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한국 요리나 한국 드라마가 일회성의 인기에 멈추지 않고, 젊은 층은 K팝을 동경하고 한국이 유행의 최첨단이라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5년 전 한·일 양국 문화·인적 교류의 확충을 강조한 파트너십 선언이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함께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3일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대에서 열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다.
스가 전 총리는 다케다 료타(武田良太) 의원이 대독한 축사에서 "한·일 관계 발전은 지역 전체의 이익"이라며 "앞으로도 양국 교류를 통해 관계가 한층 돈독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한의원연맹 회장으로서 "현재의 전향적 흐름을 더욱 가속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와세다대 일미연구소, 한일의원연맹,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에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5주년을 기념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한·일 문화 교류를 주제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는 축사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일본 문화가 한국에 유입됐을 때 우려와 저항이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인기를 끌면서 한류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때 악화했던 한·일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공동선언이 있었다"면서 "이제 한·일 관계를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정진석 의원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한·일 관계의 지침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 선언을 기반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양국 관계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무소속 김홍걸 의원은 오부치 전 총리가 이 선언에서 밝혔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공동선언의 핵심이며, 따라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재일교포 2세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외교의 실패로 인해 일어났다고 본다"며 "이러한 세계적 위기 속에서 한·일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어떤 식으로 한·일 관계를 ‘버전 3’로 업그레이드시킬지는 일본에서의 혐한, 한국에서의 반일을 어떻게 관리해나가고 서로의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한·일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도 중요하다"면서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돼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안보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행사엔 이애리아 와세다대 교수, 황성빈 릿쿄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하쿠 신쿤(白眞勲) 전 참의원 의원,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후쿠오카대 교수 등 한·일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