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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통령도 안 갔다…尹, 합천 원폭 피해자 손 잡아주길" [박성우의 사이드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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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4년간 강제징용 소송 최봉태 변호사   

한일관계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다. 관계 개선은 앞서 꼬임을 전제로 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꽁꽁 얼었던 한일관계는 윤석열 정부 들어 ‘제3자 변제안’이 제시되면서 해빙을 맞았다.

아직 국내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원고 측 유족 15명 중 10명이 배상금 수령에 동의하는 등 소송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국내 법원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처음 소송을 낸 지 24년 만이다. 2000년 첫 소송부터 원고 측을 대리해온 최봉태(61·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는 걸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 소송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봉태 변호사가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봉태 변호사가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 변호사는 대구의 한 법무법인 대표를 맡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매달려왔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배상금 20%를 피해자 지원단체에 지급한다’는 약정과는 관련이 없다. 최 변호사는 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소송을 대리해왔다. 지원단체 약정 논란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불거졌다.

그런 최 변호사도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법을 따로 만들지 않고 정치적 해법으로만 마무리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 변호사는 또 역대 정권이 한일 관계의 정치적인 해법만 모색했지 정작 일제 치하 피해자들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만난 것처럼, 역대 대통령들이 한 번도 찾지 않은 경남 합천의 원폭 피해자들도 만나야 한다고 했다.

24년 동안이나 강제징용 소송을 하셨어요.
이게 왜 20년씩이나 걸리냐면요, 2000년 5월 2일 제가 부산지방법원에 처음 소송을 제기했을 때 정부가 1965년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서 공개 소송을 내고, 그게 또 5년씩 걸리고, 이런 별도의 소송들이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다른 소송은 안 하시고 강제징용 소송만 하신 건가요.
비율로 보면 한 90%는 강제징용 사건을 합니다. 지금 제가 대구에서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로 있거든요. 나머지 사건들은 젊은 변호사들이 하고요. 제가 하고 있는 강제징용 사건이 마무리돼야 할 것 아닙니까. 누구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제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강제징용 사건을 20년 넘게 하는 건, 보통 사명감 아니면 못 할 것 같습니다.
제가 1994년부터 97년까지 도쿄대에서 노동법을 공부했습니다. 강제징용이 사실 노동자 문제이지 않습니까.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최초로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경득 변호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하루는 강제징용 피해자 재판을 한다고 와보라고 하는 거예요. 가서 보니까 일본인 변호사들이 자기 나라에서 ‘매국노’ 소리 들어가며 피해자들을 변론하는데, 제가 한국 변호사가 돼서 이 사건이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 차마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이 일본 변호사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일제 피해자 소송을 해오면서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김광렬 재일사학자 기록으로 본 강제동원. 군함도와 화장장에서 바라본 군함도 풍경을 비롯해 강제동원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김광렬 재일사학자 기록으로 본 강제동원. 군함도와 화장장에서 바라본 군함도 풍경을 비롯해 강제동원에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한국 가서 소송 하라는 것도 일본 변호사들의 조언이었나요.
그분들이 “일본 사법부가 보통은 신중하게 판단하는데 ‘전후(戰後) 보상’ 재판에 대해서는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피해 국가인 한국에 가서 한 번 새로운 장을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국내에서 소송을 내게 됐습니다. 초기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많은 법적 논리들도 이 일본인 변호사들이 만들었습니다.
첫 소송을 낼 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일단 상식의 문제니까요.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돼서 노역한 것이고, 임금을 못 받고 피해보상 안 된 것도 사실이고요. 일본에서도 승소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2000년 5월에 낸 첫 소송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저는 그때도 절반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제징용 사건에는 쟁점이 많아요. 전쟁 전의 회사와 지금 회사가 같은 법인이냐,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 한일협정에 어떻게 돼 있느냐 뭐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이겼고, 다만 ‘시효’의 문제 때문에 패소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이기리라고 봤습니다.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 하면서 결국 이기셨네요.
저는 이게 판결까지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판결이 나서 강제집행을 하면 아무래도 반발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판결보다 화해로 끝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대법원에 공개 변론을 하게 해달라고 주장을 했는데, 판결로 끝난 걸 아쉽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일본 법원의 패소 판결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 헌법에 어긋나고,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의 대상이 아니어서 살아있다는 내용이다. 이 판결은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됐다.

2018년 11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가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18년 11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성주 할머니가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일각에선 당시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 논리를 비판합니다.  
일본 사법부도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단, 자발적인 구제가 필요하다는 거죠. 일본 사법부도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는데 한국 대법원이 소멸했다고 판결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일본 사법부 판단을 포함해서 수많은 자료를 제출했으니까 대법원이 그렇게 판단한 것이지, 김 대법관이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판결을 한 건 아니죠.
‘사법적극주의’라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데 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지만, 자발적으로 구제하라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사법소극주의인 거죠.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는 판사가 판결할 때 법령 해석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두고 특정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을 말한다. 사법적극주의는 기본권 침해 등의 영역에서 종종 진일보한 판결로 주목을 받지만,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원고 15명 가운데 10명의 유족이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여 배상금을 수령했습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선 기본적인 상식이지 않습니까. 나이도 많고 가족도 있습니다.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금전적인 제공을 하면 안 받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이걸 받았다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을 훼손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정부가 이 돈을 떳떳하게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피해자 지원을 우리 헌법 질서에 따라서 하면서, 일본 정부나 기업들이 사법부 판단을 존중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도쿄대에서 공부하셨으니까 일본에 지인도 많으시겠어요.
제가 서울법대(경성제대) 나오고 도쿄대(동경제대)에서 공부했는데, 옛날식으론 친일파 중에 상 친일파죠. 그래서 저는 한국과 일본 관계가 좋게 되도록 하는 게 제가 받은 혜택을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개인적인 소망은 빨리 한일 관계가 정리돼서 도쿄대 은사님한테 가서 인사를 하는 건데,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경남 합천군 원폭자료관 내부. 송봉근 기자

경남 합천군 원폭자료관 내부. 송봉근 기자

마무리할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를 포함해서 구제에 대한 기본적인 계획을 세우고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중심이 돼서 먼저 법을 만들고.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동참할 경우에는 개인청구권을 더는 주장할 수 없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일본 기업이 재단에 출연해서 피해자가 돈을 받으면 법률상 화해가 성립되는 거로 간주한다든지 하는 식이죠. 법도 안 만들고 어떻게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일본 사법부 판단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끊임없이 설득 작업을 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우리 재판소 판결을 존중해 주지 않아서 한국에서 이런 판결까지 나오게 만들었느냐, 우리도 법치주의·민주주의 국가에 걸맞게 처신하자’ 그런 여론이 일본 내에서 형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사실 부산에서 재판할 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동 변호인단의 일원이었거든요.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전화가 안 오는데 제가 전화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제 피해자 문제 관해서는 보수·진보 정권 다 별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처음으로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 만났습니다. 그래서 경남 합천에 원폭 피해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한국 대통령이 한 번도 간 적이 없거든요. 이렇게 무관심한데 무슨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겠어요. 대통령이 가서 손잡아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이드바(sidebar)는 미국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 진행 상황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또는 검사나 변호인이 배심원들을 피해 판사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을 때, 법대 앞에 모여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업계 용어로는 메인 기사 옆에 붙는 ‘해설 박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판사·검사·변호사 뿐 아니라 사건 관계인들도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해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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