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42) 유비와 제갈량, 드디어 ‘수어지교(水魚之交)’가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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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설한 겨울이 가고 신야에도 다시 새봄이 왔습니다. 지난해 겨울, 유비는 아우들과 함께 제갈량을 참모로 영입하기 위해 그의 초가를 두 번이나 찾았지만 만나질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꼭 만나기 위해 좋은 날을 잡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유비의 마음은 절박했습니다. 그동안의 방랑 세월을 끝내고 천하경영의 웅지를 펼치기 위해 모두가 추천하는 제갈량을 꼭 참모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제갈량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열 번이라도 찾아가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유비의 급박하고 간절한 마음는 달리 관우와 장비는 부아만 끓었습니다. 주군으로 모시는 윗분이 아들뻘인 백면서생을 몸소 여러 차례 찾아가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진중(鎭重)하던 관우까지 나섰습니다.

삼국지 최고의 책사인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삼국지 최고의 책사인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형님께서 몸소 두 번이나 찾아가신 것만도 예우가 너무 지나치십니다. 제 생각에는 제갈량이 헛소문만 뜨르르할 뿐 실속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피하면서 얼굴을 못 내미는 것 같습니다. 형님은 어째서 그에게 그렇게나 홀리셨습니까?

그렇지 않다. 옛날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동쪽 성곽의 야인(野人)을 다섯 번이나 찾아가 겨우 만났는데, 하물며 나는 대현(大賢)을 만나려는 것이 아니냐?

옆에서 듣던 장비는 한술 더 떴습니다.

형님이 잘못 보셨소. 그따위 촌놈이 무슨 대현(大賢)입니까? 이번에는 형님이 가실 것 없습니다. 그가 만일 안 오겠다면 제가 삼밧줄로 꽁꽁 묶어 끌고 오겠습니다.

유비는 장비를 심하게 꾸짖고 관우하고만 가려고 하자 조심하겠다고 약속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초가에 도착하니 제갈량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유비는 계단 아래서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있어도 기척이 없자 사립문 밖에서 기다리던 관우와 장비가 들어왔습니다. 형님이 아직도 기다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장비는 또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선생이라는 작자가 아무리 오만하기로서니 어찌 우리 형님을 계단 아래에 서 있게 하면서 모르는 체하고 내처 자빠져 잘 수 있소? 내가 뒤꼍으로 가서 집구석에 불을 싸지를 테니 제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보시오.

관우가 장비를 말리고 유비가 다시 둘을 문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제갈량은 소란한 분위기에 깰 만도 한데 피곤했던지 단잠에 빠진 것인지 계속 잠만 잤습니다. 아예 벽을 향해 돌아누워 세상 모르게 자는 듯했습니다. 유비는 다시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잠에서 깬 제갈량이 의관을 갖춰 입고 유비를 만났습니다. 유비는 사양하는 제갈량을 잡기 위해 자신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나라는 기울어 무너지려 하고 간사한 신하는 임금의 권력을 빼앗아 휘두르고 있소. 나는 힘도 생각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천하에 펴고자 하나 지혜도 모자라고 방법도 서툴러 이룬 것이 없소. 선생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고난에서 구해준다면 실로 다행이기 그지없겠소.

유비의 포부를 들은 제갈량은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분석하고, 이어서 그 유명한 ‘천하삼분계책’을 이야기합니다.

삼고초려한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삼고초려한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명하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이것은 서천 쉰 네 고을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霸業)을 이루려면, 북쪽은 조조가 천시(天時)로 차지했으니 양보하시고, 남쪽은 손권이 지리(地利)를 차지했으니 양보하소서. 장군은 인화(人和)로 차지하셔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빼앗아 집으로 삼고 뒤이어 서천을 빼앗아 기업을 열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룬 다음에야 중원을 도모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이름도 없을뿐더러 덕망도 없으니 선생이 부디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 도와주기 바라오. 선생이 나가지 않으면 저 가엾은 백성들을 어찌하오?

장군께서 그토록 아껴주시니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습니다.

드디어 유비는 제갈량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두 아우와도 인사하고 초가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유비와 제갈량 두 사람은 꿈을 이룬다는 설렘에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한편, 강동의 손권은 널리 훌륭한 인재를 영입해 문무(文武)를 보좌하는 인물이 모여들었습니다. 조조는 원소를 무찌르고 강동으로 사신을 파견해 손권의 아들을 허도로 보내서 황제를 모시라고 했습니다. 조조는 손권의 아들을 볼모로 삼고 손권을 부릴 계산이었습니다. 손권이 망설이며 결정을 못 내리자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를 불러 상의했습니다. 장소는 조조의 요청을 듣지 않으면 군사를 몰고 쳐들어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유는 볼모가 되면 손잡지 않을 수 없고,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게 될 터이니 결국 견제를 받는 것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손권은 주유의 말에 따라 아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조조는 강남을 정복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손권의 아우인 손익은 단양태수(丹陽太守)였는데, 성품이 거세고 술을 좋아해 취하기만 하면 병사들을 매질했습니다. 주사(酒邪)가 심하면 언젠가는 큰 봉변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급기야 부하인 규람과 대원은 손익의 종복인 변홍과 짜고 손익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손익의 아내인 서씨는 아름답고 총명했는데 주역 점을 잘 쳤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도 점을 쳐보니 괘상(卦象)이 아주 나빴습니다. 서씨가 남편에게 주연에 나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그날 밤, 변홍의 칼에 손익이 죽었고, 규람과 대원은 변홍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둘은 태수부(太守府)를 장악하고 재산과 시첩들을 약탈했습니다. 서씨의 미모가 탐난 규람은 그녀를 협박했습니다.

내가 네 남편의 원수를 갚아 주었으니 너는 나를 모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차마 금방 모시겠나이까. 그믐날이 되거든 제사나 지내고 상복을 벗은 다음 신방에 들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서씨는 일단 규람을 안심시켜 놓았습니다. 남편의 심복 장수였던 손고와 부영을 불러 두 번 절하고 남편의 원수를 갚게 해달라고 눈물로 간청했습니다. 손고와 부영은 서씨의 손발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그믐날이 되었습니다. 서씨는 제사를 끝내고 즉시 상복을 벗었습니다, 목욕과 훈향(薰香)을 하고 짙은 화장을 했습니다. 마치 아무 일 없는 평상시처럼 행동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규람은 매우 기뻤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서씨는 술상을 마련하고 규람을 청했습니다. 규람은 금방 술에 취했습니다. 서씨가 규람을 밀실로 안내하자 기쁜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서씨의 부름에 숨어있던 두 장수가 칼을 들고 뛰어나와 규람을 죽였습니다. 서씨는 대원도 잔치에 참석하라고 불렀습니다. 잔칫상을 받으러 온 대원도 칼을 받고 죽었습니다. 서씨는 다시 상복을 입고 규람과 대원의 머리를 잘라 남편의 영전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규람을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는 서씨. 허우범 작가

규람을 죽여 남편의 원수를 갚는 서씨. 허우범 작가

비보를 들은 손권이 군마를 이끌고 왔을 때는 이미 일이 마무리된 후였습니다. 손권은 손고와 부영이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시를 지어 영웅호걸 못지않은 서씨의 지모를 찬양했습니다.

예쁘고 절개 있는 이 세상에 없는데 才節雙全世所無
사악한 것들 하루아침에 뿌리 뽑히네 姦回一旦受摧鋤
못난 신하들 적 따르고 충신은 죽으니 庸臣從賊忠臣死
동오의 여장부만도 못하여라 不及東吳女丈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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