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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41) 유비 삼형제, 천하의 대현(大賢) 제갈량을 찾아나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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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는 유비와 작별하고 어머니가 계신 허도로 갔습니다. 조조는 서서를 반갑게 맞이하고 좋은 의견을 들려달라고 합니다. 서서가 어머니를 뵙자 모친은 아들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어 서서로부터 경위를 들은 모친은 크게 노했습니다.

이 치욕스러운 자식아! 여러 해 동안 강호를 떠돌기에 나는 너의 공부가 좀 나아진 줄 알았더니 어째서 그 전만도 못하냐? 네가 글을 읽었다면 충성과 효도는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게다. 어째서 조조가 임금을 속이는 역적이고, 유비가 인의를 사해에 펴는 사람임을 모르느냐!

모친은 아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자결했습니다. 서서는 통곡과 혼절을 반복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려다가 불효막심한 아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조조는 제물을 보내고 조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서서는 조조가 주는 것은 모두 받지 않았습니다.

유비는 서서와 작별한 후, 서서가 추천한 제갈량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이때, 사마휘 선생이 서서를 만나러 왔습니다. 유비는 반갑게 맞이하고 서서가 추천한 제갈량에 관해 물었습니다. 사마휘가 웃으며 한마디 합니다.

수경선생 사마휘. 출처=예슝(葉雄) 화백

수경선생 사마휘. 출처=예슝(葉雄) 화백

서서는 가려면 저만 가면 그만이지 무엇하러 또 남은 끌어내어 심혈(心血)을 토하게 하는고.

유비가 제갈량에 대해 더욱 궁금해하자, 사마휘는 ‘제갈량은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교하지만, 그 재능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관우가 끼어들었습니다.

제가 듣기에 관중과 악의는 춘추전국 때 명인으로 그들의 공은 천하를 덮었는데, 제갈량이 자신을 그 두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사마휘는 관우의 말에 빙긋이 웃고, 그들뿐 아니라 그 밖의 두 사람과도 견줄만하다고 말합니다. 그 두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자,

주나라 8백년을 일으켜 세운 여상과 한나라 4백년을 일으켜 세운 장량과 비교할 만합니다.

제갈량의 인물됨을 확실하게 알려준 사마휘는 유비와 작별하고 대문을 나서며 하늘을 우러러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갈량이 비록 주인은 만났으나 때를 만나지 못했으니 애석한 일이구나!

유비는 사마휘의 설명을 듣자 더욱 제갈량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아우들을 데리고 제갈량이 사는 와룡강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출타 중이었습니다. 다시 날을 잡아 오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갈량의 친구인 최주평을 만나 세상일을 논하기도 했지만 유비의 생각은 은둔자인 최주평과 맞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후 제갈량이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은 유비는 다시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그러자 장비가 못마땅한 어투로 말합니다.

제갈량을 만나러 가는 유비 삼형제. 출처=예슝(葉雄) 화백

제갈량을 만나러 가는 유비 삼형제. 출처=예슝(葉雄) 화백

까짓 촌놈 하나 데리러 어째서 형님이 직접 가셔야 합니까? 사람을 시켜서 불러오면 될 터인데!

너는 어찌 ‘훌륭한 이를 만나고자 하면서 예의를 다하지 아니하면 그에게 들어오라고 하면서 문을 닫는 것과 같다.’는 맹자의 말씀도 못 들었느냐? 그는 지금 세상의 대현(大賢)인데 어떻게 부를 수 있느냐?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한겨울이어서 날씨는 매섭게 추웠습니다. 검은 구름이 깔리더니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장비가 다시 투덜대자 유비는 재차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습니다. 제갈량의 동생인 제갈균만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유비는 마음이 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동생에게 맡겼습니다. 유비의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박종화의 필치로 읽는 것이 글맛이 더 있습니다.

‘오랫동안 높으신 이름을 사모해 두 차례나 뵈러 왔다가 만나 뵙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니 슬픈 마음 어찌하오리까. 가만히 생각하니 저 유비는 한조의 후예로서 외람되이 벼슬을 받았습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조정은 약하게 바뀌고 기강은 무너져 꺾어졌습니다. 자칭 뭇 영웅들은 나라를 어지럽게 했고 악한 무리는 임금을 속였습니다. 저 유비는 마음과 쓸개가 함께 찢어지는 듯 하오이다. 비록 널리 구해보고 싶은 정성은 간절하나 실상인즉 경륜하는 방책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우러러 바라는 바, 선생께서는 인자하시고 충의로우시니 개연히 여망(呂望)의 큰 포부와 자방(子房)의 큰 책략을 베풀어 주신다면 천하의 다행이요 사직의 다행이겠습니다. 우선 충정을 펴서 아룁니다. 다시 목욕재계하고 오겠습니다. 특별히 존안(尊顔)을 대하게 해주십시오. 뵈옵고 정성을 올리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를 전해주고 나오던 유비는 제갈량의 장인인 황승언을 제갈량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유비는 서운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발길을 되돌렸습니다. 그쳤던 눈보라도 다시 몰아쳤습니다. 유비의 이런 마음을 노래한 시 한 편이 멋집니다.

황승언을 제갈량으로 오인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황승언을 제갈량으로 오인하는 유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눈보라 뚫고 어진 이 찾아갔다가 一天風雪訪賢良
보지 못하고 돌아오니 마음만 상하누나. 不遇空回意感傷
개울다리는 꽁꽁 얼고 산길은 미끄러운데 凍合溪橋山石滑
추위는 말안장 후벼들고 갈 길은 아득하여라 寒侵鞍馬路途長
머리 위엔 배꽃 같은 송이눈 무수하고 當頭片片李花落
얼굴에는 어지럽게 함박눈만 부딪히네. 撲面紛紛柳絮狂
말채찍 부여잡고 고개 돌려 먼 곳을 바라보니 回首停鞭遙望處
찬연한 은빛 세상이 와룡강에 가득하구나. 爛銀堆滿臥龍岡

유비의 급한 마음을 제갈량은 정녕 모르는지, 언제 등장해 유비에게 속 시원한 천하계책을 이야기해주려는지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급한 마음은 매한가지입니다.

모종강은 제갈량이 출사(出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비의 간절함에서 찾았습니다.

‘서상곡(西廂曲)에 “대숲에 바람 지나는 소리만 들어도 금패(金牌)소리가 아닌가 하고, 달빛에 비쳐드는 화영(花影)을 보고도 임이 온 것이 아닌가 하네”라는 말이 있는데 유비가 목마르게 모사를 찾는 심정이 이러했던 것 같다. 제갈량이 나가고 싶지 않다 해도 어떻게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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