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티즈 ‘88-3’은 지난 4일 대전 경매장에서 30만원에 낙찰된 직후 경기도 수원의 펫숍 첫번째 유리 진열장으로 옮겨졌다. 지난 12일 방문한 펫숍에선 ‘말티즈, 남아, 3월 5일생, 1단계 접종’이라고 적힌 종이와 함께 55만원에 판매되는 ‘88-3’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옆 세번째 진열장에 있는 크림푸들 100만원에 비해선 저렴한 값이다. 판매업자 김모씨는 “얼굴이 예쁜 편은 아니다. 배꼽 탈장도 있어서 상품성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88-3’은 이틀 뒤 지난 14일 한 40대 여성에게 분양됐다. 생후 두달 만에 새 가족을 찾게 된 것이다.
번식장이 반려견 대량 생산을 위한 ‘공장’, 경매장이 유통 ‘허브’ 역할을 한다면, 소비자와 직접 마주치는 펫숍은 반려견 대량 생산-대량 유통 체제의 실핏줄이다. 한때는 서울에서 반려견을 구하려면 ‘충무로 애견거리’에 가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펫숍 40여곳이 충무로 대한극장 주변을 빼곡히 에워쌌다. 하지만 지금은 ‘애견거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쇠락해 5곳밖에 남지 않았다. 반려견을 양육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펫숍이 보편화·광역화됐기 때문이다. ‘도그마루’같은 전국 체인을 갖춘 양판점도 생겨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판매업, 미용업 등 반려동물 관련 영업장은 전국에 총 2만 685개소, 종사자는 2만 4863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7.3%, 0.7%씩 증가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펫숍을 지나던 최모(41)씨는 “마치 나를 봐달라고 이불도 제치고 뒹굴고 있다. 귀여워서 발걸음을 멈췄다”고 말했다. 판매업자 이모씨는 두 강아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으며 “워킹이 다르다. 비싼 애가 몸도 짧고 다리도 짧아 포메의 정석에 가깝다. 강남권에 가면 최소 500만원은 받는 아이”라고 말했다.
진열장 속 귀여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계획 없이 분양받는 사람도 적지 않다. 푸들 두 마리를 기르는 황모(40)씨는 “집에 가는 길에 쇼윈도에 비친 실버푸들이 눈에 들어와 분양받았다”며 “태어난지 2개월 된 강아지가 많았는데, 얘는 태어난지 6개월 정도로 조금 큰 상태라 잘 안 팔린다고 해서 헐값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동물권 침해”VS“영업의 자유”VS“허가제 강화”
소비자들과 직접 맞닥뜨리는 펫숍의 존재를 둘러싼 논쟁은 반려동물 대량 생산-대량 유통 체제와 관련한 갈등에서도 최전선을 이루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소비자들의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펫숍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6개월 미만 개와 고양이를 펫숍이나 온라인상에서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번식자의 직접 판매만 허용하는 영국 등의 사례가 이들의 근거다. 벨기에, 핀란드, 독일, 프랑스도 펫숍을 통한 반려동물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 펫숍 운영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판매업자 김씨는 “차라리 문제가 되는 불법 강아지 공장을 문 닫게 해야 한다. 유기하는 사람의 처벌을 강화해야지 사고파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매업자 이모씨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가족에게 강아지를 가족 구성원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순기능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과 미국의 일부 주에선 펫숍을 통한 반려동물 거래가 허용돼 있다.
소비자들의 입장은 두 주장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선 “허가된 판매업자 이외에는 금지해야 한다”는 중도적 입장이 37.7%로 가장 많았지만, “반려동물 입양 방법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29%)과 “모든 반려동물 거래를 금지해야 한다”(16.9%)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반려동물 판매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온라인 판매를 둘러싼 논란도 첨예하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의 비대면 거래는 금지돼 있어 온라인 상에서 결제가 이뤄지지 않지만 홍보·가격비교·상담 등이 가능한 사이트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펫숍 뿐 아니라 유기견 보호소, 개를 파양하고 싶은 가정과 입양하고 싶은 가정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도그짱’이 대표적이다. 판매업자 김모씨는 “펫숍도 하지만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을 통해 문의하는 경우가 90%를 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거래의사가 교환됐다고 하더라도 펫숍을 방문해 직접 반려동물을 인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계좌이체를 통해 값을 치르고 동물운송업자를 통해 전달받는 식의 사실상의 비대면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한 펫숍에 반려견을 배송해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직접 방문해 분양받는 것을 추천하지만 사정이 어렵다면 배송해줄 수 있다. 결제는 계좌이체로 부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농식품부 조사에서 온라인 거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5000명) 중 44.8%가 “부적절하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온라인 판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은 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2020년 0.9%에 불과하던 온라인 입양 비율은 지난해 1.7%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5월 온라인 채널을 통해 포메라니안을 입양한 노모(27)씨는 “홍보글에 강아지의 모견·종견과 출생지, 예방접종 내역 등 정보를 상세하게 적어놔서 펫숍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 생산·판매 체제 개편 대신 “거래 이력 추적”
지난 대선 당시 반려동물 판매와 관련해선 ▶온라인 반려동물 판매·홍보 금지(이재명 민주당 후보) ▶판매업자에 대한 시설·위생 기준 강화(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등의 공약이 제시됐다. 지난해 말 정부는 일단 반려동물 판매 체제 자체를 손보기보다는 거래 이력을 추적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동물보호법을 개정(지난달 27일 시행)해 펫숍(판매업자)뿐만 아니라 번식업자나 수입업자가 직접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경우에도 구매자 명의로 대상 동물을 등록하도록 하고 번식업자와 경매업자, 판매업자 모두 거래내역을 매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의무했다. 온라인 판촉과 관련해선 허용됨을 전제로 “반려동물 판매를 홍보할 경우 영업허가번호와 거래금액을 함께 표시하라”는 규제가 더해진 정도다.
정부는 이같은 변화로 반려동물 산업의 투명성이 강화되길 기대한다. 농식품부 김세진 반려산업동물의료팀장은 “반려동물 가구수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양적 통제보다는 불법 규제를 통해 건전한 분양 체계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불법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동물 유기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펫숍 찬반 여론에 대해서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등 유기견 입양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산업 종사자의 현실적인 부분을 절충해 단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