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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재무장" 지시에…"부려먹더니 이제와서" 일선 경찰 분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노숙 집회 이후 경찰 지휘부가 일선에 엄중 대응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 재무장’ 수준의 고강도 훈련 지침이 내려오자 현장 경찰관들은 “늘 말로만 강경대응하던 지휘부가 책임은 또 말단에 돌린다”며 반발했다.

지난 23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경찰청 게시판에는 ‘경비국장 주재, 최근 대규모 집회 사후평가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 사진이 올라왔다. 하루 전날인 22일 ‘특별취급’이란 주의사항 표시와 함께 작성된 문건은 서울경찰청 5기동단 경비과에서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청 경비국은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건설노조의 집회를 두고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난이 있다”며 “구성원 모두가 엄중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고용노동청 앞 도로 점검 사례와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단계적인 해산 및 검거 훈련’을 실시한다”며 “5월 24일~6월 6일 전국 경찰 집중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기회에 모든 기동대원들의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며 “강도 높은 훈련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현장활력소, 블라인드 등을 통한 직원들의 불만 및 비난이 나오더라도 감수할 것”이란 내용도 담겼다.

지난 22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경비국장 주재, 최근 대규모 집회 사후평가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 22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경비국장 주재, 최근 대규모 집회 사후평가 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독자 제공

내용이 알려지자 일선 경찰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경찰관은 블라인드에서 “지휘부가 책임지기 싫어서 검거나 해산 지시도 못 내리면서 이제 와서 기동대 훈련 부족 탓을 한다”며 “시키는 대로 했는데 돌아온 말은 ‘정신 재무장’”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경찰관도 “기동대 직원들은 검거나 해산지시 있으면 손가락 부러지고 피가 나면서까지 현수막 철거하고 최대한 명령 따라서 움직인다”며 “대통령이 집회 왜 못 막았냐고 하니 (지휘부가) 일선 기동대원들의 훈련 부족 및 정신상태를 핑계로 대는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절집회·기시다 총리 방한·민노총 1박2일 집회·5.18 광주 지원·태평양 도서국 방한까지 매일 연휴 따위는 X나 줘버리며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데 이럴수록 현장 직원들의 신뢰는 잃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건설노조의 1박2일 집회 이후 대규모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불법 집회에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3일 건설노조 집회를 두고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시위에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께서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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