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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사에 쓰지 말라" 반려동물 판매업자 뜻밖의 제안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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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찰과 동물보호단체가 들이닥친 전북 진안의 ‘강아지공장’과 지난 13일 찾은 충남 금산의 A 반려견 농장은 극과 극의 환경이었다. 역한 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던 강아지공장에선 강제 임신에 사용하는 도구와 강아지 사체를 태운 흔적 등이 발견됐다. 반면 A농장에선 막 태어난 새끼들이 보송하게 빨아놓은 이불 위에서 어미젖과 이유식을 먹으며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A농장의 주인 윤모씨는 유기된 시츄 한 마리를 구해온 게 사업 시작의 계기였다고 했다. “잠도 못 잘 정도로 강아지가 예뻐서” 펫숍을 차렸고, 7년 뒤 몰티즈만 키우는 농장을 꾸린 것이다. 윤씨는 “양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충남 금산의 한 개 번식장 견사에 말티즈 수십마리가 머물고 있다. 장서윤 기자

지난 13일 충남 금산의 한 개 번식장 견사에 말티즈 수십마리가 머물고 있다. 장서윤 기자

 반려동물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윤씨와 같은 합법적 사업자들이다. 이들은 이구동성 “강아지를 사랑해서 인생을 바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려동물 판매 금지”를 외치는 동물권론자들과 “영업의 자유”를 주장하는 일부 산업중심론자들이 격돌하는 동물보호 논쟁에서 윤씨와 같은 이들의 존재와 고민은 소외돼 있다. 대량 생산→경매를 통한 대량 유통→무한 경쟁식 판매로 이어지는 체계가 필연적으로 대량 유기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불편한 사실도 이들이 숨죽이는 구조적 배경이다. 전국 프랜차이즈를 갖춘 양판점의 확산과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자처하는 신종 온라인 펫숍의 등장하면서 양측의 대립은 한층 더 극단으로 흐르고 있다.

 절충과 타협을 원하는 목소리와 존재론적 고민들은 그 양극단 사이에 가라앉아 있다. 금산 농장의 윤씨는 “불법 업자들이 키운 강아지들도 경매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경매장은 그나마 반려동물 분양과 입양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순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만난 상당수의 업자들은 대량생산-대량유통 체계 극복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경매업자·번식업자·판매업자 1000여명이 가입한 반려동물협회원인 B씨는▶종모견 등록제 도입 ▶경매장 수 감축 ▶생산 마릿수 제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이름과 함께 나가면 회원들에게 돌 맞아 죽는다”며 꺼낸 방안이다. B씨는 “언론이나 정치권과 영리하게 접촉하며 세력을 확장한 동물보호단체들의 목소리만 커지만 우리도 살기 위해서 왼팔을 자를까 오른팔을 자를까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종모견 등록제 등은 “너무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너무 쉽게 버려진다”는 동물권 단체들의 의견과도 통하는 주장이다.

동물권 단체들은 독일·프랑스 등 반려동물의 상업적 판매가 금지돼 있는 유럽의 사례를 대안이라 주장하지만 일부 판매업자들은 펫숍을 허용하는 대신 생산·판매업자에게 세금 부담을 늘려 반려동물의 가격이 오르자 수요가 축소된 일본 모델을 ‘제3의 길’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4일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반려동물 경매장에서 경매사가 낙찰가 5만원에 팔린 생후 60일가량 된 웰시코기 수컷을 소개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 4일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반려동물 경매장에서 경매사가 낙찰가 5만원에 팔린 생후 60일가량 된 웰시코기 수컷을 소개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문제는 이같은 의견들이 펼쳐지고 경합하며 확산할 공론의 장이 없다는 점이다. 선거철이 임박하면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간혹 정부관계자와 동물권단체·이익집단이 ‘발제’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라 부르기엔 빈약하다. 정부는 지난해 ‘동물복지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동물 복지 수준 향상이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겠다”고 밝혔지만 내용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중 수용 가능한 부분들을 일부 정책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반려동물 거래 이력 추적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복안을 내놨지만 현장엔 “그 정도 인력과 예산으론 실질적 변화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소가 가득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1명(25.4%), 약 1500만 명이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운다. 개나 고양이와 찍은 한 컷은 이제 선거철 정치인들에게 필수품이 됐다. 이제 22대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관심이 대안이 아닌 이미지에 그치는 이유에도 또 하나의 불편한 사실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반려인들 중 ‘우리집 개와 고양이가 어떻게 태어나 거래됐는지’ 정확히 아는 유권자가 드물다는 것을 정치인들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 기간 어느 캠프의 정책파트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반려동물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면 표를 잃지만 선명한 정책적 입장을 갖는다고 득표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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