특정 정치권 인사와의 면담에서 공세적 발언을 쏟아낸 대사의 발언을 전문 형태로 공개하는 것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싱 대사의 발언이 주한 중국대사관을 넘어 중국 공산당과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며, 싱 대사는 이 대표와의 면담 기회를 활용해 이 같은 메시지를 강하게 발신하는 계획 등을 본국과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싱 대사의 발언은 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왔지만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라기보다는 한국 정부를 향해 불만을 성토하려는 목적이 더 커보인다”며 “특히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에 베팅할 경우 후회한다고 경고하고 중국과 협력할 경우 ‘경제 성장의 보너스’를 누린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이 추구하는 외교 정책에 대한 중국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싱 대사가 이 대표와의 면담 때 사용한 ‘베팅’이란 표현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강조할 때 사용해 온 표현이다. 2013년 12월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결코 좋은 베팅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번엔 싱 대사가 야당 대표 앞에서 미국식 표현을 빌려 한국의 선택을 압박한 셈이다.

정치권도 이날 싱 대사 발언을 둘러싸고 종일 술렁였다. 이 대표는 확대간부회의에서 “경색된 한·중 경제 협력을 복원해 대중 교역을 살려내고 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 중국 대사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자평했다. 기자들과 만나서도 “경제와 안보 문제 등 할 얘기는 충분히 했다”고 전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강하게 비판했다. 김기현 대표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싱 대사가 작심한 듯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데도 이 대표는 짝짜꿍하며 백댄서를 자처했다”고 비난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청나라 앞에 굴복했던 삼전도의 굴욕을 떠올리게 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