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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생산 30만마리, 재고 10만마리”…이 공장 상품은 '반려견' [말티즈 88-3 이야기]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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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원에서 시작합니다. 코 색이 옅고 사시가 있네요. 30만원으로 내리고, 30만원에 5번 참가자 낙찰.”

30만원. 지난 4일 대전의 개 전문 경매장에서 팔린 말티즈 ‘88-3’의 낙찰가다. ‘88-3’은 3월 5일 충남 금산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태어났다. ‘88-3’은 2살 모견(母犬) 아더, 6살 종견(種犬) 라운 사이에서 태어난 삼형제 중 하나다. ‘88-1’, ‘88-2’라는 이름표가 붙은 나머지 형제들은 각각 30만원, 37만원에 충북 옥천과 충남 온양으로 팔려갔다. 지난 13일 만난 생산업자 윤모씨는 ‘88-3’의 낙찰 일자, 가격을 보여주자 단번에 아더의 새끼임을 알아봤다. ‘88번’ 삼형제를 낳은 아더는 임신 휴식 중이었다. “얘(모견 아더) 새끼가 경매에서 값이 안 나오면 다음에는 다른 종견과 임신을 시켜봐야 하니까 항상 기록을 해놓죠.”

 지난 13일 충남 금산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지난 5일 경매장에 팔린 말티즈 ‘88-3’의 모견(母犬) 2살 아더를 만났다. 장서윤 기자

지난 13일 충남 금산의 한 반려견 번식장에서 지난 5일 경매장에 팔린 말티즈 ‘88-3’의 모견(母犬) 2살 아더를 만났다. 장서윤 기자

 윤씨와 부인, 아들 등 가족 5명이 관리하는 110평(363.6㎡) 규모의 번식장은 가정집과 함께 격리실·견사·산실·퇴비장이 미로처럼 얽힌 구조였다. 모견들이 주로 머무는 견사에는 철제 그물 대신 가로 180㎝×세로 150㎝ 규격의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울타리 안에 깔린 얇은 이불 위에 모견 3~4마리가 머물고 있었다. 윤씨는 “매일 밤 11시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아내가 이불을 빨고 아들이 나머지 청소를 담당한다”며 “아들이 견사 안에서 라면을 먹을 정도로 깨끗하다”고 말했다.

모견들은 연 1회, 또는 2년에 3회 가량 산실로 이동해 새끼를 낳는다. ‘88-3’이 태어난 이곳에선 매년 250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난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허가받은 생산업자 1명당 연간 50마리까지 반려견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윤씨의 가족 구성원 5명이 모두 별도로 생산업 허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20마리 미만만 생산하는 소규모 번식장도 있다. 지난 7일 찾은 충북 보은의 한 소규모 번식장은 논 사이에 지어진 깔끔한 조립식 건물 안에 설치돼 있었다. 배설물이 자동 배출되는 ‘뜬장’에 모견이 한두 마리씩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생산업자 이모씨는 “내 밥그릇은 안 씻어도 강아지 밥그릇은 설거지한다. 여기서 한 마리만 늘어나도 관리가 어렵다”며 “모든 번식자가 소규모 번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번식자들에게 대형화는 상존하는 유혹이다.

지난 7일 충북 보은의 한 소규모 번식장. 견사에는 말티즈 약 20마리가 쉬고 있다.

지난 7일 충북 보은의 한 소규모 번식장. 견사에는 말티즈 약 20마리가 쉬고 있다.

매년 30~40만 마리, 대량 재고 위험 낳는 공장제 생산

 번식장은 반려견 대량 생산·유통의 시발점이다. 전국에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반려동물 생산업체 2115곳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생산되는 반려견의 마릿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농촌경제연구원(2018 반려동물 연관산업 발전방안 연구)은 연간 46만 마리라고 추산한 적이 있지만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김세진 농축산식품부 반려산업동물의료팀장은 “지금까지는 이력 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출생 반려견 수는 사실상 구할 수 없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믿을만한 추산치조차 구하기 어려운 건 불법 번식장 때문이다. 지난 2일 전북 진안의 한 산골 비닐하우스에서 적발된 불법 번식장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과 진안군청 공무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선 털과 오물이 엉겨붙은 철창 속에서 울부짖는 포메라니안 등 반려견 100여 마리가 구조됐다. 냉동실에선 개 사체 1구가, 마당에서는 사체를 다량 태운 흔적이 발견됐다. 정모(34)씨는 8년간 이곳에서 강아지를 대량 생산해 경매장에 팔아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 효율을 위해 막대를 통한 인공수정을 하고, 질 근육을 이완시켜 인위적으로 새끼를 빼내는 ‘자궁경 이완용 난산처치제’라는 약물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법·소규모 번식장은 통상 발정기에 암·수를 함께 머물도록 하는 자연 교배를 추구한다.

지난 2일 전북 진안에서 허가 없이 개를 생산해온 불법 번식장이 적발됐다. 남윤우 인턴

지난 2일 전북 진안에서 허가 없이 개를 생산해온 불법 번식장이 적발됐다. 남윤우 인턴

 대량생산 체제는 필연적으로 대량 잉여(剩餘)의 위험을 내포한다. 반려동물협회에 따르면 매년 반려동물 약 20만 마리가 경매장을 통해 유통된다. 보수적으로 추정해 한해 번식장에서 생산되는 반려동물이 30만 마리 안팎이라고 보면 매년 최소 10만 마리의 행방에 물음표가 달린다. 번식장에서 직접 분양되거나, 번식장에서 종·모견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는 미미하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 개가 모견이 될 확률은 10%도 안 된다”며 “매년 최소 8만 마리의 재고가 발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재고견’의 운명은 번식업자의 양심과 여력에 크게 좌우된다. ‘88-3’이 태어난 번식장에는 역할 없는 개 100마리가 견사가 아닌 격리실에서 생존해 있었다. 윤씨는 “번식 능력이 없는 노견 70~80마리, 태어날 때 문제가 생겨 새끼를 못 낳는 애들이 20마리 정도를 요양 개념으로 격리실에서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250마리를 키우는 충남 금산의 번식장에 있는 격리실. 장서윤 기자

250마리를 키우는 충남 금산의 번식장에 있는 격리실. 장서윤 기자

그러나 상당수의 ‘재고견’은 비극적 결말을 맞을 가능성 크다. 지난 11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반려견 번식업자 32명에게 재고가 된 개와 고양이 1256마리를 마리당 1만원을 받아 방치한 고물상 업자 이모(67)씨의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상당수의 반려견들은 냉동탑차 안에서 이미 숨진 채 이씨에게 전달됐고 일부는 이씨의 고물상에서 굶어죽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량 폐기의 위험에서 구조된 반려견들의 최후도 이미 논란이다. 동물보호단체 ‘케어’의 박소연 전 대표는 4년간 구조한 동물 98마리를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안락사시켰다가 이씨와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14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박 전 대표는 “반려견 양산 체제가 존재하는 한 유기‧폐기되는 강아지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번식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안락사는 강아지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반려동물 생산업을 본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건 2018년 3월부터다. 2016년 5월 한 방송을 통해 한 불법 ‘강아지 공장’의 실태가 알려진 게 발단이었다. 정부는 동물생산업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동물학대 법정형을 ‘징역 1년 이하’에서 ‘징역 2년 이하’로 높였다. 법 시행 후 번식장의 사육 환경은 개선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지만 단속·점검 전담 인력은 전국 226개 기초 자치단체에 481명 뿐(지난해 6월 기준 지자체당 평균 1.8명)이라 감독의 한계는 역력하다.

첨예한 이익 충돌, 표류하는 대안 

반려동물 양산체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려 있다. “잘하는 곳은 장려하고, 못하는 곳은 정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반려동물협회)는 반려동물산업 육성론, “수요·공급 통제를 위해 1인당 생산 가능 마릿수를 줄이고, 생산자-소비자 직거래를 활성화 해야 한다”(반려동물생산판매자협회)는 수요·공급 조절론, “복제적 생산을 허용하는 한 유기동물 문제는 계속된다”(동물보호단체)는 공장제 생산 전면금지론 등이 정책결정자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난해 ‘동물복지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동물 복지 수준 향상이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겠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놨다. “국내에 등록된 동물보호단체만 144개 있다. 그외에도 이해집단이 많고 다양하며 대립이 심해 정책 우선순위 선정이 어렵다”는 이유가 덧붙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인문사회학과 교수는 “더러운 환경에서 엄청난 양을 생산하는 곳만 공장이 아니다. 청결하게 소규모로 사육해도 돈을 벌기 위한 ‘상품 생산’이라는 성격은 인간과 동물의 유대를 강조하는 ‘반려’의 의미와 모순을 이룬다”며 “당사자들의 이익을 조율하고 정책 방향을 정할 때 ‘유대의 회복’이라는 관점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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