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전쟁보다 평화 원했다/미,대 이라크 협상 전격 제의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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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엔결의 얻어 명분 확보/전쟁땐 부담·국내 반전여론 등 의식/이라크도 긍정적… 순항 기대
30일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에 대한 대화 제의는 너무나 전격적이어서 미국 관리들조차 놀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29일 유엔으로부터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승인 결의안을 얻어낸 것이 다분히 실제 개전의지보다 평화적·외교적 사태해결을 위한 준비완료라는 의미가 크기는 하지만 결의안 채택 하루만에 협상제의가 나온 것은 모두에게 의외였다. 그러나 부시 제의는 5개월째로 들어선 페르시아만 사태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는 미측의 중요한 입장선회로 풀이된다.
미국은 사태발발 이후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를 요구하면서 경제봉쇄·미군 증파 등 대 바그다드 압력을 가중시켜 왔다. 무력사용 결의안을 추진하면서 부시는 어떠한 형태일지라도 대 이라크 협상은 거부한다는 입장을 수차 명백히 천명해 왔다.
최근 중동 방문에서 부시는 『우리는 이제 더이상 현상유지에 진력이 나있다』면서 『「부분적 해결」방식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타협거부 입장을 재확인했었다.
부시의 미­이라크 외무장관 교환방문 제의로 나타난 미측의 급선회에 대해 이라크도 아직 공식입장은 없지만 주파리 대사를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힘으로써 대화의 가능성과 전쟁모면의 기대를 제시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미 여러차례 비록 조건은 달았지만 미국과의 협상을 직·간접으로 제의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부시 대통령의 협상제의는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협상을 기피해 온 것은 협상에 임하는 위치 설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즉,미국은 섣불리 협상카드를 내놓을 경우 이라크의 행동을 기정사실화해 후세인의 입지만 강화시켜 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균열이 생겨 지금까지의 결속이 무너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국은 걱정했다.
미국은 그러나 이제는 유엔으로부터 무력사용 승인까지 얻어낸 상황이어서 협상의 고지를 확보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유엔의 결의를 확보함으로써 평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전쟁밖에는 길이 없다는 배수진이 쳐졌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배수진은 이라크가 당연히 협상제의에 응해 올 것이라는 전제를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비록 유엔으로부터 무력사용 승인은 얻어냈으나 정말 전쟁을 할경우 자신이나 미국이 져야할 부담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유엔에서 무력승인 결의안이 통과되던 시점에 미 의회에서는 「성급하게 전쟁으로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실정이었다.
또 중동지역 실정을 보아도 전쟁으로 인해 수십만명의 이라크 국민이 희생될 경우 이지역의 반미감정만 촉발시켜 결국 미국에 득될 것이 없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미국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은 피하면서 명예로운 해결을 모색해야할 입장에 놓인 것이다.
이날 부시 대통령 기자회견의 기조도 최후통첩성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협상을 희망하는 쪽이었다.
부시는 『미국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며 『나에 대해 신중한 결정을 하라는 충고가 많은데 나는 계속 신중할 것』이라며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또 내년 1월15일이라는 시한에 대해서도 『이 이후에 무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유보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미국이 제시한 협상의 조건에도 변화가 눈에 띈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에서 결의한대로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 쿠웨이트 정부의 복귀,인질석방만을 지적했을 뿐 지금까지 강조해 왔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장래거취에 대한 언급이 없어졌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세인을 히틀러에게 비유하며 『제거돼야할 인물』이라는 점을 암시했었다.
어쨌든 이번 협상제의 과정에서 후세인의 위치를 인정한 만큼 협상이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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