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일우의 밀리터리 차이나] 입만 떠드는 ‘한미동맹’, 행동하는 ‘북중동맹’(下)

중앙일보

입력

관련기사

▲(上)편 내용과 이어집니다

중국은 미래 동선이 공개된 미 전략원잠의 앞길을 수상함대로 막은 직후 미국에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이난다오에 배치된 중국 전략원잠이 미국의 대잠 저지선인 바시해협(Bashi Channel)을 통과해 괌에서 북쪽으로 약 800km 떨어진 필리핀해에 전개된 영상이 5월 2일 공개된 것이다.

중국이 공개한 잠수함은 094A형, 일명 ‘진급(晉級)’ 전략원잠 6번함인 창정-18호(長征18號)다. 2021년 취역한 최신예 잠수함인 창정-18호는 수중배수량 1만 2000톤급의 전략원잠으로 현존하는 중국 전략 자산 가운데 미국이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하고 있는 잠수함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신예 전략 핵잠수함 ‘창정-18호’. SCMP=웨이보

중국 인민해방군의 신예 전략 핵잠수함 ‘창정-18호’. SCMP=웨이보

미국은 지난해 11월, 새뮤얼 파파로(Samuel J. Paparo Jr.) 태평양함대 사령관의 발언을 통해 중국이 2022년부터 094A형 잠수함에 최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JL-3(巨浪-3)를 탑재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의 주력 SLBM이었던 JL-2는 1메가톤급 핵탄두 1발 또는 전술핵탄두 최대 8발을 탑재할 수 있지만, 사거리가 7200km에 불과해 태평양 한복판인 웨이크섬(Wake island)까지는 가야 미국 서부 해안을 공격할 수 있고, 하와이가 있는 서경 155도보다 더 동쪽으로 가야 워싱턴 D.C나 뉴욕을 공격할 수 있다.

JL-3는 JL-2와 마찬가지로 다탄두 핵미사일이지만, 사거리가 1만 2000km까지 늘어나 괌 근처의 동경 144도선 일대에서도 워싱턴 D.C에 핵공격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렇게 사거리가 늘어난 JL-3라도 남중국해를 벗어나지 못하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체연료 추진체를 사용하고 길이와 직경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SLBM은 현존 기술로는 제아무리 사거리를 연장해도 12,000~13,000km 정도가 사거리 한계다.

태평양 전체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일본 근해의 안전 수역에 전략원잠을 배치해 놓고 SLBM을 쏘더라도 베이징을 초토화할 수 있다. 반면 중국 전략원잠은 미국의 일본-대만-필리핀을 잇는 미국의 대잠 저지선을 통과하지 않으면 미국 본토에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없다.

중국 최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JL-3(巨浪-3). SCMP

중국 최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JL-3(巨浪-3). SCMP

미국은 남중국해에 배치된 중국 전략원잠이 바시해협이라는 대잠 저지선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이 일대에 7함대 전력의 대부분을 배치하고 있다. 미 항모전단은 물론 7함대 예하의 구축함과 잠수함들이 평시에 거의 항상 필리핀해 일대에서 작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괌 북방 800km 해역에서 부상한 창정-18호를 탐지·추적해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면 별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만약 창정-18호가 필리핀해 동북방 해역까지 진출한 것을 미국이 놓쳤다면 이는 대단히 큰일이다. 창정-18호가 부상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 해역은 JL-3 SLBM으로 워싱턴 D.C를 타격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 전략원잠의 필리핀해 전개를 영상까지 찍어 공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미국 동부 핵심 도시들을 공격할 수 있는 SLBM을 탑재한 잠수함을 전시(戰時) 발사 해역까지 진출시킨 것이 미국에 대단히 위협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도발을 한 것은 〈워싱턴선언〉에 대한 중국의 대답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관계이고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보호를 받는 것처럼 중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북한 역시 중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양측은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정식 동맹국이며, 본 조약 제2조에 의거, 북한이나 중국 어느 한 나라가 외부의 침략을 받으면 다른 한 나라는 자동으로 군사적 개입을 하게 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과 중국이 보여준 행동의 온도차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은 워싱턴선언을 통해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원잠을 수시로 한반도 주변에 전개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이 약속이 정말 지켜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전략원잠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 본토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을 위한 ‘쇼’를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미국 싱크탱크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대선을 준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표를 깎아 먹는 조치를 정말 취할지는 미지수다.

‘약속’만 던진 미국과 달리 중국은 ‘행동’을 보였다. 미국이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원잠 한반도 수시 전개 약속을 발표하자 중국은 즉각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미국이 전략원잠 전개를 예고한 해역에 탐지·방어자산을 투입했고 이와 동시에 미국 본토 심장부에 보복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해역에 전략원잠을 배치하고 이를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중국이 북한을 위해 이 정도까지 ‘서비스’를 해 주는 이유는 북한이 그에 상응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2021년 6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전략군 개편을 결정하고 자신들의 전략자산을 미·중 경쟁에서 중국의 이익에 기여하는 자산으로 사용하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다양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배치하며 ‘북한판 A2/AD’를 구축했고 유사시 중국에 위협이 되는 한국·일본 미군 기지에 대한 대량 핵공격 전력도 확충했다. 물론 그 전력을 사용하겠다는 공개적인 선언도 여러 차례 발표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은 전략군 개편을 결정했던 당 중앙군사위 확대회의 때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 비핵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을 염두에 둔 국제정치적 전략의 일부”라고 말하며 북한이 왜 중국과 적극적으로 공조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이 회의 후 북한은 실제로 중국의 대미 전략에 충실히 협조하는 행보를 보이며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일체를 중단하고 강경 일변도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후 중국은 UN 안보리 결의를 대놓고 무시하며 북한에 군사용 부품은 물론 식량, 원유 등을 공급하고 있고 자국 영해에서 이루어지는 북한 선박 불법 환적도 보호해 주고 있다.

중국의 전위(前衛)를 자처하며 중국으로부터 보호와 지원을 받고 점점 더 한마음·한뜻이 되어가고 있는 북한과 달리 한국은 미국과 동상이몽(同床異夢) 중이다. 입으로는 다양한 외교적 수사들을 늘어놓으며 한미동맹 강화를 부르짖지만 미국 주도의 반중 동맹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은 취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필리핀처럼 중국을 겨냥한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고 있고,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전략 무기를 도입하거나 그러한 무기의 주한미군 배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한미정상회담 직전 미 해군 최신 이지스함 ‘존 핀’이 들어오자 이를 꼭꼭 숨겼다. 심지어 세종대왕함과 최영함이 함께 들어와 연합훈련을 했으면서도 이 사실이 드러나자 국방부가 나서 “미국 이지스함이 평택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왜 들어왔는지는 확인 중”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SM-3 미사일은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도입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고, 주한미군 사드(THAAD)를 미군 글로벌 미사일 방어 네트워크 C2BMC와 연동하는 성능 개량 사업이 진행됐음을 통보받고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숨기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다. 전임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혼밥하고 뭘 얻어 왔냐는 비판을 하며 ‘친중 무용론’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중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의 반중 군사동맹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정부라는 것이다.

4월 평택항에 입항한 미 7함대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존 핀’. 사진 필진 제공

4월 평택항에 입항한 미 7함대 최신 이지스 구축함인 ‘존 핀’. 사진 필진 제공

외교는 말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행동도 따라야 한다. 미국의 가치동맹으로서 그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외교무대에서 말만 잘한다고 동맹이 강화되거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입으로는 반중을 외치지만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전략은 중국에는 반감을 사고 미국에는 불신을 주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익을 해친다. 북한이 행동으로 반미에 나서며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고 있는 것처럼 한국 역시 행동으로 반중에 나서며 미국의 지원과 보다 적극적인 보호를 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표리부동을 비판하고 정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도록 국민들이 다그쳐야 한다. ‘정책’이 아닌 ‘리더’를 추종하며 리더를 향한 비판을 비난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일상화된 후진적 팬덤 정치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이고 그 국민 역시 자유민주주의 시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정책을 움직이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그 지도자를 뽑고, 감시하며 다그치는 시민 개개인이 되어야 한다. 팬덤 정치에 매몰돼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국민이 눈을 감아버린다면 대한민국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국운을 상승시키는 기회를 잃고 그 파도에 휩쓸려 쇠락하게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